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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내기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농업, 고향, 에코파시즘, 생태주의 등에서 두 대통령의 차이는 무척 크다. |
- 박정희·노무현 정신을 잇는 박근혜·문재인, 역사적인 대결 예고
- 올해 선거판에서 '위대한 개인' 나올까
"역사는 이따금 갑자기 한 사람에게 응축돼 나타나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세계가 그의 말에 복종한다. 이런 위대한 개인들은 보편성과 특수성, 지속적인 것과 변혁 등이 한 사람에게서 동시에 출현한 경우이다. 그들은 국가, 종교, 문화, 위기를 요약하고 있다." (부르크하르트의 '세계 역사의 관찰'에서)
■위대한 개인 : 선인 대 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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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로 유명한 미술사학자이다. 철학자 니체도 그에게 역사를 배웠다. |
스위스 바젤 출신인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19세기는 '영웅'을 갈망하고 있었다. 갈가리 찢어진 독일어권에서 통일 운동이 벌어지고 민족주의가 판치는 상황이라서 더 그랬는지 모를 일이다. 독일과 비슷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탓인지 우리에게도 이런 심성이 없지 않다. 영웅이라 해도 좋고 구세주라고 해도 좋다. '화물 숭배'에서처럼 온갖 괴로움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새로운 축복의 시대를 누군가 가져다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말이다.
부르크하르트는 세계 역사에서 '되풀이되는 것, 항상 있는 것, 전형적인 것'을 관찰했다. 그도 인간 집단의 힘을 부정하지 않지만 '위대한 개인'이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는 것, 특히 위기의 순간에 그렇다는 결과를 이야기한다. 일종의 인물 비평 내지 영웅주의라고 해도 좋겠지만 권력의 장을 형성한 권력자가 권력의 상징으로만 머물지 않는 일이 흔한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흥미로운 점은 '위대한 개인이 꼭 선한 사람은 아니다'는 그의 말이다. 악이 세계사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는 역사학자이다. 악당이 권력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도 너무 흔히 보았고, 겪고 있지 않은가. 오, 놀라운 기시감!
■박정희 대 노무현
우리 역사에선 누가 이런 위대한 개인일까. 아이들 책꽂이마다 가지런한 한국 위인전의 주인공들이 아마 그들일 것이다. 역시 흥미로운 점은 위대한 개인이 하나씩, 띄엄띄엄 나타나지 않고 곧잘 동시대에 나타나 경쟁한다는 점이다. 수년 전 어떤 공영방송이 '역사의 라이벌'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이런 재미 덕분일 것이다.
최근 역사로 좁혀 보자. 김구와 이승만, 이승만과 김일성, 박정희와 김대중, 김대중과 김영삼 등이 떠오른다. 이들은 빙글빙글 돌며 짝을 바꾼다. 올해 선거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연말 대선에서 여당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야당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파트너가 될 것이다. 이들은 적어도 각 진영에서 위대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올해 선거판은 이런 점에서 역사적인 동시에 신화적이기까지 하다.
현재 원내 제1당의 당권을 장악한 친박계와 제2당의 당권을 장악한 친노 그룹의 상징적 인물은 각각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상임고문일 것이다. 스스로 친박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반대편 말을 싫어하고 스스로 친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상의 순수성이 의심되는 사람의 친구'라는 반대편 딱지를 떼고 싶어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딸의 아버지와 친구의 친구가 선인이라고 적극적으로 미화하는 움직임도 있다.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위대한 개인은 악당일 수도 있다고. 또는 악당이어도 무방하다고.
공자에게 중궁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제 아버지가 죄를 짓는 바람에 덩달아 비난을 받고 고민하는 중궁을 공자는 이렇게 위로한다.
"얼룩소 새끼라도 털이 붉고 뿔이 바르면 비록 희생으로 쓰지 않으려 한다 해도 산천의 신들이 내버려두겠는가."('논어'의 '옹야'에서)
고대 중국에선 제사를 지낼 때 산 짐승, 특히 잡티 없는 한 가지 빛깔 털을 가진 짐승을 희생으로 바쳤다. 가축 가운데 가장 큰 짐승이 소였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훌륭한 제물은 잡티 없는 털을 가진 소이다. 넌 아주 훌륭한 놈이야. 태생이 무슨 문제냐. 네가 떳떳한지 그렇지 않은지가 문제이지. 공자님 말씀이다.
