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 책의 즐거움] 시대의 루저 철수 설명서 /이성민

철수 사용 설명서 - 전석순 지음/민음사/1만1000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1-13 19:55:42
  •  |   본지 1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철수'는 한국 국정 교과서에서 가장 흔하게 등장해 왔던 익숙한 이름이다. 대한민국 의무교육의 시작인 초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서부터 고등학교 수학 미적분 응용 문제에까지 만만한 이름이 철수였다. 요즘은 '민수'나 '지혜' 등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현재 한국 성인들 대부분은 영희의 친구 철수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이름 중에 철수가 얼마만큼 분포하는지와 상관없이 가장 '보편적'인 이름으로 통용된다.

그저 평범하고, 특별한 재주도 없고, 든든한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닌 흔하디흔한 복수의 청년들을 일컫는 대표 단수(?)로 철수는,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친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철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가 서점가에 나타났다. 21세기 '철수'는 '평범함'이 '무능함'으로, '보통'이 '루저'로 취급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토익 점수 480점 지방 국립대 출신 29세 청년, 철수. 그는 졸업 후 1년째 이력서를 넣을 때마다 번번이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고, 연애나 가족관계에서도 되는 일없이 자꾸 꼬이기만 한다. 짧지만 스물 아홉 평생이 늘 그러했다. 그럴 때마다 늘 자신이 하자 혹은 오류가 발생한 불량품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면 자신이 불량품이 아니라 상대들이 철수가 가진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했거나 잘못 사용한 탓은 아닌지 의문을 가진다. 그래서 사용설명서를 쓰기로 한다. 자신과 관계 맺어온 사람과 세상을 향해 자신을 설명하기로 한 것. 그런데 그 설명을 하필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양식'에 맞춰 풀어 간다.

"준비하기 : 사용하기 전에/ 제품 규격 및 사양, 사용하기 : 취업모드/ 학습모드/ 연애모드/ 가족모드, 관리하기 : 설치방법/ 전원공급/ 청소방법, 주의하기 : 주의사항/애프터서비스를 요청하기 전에/ 소비자피해보상 기준 안내/ 제품 보증서."

이 순서는 소설의 차례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차례를 따라 철수의 취업, 학습, 연애, 가족, 결혼 등 일상과 관계를 풀어가면서 중간중간 철수라는 전자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삽입했다. 이 작품은 도대체 감정이입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풀어가는 장면에서도 마치 제품들 간 기능의 호환과 충돌을 다루듯 언어를 구사하는 데다, 도표로 된 사용설명서를 삽입해 한 치의 감정적 개입도 허락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감이 몰려온다. 그러다, 가슴 한편으로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고 끝내 긴 한숨을 토해내게 된다.

작가 전석순은 1983년생이다. 철수와 같은 또래다. 그래서 일까. 작가는 우리들에게 자신들이 발딛고 있는 현실을 또렷이 각성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아프다. 그래서 바란다. 사용되기 위한 설명서를 쓰고 있을 게 아니라 사용 환경을 바꾸길. 청년백수 100만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철수들이 함께 어깨 걸면 가능하지 않을까. 철수가 사용설명서를 끝내면서 누구에게 보여줘야 할까를 고민하다 문득 깨닫는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그걸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사람도 결국은 철수라는 것을.

연극연출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속보] 대통령비서실, 30억 들여 월평균 11회 여론조사…내용은 비공개
  3. 3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4. 4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5. 5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8. 8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9. 9[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10. 10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1. 1[속보] 대통령비서실, 30억 들여 월평균 11회 여론조사…내용은 비공개
  2. 2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3. 3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4. 4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5. 5[뭐라노] 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6. 6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7. 7"악의적 가짜뉴스" 민주당, ‘김혜경 여사 골프 의혹제기’ 주진우 고발
  8. 8박수영 의원, 민원해결 창구 6년간 300회 운영
  9. 9인권위, 김병기 전 보좌관 제기 '국수본 수사 지연으로 인권침해' 진정 각하
  10. 10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SK하이닉스, 2026년 3분기 경영실적 발표…매출 104조, 영업이익83조
  4. 4한신공영, 가덕도신공항 접근도로 건설 사업자로 사실상 낙점돼
  5. 5올해 1~9월 부산 순유출 인구 5800명…2년새 절반 축소
  6. 6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7. 7SK하이닉스 메모리 위기론 일축…“2029년까지 D램·HBM 완판”
  8. 8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9. 9이형일 "2028년 100인 이상 사업장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
  10. 10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1. 1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4. 4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5. 5[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6. 6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7. 7[한 손 뉴스] 변호사 업무 재개한 홍준표, 대선 경선 관계자 변호 맡아(종합)
  8. 8제17회 부산고등어축제, 10월 30일 송도해수욕장에서 개막
  9. 9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10. 10“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3. 3‘은퇴 기로’ 손아섭, 2년 만에 NC로…3000고지 향한 행진 계속
  4. 4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5. 5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6. 6김해FC, 제6대 사령탑에 설기현 감독 선임
  7. 7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8. 8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9. 9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10. 10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우리은행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한국문학관 기행
바람처럼 자유로운 김홍신 문학을 ‘건축언어’로 표현한 공간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일상 언어에서 찾은 삶의 방향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송현화-Magic Airs
지나-마음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누적 180만 넘긴 ‘극장판 치이카와’ 2주 연속 정상…예매율도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9일 (음 9월 19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28일 (음 9월 18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지리산 연곡사를 찾아 시 읊은 매천 황현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