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 책의 즐거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들과의 대화 /김해성

어린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이희영 옮김/동서문고/6800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2-10 19:32:33
  •  |   본지 1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볼거리를 일로 생각해 목적지만 찾아나서는 여행자보다는 갈 곳이 많아 놀이로 돌아다니는 나그네가 훨씬 많은 것을 본다. 저명한 중국의 수필가 임어당은 그의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중국 여행에서 중국 친구들과 등산을 함께한 미국 부인. 등산 당일 안개가 짙어 산을 오르는 도중에는 물론 정상에 올라서도 희미한 산 능선 외에 보이는 것이 없자 '기대했던 중국 등산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고 참았던 불만을 중국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다. 이에 중국 친구가 웃으며 던진 한마디. "우리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등산을 좋아 한다네."

필자가 교환 교수로 미국에 가서 미술 전공 대학원생들에게 '동서양 미술 비교'라는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첫 번째로 보여준 작품이 '그림 감상'이란 제명의 단원 김홍도 그림. 유생(선비) 여러 명이 축으로 펼친 한 폭의 그림을 둘러싸고 그림을 감상하는 광경을 그린 평범한 그림이었다.

미국 학생들이 낯설게 느낄 것이라고는 유생들의 행장인 유건(모자), 장죽(담뱃대), 그리고 목화(신발)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제명을 말하는 순간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 있었다. 축으로 펼친 그림이 그냥 백지인데 그것을 보고 무슨 '그림 감상'인가 하는 것이었다. '백지'라는 사실 확인에 '그림'을 그림으로 보는 눈을 잠시 접은 이들에게 필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떠올려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종내는 임어당이 소개한 미국 부인의 등산 이야기까지 덧붙여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일찍부터 비행기 조종사로 하늘과 인연을 맺은 생텍쥐페리. 그가 비행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이륙과 착륙의 순간을 빼고는 구름과 별 이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창공이다. '어린 왕자'의 탄생도 현실과 유리된 창공을 가로지르는 침묵의 여정에서 비롯된 자신의 웅얼거림의 하나로, 그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주변의 모든 사물이 비로소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로 다가온다는 점에 있다.

그의 비행기가 엔진 고장으로 불시착한 곳은 창공과 다를 바 없는 막막한 사막. 거기에 홀연히 등장한 '어린 왕자'로부터 영문도 모를 애원조의 웅얼거림을 듣게 된다.

"아저씨…, 나 양 한 마리 그려 줘." 어릴 적 그림을 일찍 포기한 생텍쥐페리는 연이은 어린 왕자의 웅얼거림에 하는 수 없이 한두 번 양을 그려보여 주지만 어린 왕자는 그때마다 자기가 생각한 양이 아니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마지막으로 내팽개치듯 그려 준 것은 양이 아닌 구멍뚫린 상자. "이건 상자야. 네가 갖고 싶은 양은 이 속에 있어." 종이를 받아 든 어린 왕자가 뜻밖에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아저씨, 상자 속의 양에게 풀을 많이 주어야할까…. 아! 어느새 양이 잠이 들었네."

현란한 모니터에 모두가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요즘, '어린 왕자'야말로 우리의 눈과 마음을 별들의 반짝임만이 있는 드넓은 시공을 향하게 해서 '나 하나 별 하나'의 응얼거림을 가능케 한 진정한 나그네가 아니던가.

미술평론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3. 3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4. 4전재수 부산시장 “목숨 걸고 북항 돔구장 공모 준비”
  5. 5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6. 6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7. 7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8. 8“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9. 9경남도, 2027년 농어촌 기본소득 공모에 산청군만 추천
  10. 10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1. 1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2. 2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3. 31호기 명단 유출 파일 'MOFA(외교부) 형식, 유출 경위 파악에 주력
  4. 4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5. 5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6. 6친청 “공개사과하라”·김 “자정 노력”…민주 신천지 수습 난항
  7. 7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8. 8與주도로 조작기소 특검법안 법사위 상정…국힘 반발·퇴장
  9. 9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10. 10美 중간선거 시작, 우주서도 투표는 계속된다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가덕도신공항 올해 예산집행률 고작 0.03%…정상화 시급"
  4. 4“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5. 5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8. 8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김장재료 공급 차질 없도록 할 터”
  9. 9‘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10. 10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전재수 부산시장 “목숨 걸고 북항 돔구장 공모 준비”
  3. 3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4. 4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5. 5경남도, 2027년 농어촌 기본소득 공모에 산청군만 추천
  6. 6“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7. 7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8. 8부산 양정동 한 대학 창고서 불…인명피해 없어
  9. 9수능 ‘AI 안경 커닝’ 막는다지만…전문 탐지기 없어 실효성 의문(종합)
  10. 10첫 공소청 수장 후보, 이정현·박철우·예세민 물망(종합)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4. 4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5. 5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6. 6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7. 7[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8. 8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극락암 벚나무 /홍종원
곰 두 마리 /황인숙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5일 (음 9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4일 (음 9월 25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