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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 만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마지막 장면. 이 영화는 니체에 대한 존경을 담고 있다. 이 장면은 스타게이트를 통과한 주인공이 아기로 돌아가 지구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이다. |
- 변화무쌍한 현실, 수학 공식처럼 주역 해석 안돼
- 어린아이가 부모 믿고 따르듯 주역 대해야
- 동서고금 모두 새로운 가치 창조할 어린아이에 주목
"깨끗한 곳을 골라 점을 친다. 남향 방 한가운데 상을 놓은 다음 분홍비단으로 싸고 다시 검은 주머니에 담아 시초 50개를 넣은 상자를 제일 멀리 둔다. 상자 앞에 나무로 만든 네모 틀을 놓고 틀 앞에 향로를 두며 향로 앞에 향을 담은 그릇을 놓는다. 향을 피우고 치성을 드린다."('주역본의'의 '점치는 절차'에서)
■고전의 본래 뜻은 오래된 명단이다
송나라 사람 주희(朱熹)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 운세를 직접 점치는 일을 매일 거르지 않았다. 점치는 절차는 꽤나 복잡한데 까다로운 절차를 매일 반복한 주희도 참 어지간한 사람이다. 매일 공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주희는 길고 가는 작대기들을 꺼내 정해진 방법에 따라 이리저리 옮겼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작대기가 점상에 수북이 쌓인다. '고전'의 전(典) 자는 이처럼 상 위에 책(冊)이 얹혀 있는 모양을 본떴다. "책이 상 위에 있는 모양"이라는 고대 중국의 어원사전 '설문해자'의 풀이도 같은 말이다.
중국 고고학자들이 예전에 옥책(玉冊)이라는 은나라 때 유물을 발견한 적이 있다. 반듯한 옥돌을 작대기처럼 깎아서 금실로 엮은 중국 최초의 책이다. 옥책에는 제사에 쓸 그릇 따위의 이름이 잔뜩 새겨져 있었다. 이름을 적는 리스트가 책의 본래 기능인데 그 흔적은 오늘날 책에도 남아 있다. 어느 쪽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크고 작은 제목을 적는 목차가 바로 그것이다. 최초의 책은 오래된 명단이고 이것이 고전의 본래 뜻이다.
그날 운세를 괘로 뽑은 주희는 괘의 뜻을 푼다고 골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주역이 어려운 탓이다. 그래서 주역에는 어떻게 읽으라는 주문이 많다. 그중에 전요(典要)와 전상(典常)이라는 말이 있는데, 주역만 아니고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소중한 힌트를 주는 말이기도 하다. 전 자는 고전의 본래 뜻이기도 하니까.
■고전은 수학 공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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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나라 건국자이자 양제의 아버지인 문제 무렵 만든 옥책. 병법의 일종인 '삼십육계'를 새겼다. |
"주역 책을 멀리할 수 없지만 주역의 도는 자주 바뀐다. 늘 변동하고 무상하며 바뀌기 때문에 주역을 '전요'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선생님이 없더라도 부모님을 대하는 것처럼 주역을 대하라. 처음 주역의 말을 따르고 주역의 방법을 헤아릴 때도 '전상'은 이미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사람'이 아니면 도는 헛되이 행하지 않는다."('계사하전' 8장)
전요는 '목차처럼 짤막한 요점' 정도 뜻이다. 그나저나 주역은 무척 훌륭하고 어려운 책인데 요점을 잡지 말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주역 책을 마치 수학 공식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탓이다. 변화무쌍한 현실에 주역의 요점만 공식처럼 달달 외워 대입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고전을 만고불변의 진리로 떠받드는 사람은 머리가 띵해진다.
그러면 주역은, 고전은 어떻게 봐야 할까? 전요가 아니라 전상으로 봐야 한다. 전상은 '사람이라면 늘 지키고 해야만 하는 일'이란 뜻이다. 지당한 말씀이라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 전상은 '그 사람'을 알면 풀린다. 선생님, 부모님과 관련 있는 그 사람은 어린아이이다.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믿고 따르듯, 주역을 대하라는 말이다. 옛날에는 '그 사람'을 성인이라고 했다.
주역을 어린아이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것은 주역의 기본적인 발상이다. "처음 점을 치면 알려주고 자꾸 점치면 더럽히게 된다. 더럽히면 알려주지 않는다."('몽괘' 괘사) '격몽'이란 말이 나온다고 세상 모르는 어린아이를 때려서라도 가르치는 교육과 연결시키는 사람이 많은 몽괘의 말이다. 현대 중국의 문학가 노신은 말한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점치며 보채는 사람은 어린아이이고 점괘를 베풀어주는 천지 신령은 부모이니 믿지 못하고 자꾸 물으면 더 이상 대꾸하지 않는다.