■공천 기준 : 도덕성 대 정체성
역시 이들은 아직 '위대한 개인'이 아닌 탓일까. 총선 후보 공천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잡음이 불쑥불쑥 나온다. 권력자에 맞선다는 사실은 권력이 약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는 아마 이런 것이리라. 친박과 친노를 파자하면 친(親) 자가 두 개 나온다. 둘을 합치면 친친(親親), 곧 '핏줄과 친하다'라는 말이 된다.
"물건을 대할 때 군자는 물건을 아끼지만 사람처럼 인자하게 대하지 않는다. 백성을 대할 때 군자는 백성을 인자하게 대하지만 핏줄처럼 대하지 않는다. 핏줄과 친하면 백성을 인자하게 대하게 되고 백성을 인자하게 대하면 물건을 아끼게 된다."('맹자'의 '진심 상편'에서)
친박이든 친노이든 모두 최근 권력 투쟁을 통해 각각 당권을 장악했다. 권력을 잡으면 가깝고 먼 사이에 따른 논공행상은 당연한 일이지만 국민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표방한 마당에 옳지 않아 보이고 안타깝다. 이런 점에서 양쪽은 몹시 닮았다. 몹시 닮은 양쪽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영리할까. 판단하려면 각 당이 제시한 공천 기준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각 당은 보름쯤 이전에 공천 기준을 제시했다. 이런 사람은 안 되겠다고 밝힌 유형은 뇌물, 횡령, 정치자금, 성범죄, 주가 조작 등 범죄자와 비리, 부정을 저지른 전력이 있는 사람 등이다. 당마다 별 차이가 없다. 눈에 띄는 차이라면 민주통합당의 '정체성', 새누리당의 '도덕성'이다. 추상적인 말이라 곰곰이 뜯어봐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정체성'의 사전적 의미는 변치 않는 존재의 성질 또는 그런 성질을 가진 독립적 존재이다. 구체적으로 잦은 당적 변경, 공천과 경선 불복 등 해당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제외하기로 했고 정체성이 있는 사람에겐 점수도 가장 많이 주기로 했다. '폐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울 때 배신하지 않은 사람을 우선 공천하기로 했다는 말이다. 새누리당도 철새 정치인을 검증하기로 했지만 민주통합당과 의미와 강도가 다르다.
■도덕성, 도대체 넌 정체가 뭐냐
새누리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도덕성'의 사전적 의미는 도덕의 본성이고 인격, 판단, 행동의 도덕적 가치를 가리킨다. 내가 가진 동기나 행동을 사회적 가치로 판단할 때마다 도덕성이 개입한다.
도덕성을 이야기할 때는 흔히 위대한 철학자 칸트를 따르게 마련이다. '~이다'가 아니라 '~을 해야만 한다'는 의무의 명령이 도덕법칙이라고 칸트는 말한다. 여기서 특히 행위의 동기가 중요하다. 겉으로만 행하고 속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 칸트는 '적법하다'고 하지 '도덕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박 위원장은 말하자면 도덕적 인간을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정수장학회'이다. 적법성이 아니라 도덕성을 말하는 사람이 왜…. 독일 철학자 헤겔의 도덕성 규정을 이해할 때 의문이 풀린다. '법'이라는 보편적인 합의를 '그 자체로 의욕하는' 것이 헤겔의 도덕성이다. 헤겔은 결국 법과 도덕을 일치시키게 된다. 일치가 일어나는 곳이 국가인데 '국가의 안녕'이 국가의 목적이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가, '국가의 안녕'이란 말. 그의 적법은 도덕의 동의어이다.
'국가의 안녕'은 달리 '국가의 복지'라고도 번역한다. 복지라, 아귀가 딱딱 맞는다. 그는 얼마 전에도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말했다. 그도 우리나라 경제개발 모델에서 보듯 아버지가 국가사회주의자라는 평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헤겔 철학은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당의 이념적 원천 가운데 하나이다.
임형석 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