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류부터 두부에 이르기까지 맛에 탐닉했던 이들의 이야기
- 조선의 탐식가들 /김정호 지음 /따비 /1만5000원

1392년, 새 나라 조선이 들어섰다. 아주 미미했지만 변화는 밥상에서부터 찾아왔다. '육식 금지'가 풀린 것. 그러나 조선 정부가 먹어도 된다고 말한 소나 말, 돼지, 개, 닭 등 '고기'는 가난한 서민들을 약올리는 처사였다. 반면에 지배층이 된 사대부에게는 '육식 금지' 해제는 새 시대의 축포였다.

그러나 너무 일찍 축포를 터뜨린 조선은 속도 조절에 나서야 했다. 백성들의 밥그릇은 여전히 비어 있었기 때문. 첫 조치가 '소 도살 금령'이다. 그리고 조선은 고려와 달리 밥상을 전면적으로 통제했다. 이른바 성리학의 명분론을 앞세운 '밥상 차별'이다. 사대부 중심의 계급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왕은 12첩 반상, 양반은 7첩 반상, 중인 이하는 5첩·3첩 반상을 차려 먹도록 강제했다. 하지만 이 이데올로기를 비집고 맛을 탐한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조선의 탐식가들은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음식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조선의 왕세자 교육' 등 역사 교양서를 집필한 아동문학가 김정호 씨는 방대한 자료 더미 속에서 건져 올린 탐식가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버무렸다.

책은 이덕무의 '소박한 밥상론'으로 시작하지만, 그 밥상론을 배신하고 온갖 핑계로 맛을 탐한 조선의 탐식가들을 소개한다.

반정의 주역이자 중종의 사돈으로 권세를 누린 김안로는 개고기 탐식가로, 맛있는 개고기 요리를 바친 자들을 조정 요직에 등용해 구설에 올랐다.

다산 정약용은 길고 고달픈 유배 생활 중에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개고기를 먹었다. "개고기 삶는 법을 말씀드리면, 우선 티끌이 묻지 않도록 개를 달아매어 껍질을 벗기고 창자나 밥통은 그대로 씻어도 그 나머지는 절대로 씻지말고 곧장 가마솥 속에 넣어서 바로 맑은 물로 삶습니다." 다산이 흑산도에 유배된 형 약전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개고기는 왕실에서도 별미였다. 정조가 화성 행차를 하면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책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보자. 잔치에 오른 음식들 중 단연 '구증(狗蒸·개고기찜)'이 눈에 띈다. 실록에는 왕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내용은 없지만 왕실 연회상에도 개고기가 올랐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지배층에서는 소고기 사랑이 유별났다. 정부는 소고기 금지령을 내려 소고기 탐식 열풍을 잠재우려 했지만 소 밀도살만 성행했고, 소고기 밀매를 위한 살인사건까지 일어났다. '담박한 식성'을 뽐내는 두부도 빼놓을 수 없다. 두부의 부드러운 맛, 은은한 향, 아름다운 색과 광택, 반듯한 모양 등은 급기야 명 황제로부터 "조선 여인들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신묘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