■어린아이 마음을 담은 것이 고전이다
점치는 마음은 제대로 된 마음이어야 하고 제대로 된 마음은 어린아이 마음이라고 설명하는 주역은 참 독특하다. '상서' 같은 책이 고전을 "까마득한 옛날 위대한 임금님들 책"이라고 으르딱딱대는 데 비하면 주역의 생각은 얼마나 기발한지! 주역의 정신을 이어받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고전의 의미를 새로 풀어낸 사람이 있었다.
"진심이 동심이다. 거짓과 단절하고 순수하고 참된 것, 태어나서 처음 먹은 생각의 본심이 동심이다. 동심을 잃는다면 진심을 잃는 것이다. 만약 동심을 늘 가지고 있다면 도리는 시행되지 못하고 경험은 행세하지 못할 것이며 언제, 누가 짓더라도 훌륭한 글이 될 것이다. 고금의 명문은 세월의 선후만 가지고 논할 수 없다. 역사가가 지나치게 칭찬한 말이 아니면 신하들이 극도로 찬미한 말이 육경, 논어, 맹자이다."('동심설')
지은이 이지(李贄)는 평생 얽매임 없이 살았던 명나라 때 사람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도리, 수학 공식처럼 노회한 경험에 구역질이 난 모양이다. "육경, 논어, 맹자는 도학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구실이나 거짓말쟁이가 우글우글 모인 소굴이다!" 사대부라는 작자들이 숨어서는 좋아라고 보지만 겉으로는 짐짓 욕하는 '서상기'나 '수호전' 같은 소설 나부랭이를 그이는 도학자들의 성인 말씀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칭찬한다. 왜? 거기엔 어린아이 마음, 진심이 담겨 있으니까. 이제 기준은 분명하다. 어린아이 마음을 담은 것은 무엇이든 고전이고 고전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
이지는 이어서 말한다. "동심은 왜 잃어버리는 것일까? 자라면서 경험을 따르고 도리가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하게 되면 동심을 잃는다. 동심을 가린 사람은 정치를 해도 정치에 뿌리가 없다." 선택의 해인 올해 새겨들을 만한 말이다. 어린아이 마음에 희망을 거는 생각은 옛 중국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최근 서양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니 동서고금이 한 빛깔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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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형석 고전인문학자 |
"도시에 들어선 차라투스트라는 줄타기를 보러 온 시장의 군중에게 위버멘쉬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군중 속에서 어떤 자가 외쳤다. '줄 타는 광대 이야기라면 이미 들을 만큼 들었다. 그러니 이제 그 모습을 보여 달라!' 차라투스트라를 비웃는 웃음이 와하하 퍼졌다. 그러자 자기를 두고 한 말이라고 믿은 시장의 광대는 곡예를 시작했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광대는 거짓 선지자가 본래 뜻이겠지만 선거가 임박한 지금 상황에서는 정치가라고 바꿔 읽어도 좋겠다. 위버멘쉬(Uebermensch)는 이전에 흔히 '초인'이라고 옮기던 말이다. 사람을 넘어선 사람, 정신의 사람이라고 할 만한 위버멘쉬를 니체는 어린아이라고 했다. 니체는 정신의 변화를 낙타, 사자, 어린아이 세 단계로 나눈다. 낙타는 '너는 마땅히 해야 한다'는 이름을 가진 무서운 용에게 짓눌려 체념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채 겨우 사는 불쌍한 인간의 노예 상태를 상징한다. 사자는 용에게 맞서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감히 울부짖는 의지의 자유 상태를 상징한다. 하지만 사자도 한때일 뿐. 강탈을 일삼기는 사자도 용과 마찬가지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늑대'라는 혼돈. 사자는 아직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없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 주인공은 어린아이이다.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한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들끓고 있다. 1%만 빼고 99%가 분노한다. 분노하라고 부추기는 사람도 많다. 용의 해에 사자를 부르는 셈이다. 하지만 사자도 강탈을 일삼기는 용과 마찬가지이고 사자탈을 벗지 못하면 끝내 짐승이긴 매한가지이다. 사자처럼 분노하되 우리는 결국 어린아이로 돌아가야 함을 잊으면 안 된다.
경성대 중어중문학과 초빙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