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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7일 비상대책위 첫 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비대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 보수정당이란 한 배 탄 주류-비주류는 디도스·돈봉투 사건 등
- 격랑의 강을 건널때도 주도권 놓고 편가르기만
- 총선·대선이란 선거전쟁에서 이들은 똘똘 뭉칠까 함께 좌초할까
■선거가 전쟁이라는 현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야 백성들이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노자'에서)
고대 중국의 현인 노자는 뺏고 빼앗는 인간 세상의 비정한 행태를 통찰하고 근본적인 치유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현실은 늘 부족함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부족하기 때문에 귀하고 귀하기 때문에 뺏고 빼앗는 일이 벌어진다. 정치 권력이 특히 그렇다.
캐나다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사회적 희소가치를 권위적으로 분배하는 과정"이라고 정치를 정의한다. 사회적 희소가치는 권력을 말하고 분배는 말이 좋지 이긴 쪽의 독식을 말한다. '권위적'이라는 단서는 그래서 붙는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의 분배는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모택동 식으로 "권력이 총구에서 나오면" 혁명이다.
권력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분배 받으려고 '편가르기'를 한다. 다수의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편을 먹으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한 편을 먹는다. 무한정 편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보통 두 편으로 갈린다. 그리고 두 편은 각각 자기 진용을 갖추고 치열하게 싸운다. 흔히 선거를 전쟁에 비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 환경에서 가장 큰 선거전이 대통령 선거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뜻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조차 대통령 선거 구도에 종속되어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못마땅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올해 선거도 권력 의지를 가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당연히 원내 제1당과 제2당의 동태이다. 무한정 욕을 먹는 원내 제1당 내부에서 최근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쇄신파 일부와 타협해 우선 당권을 장악한 보수 정당 내의 권력 투쟁은 정치공학의 현실을 낱낱이 보여준 반면교사라서 흥미롭다. 장악 과정은 두 단계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1단계-디도스 국면
지난해 10월 26일은 우리 정치사에서 '민주와 복지'라는 시대의 화두를 놓고 새 단계의 시작으로 기록될 무척 중요한 날이다. 그날 다른 사건도 있었다. 당시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가 오전 한때 불통되고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을 받은 정도의 '작은' 사건이었다.
한 달쯤 지난 11월 30일 경찰은 이 사건 용의자 검거 사실을 발표한다. '디도스 국면'은 여기서부터 이름을 얻는다. 공교롭게도 11월 29일 한나라당 연찬회 자리에서 지도부 총사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보수 신당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리라는 말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12월 6일 경찰은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까지 소환, 조사하자 분명하지 않았던 권력 투쟁의 실체가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사건 주범 공모 씨가 단독 범행을 자백한 12월 8일, 홍준표 대표는 공천혁명과 재창당을 내용으로 한 쇄신안을 발표한다. 재창당은 수도권 친이계의 주장이고 나아가 당을 깰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당장 반발이 거세지자 이튿날 홍 대표는 사퇴하고 만다. 소장파와 쇄신파는 박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11일에는 한나라당 중진회의가 열린다. 불참한 이재오 전 최고위원도 측근을 통해 "박 전 대표 주도의 당 운영에 동의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친이계와 친박계를 대표하는 둘의 차이는 이랬을 것이다.
"먼저 전쟁터에 나와 적을 기다리면 여유가 생긴다. 나중에 전쟁터에 나오는 바람에 싸움의 주도권을 잃어버리면 힘이 든다."('손자병법'의 '허실'에서)
12일부터 시작된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큰 전쟁 속의 작은 전쟁이었다. 저희 명줄인 공천권을 넘기지 않으려는 재창당파를 친박계가 몰아붙인데서 큰 흐름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쇄신파 의원 두 명이 13일 탈당하는 바람에 당이 분열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감돌자 박 전 대표는 재창당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런 전술이었을 테다.
"적이 해로움을 알게 하면 적이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적이 솔깃할 만한 일을 만들어주면 적이 쓸데없는 데 힘을 쓰게 만들 수 있다. 적에게 이익을 보여주면 적이 내 의도대로 달려가게 만들 수 있다."('손자병법'의 '구변'에서)
■2단계-돈봉투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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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덕(서울 서초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달 9일 '돈봉투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가고 있다. |
친이계의 비대위 흔들기 공세가 본격화되면서 해가 바뀐 1월 4일 친박계가 솔선수범해서 희생하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제 살을 저미는 '고육계'를 써야 할 지도 모를 위기가 찾아왔다. 1월 5일은 권력 투쟁 2단계가 시작된 무척 중요한 날이다. 수도권 친이계 고승덕 의원이 당 대표 후보에게서 돈봉투를 받았다고 폭로한다. 반간계(反間計)를 이용한 회심의 일격을 가한 그날, 공천 기준에 대해서도 입 다물라고 박 비대위원장은 경고한다.
"용병은 다소 미흡해 보이더라도 속전속결해야 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안전 때문에 교묘하게 오래 끌어야 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용병은 승리를 소중하게 여기지 오래 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손자병법'의 '작전'에서)
1월 6일 검찰은 디도스 공격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수사를 마무리 짓는다. 이제 속도와 집중을 중시하는 전격전(電擊戰)이다. 돈봉투에 국회의장과 청와대 정무수석 이름이 나온다. 이쯤 되면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필패이다. 하지만 모두 잃은 것은 아니다. 어차피 지역은 안중에도 없고 총선을 대선의 시녀로 보니까.
1월 9일 박 비대위원장은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대해 격분한다. '구태' '척결' 같은 말도 거듭나왔다. "2007년 대선 후보 선거 과정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원희룡 전 최고위원의 말이 나오고 홍준표 전 대표도 거듭 의혹을 제기하지만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여야를 떠나 조직선거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나마 조직선거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라고 옹호하고 당사자도 "별로 얘기할 게 없다"고 일축한다. 나는 대세다! 12일 박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의 쇄신 자체를 가로막는 언행, 비대위를 흔드는 언행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두둑한 배짱이 놀랍다.
돈봉투 문제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안병용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은 13일 '이재오 잡기 음모론'을 제기하고 이 의원도 분통을 터트리지만, 아뿔싸 때를 이미 놓쳤다. 이후 당권 장악은 가속도가 붙는다. 17일에는 "당명도 바꿀 수 있다. 준비도 다 시켜 놓았다"는 말이 나왔고 24일에는 중앙당, 당 대표와 최고위원 폐지로 한나라당 구조개혁을 발표했다. 26일 '공천 살생부' 이야기가 나돌았고 30일에는 정강과 정책을 전면 개정했다. 31일 드디어 공천심사위원회 격인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를 친박계 인사 중심으로 만들었다.
2월 2일 한나라당의 후신, 새누리당과 '미래희망연대'가 합당한다. 얼핏 야권 통합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지난해 11월 29일부터 66일 동안 지속된 권력 투쟁의 화룡점정이다. 미래희망연대는 소수가 아닌 다수의 점령군이다.
■오월동주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한다.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폭풍을 만나면 그들은 마치 한 사람의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구한다."('손자병법'의 '구지'에서)
'오월동주'라는 성어의 출전으로 유명한 구절이다. 평소 원수처럼 지내도 위기 상황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말이다. 마치 '꼬시래기 제살 뜯어먹기'처럼 보였던 옛 한나라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권불십년이요,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철석처럼 믿는 저들은 다시 순응할 것이고 잘 살 것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임형석 고전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