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성은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맹자, 제후들에 추상같이 따져
- 지식인이 타락하면 천하가 뒤바뀌는 것이 역사의 법칙
- 선각자, 진실 말해야

공도자(公都子)가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스승께서 따지기를 좋아한다고 일컫는데, 감히 여쭙겠습니다. 왜 그러시는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내가 어찌 따지기를 좋아하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다. 세상에 인간이 나온 지 오래되었는데,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졌다. … 나 또한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삿된 주장을 그치게 해서 그릇된 행위를 막고 어긋난 말들을 내쳐서 세 성인(우왕·주공·공자)의 뜻을 이으려고 하는 것이니, 어찌 따지기를 좋아하겠는가. 어쩔 수 없어서다."('등문공'·하9)

중국에 있는 맹자의 상.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사로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좋은 게 좋다"는 말이다. 제법 학식이 있다는 자들이 그런 말을 내뱉을 때는 다시 한 번 그 낯짝을 들여다보게 된다. 과연 이 말이 이치에 닿는다고 여겨서 그렇게 말하는가 하고 말이다. 정말로 좋은 게 좋은가? 아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의 낯빛을 한 번 보라. 유쾌한 표정이나 상쾌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가? 아니다. 무언가를 얼버무리고 얼렁뚱땅 넘겨버리려는 얄팍한 속내가 그 낯빛에 묻어난다. 그것은 이 말이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따지고 가려내야 하는 일을 흐리멍덩하게 만드는 짓임을 스스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맹자가 말한 시비지심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리는 막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이 사회 곳곳에 스며들면서 무책임과 책임 회피 또한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맹자가 제후들에게 "백성이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고 단호하게 말한 까닭도 무책임과 책임 회피를 추궁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백성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되었으면서 동시에 백성이 귀하고 임금이 가벼운 것이 실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임금 없는 백성은 있어도 백성 없는 임금은 존재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 단순한 이치를 망각하고 임금이 제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면서 백성을 죽음으로 내몰고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어찌 몰아붙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맹자의 말을 당시 사람들은 "따지기를 좋아하는 심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제자인 공도자도 "왜 그렇게 따지십니까?" 하고 물었던 것인데, 맹자는 "내가 어찌 따지기를 좋아하겠는가"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따지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병증이 깊은 어지러운 시대였기 때문이다. 어지러운 시대란 애매하거나 모호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애매하고 모호해진 시대다. 따진다는 것은 그 애매하고 모호해진 것을 또렷하게 밝히는 일이다. 그러니 어지러운 시대에 어찌 따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불가(佛家)에서는 "분별심을 버려라"고 가르친다.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가소롭다. 이 말을 과연 아무에게나 할 수 있을까? 분별심을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분별심을 가져야 한다. 없는 분별심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분별심이 없는 사람에게 분별심을 버리라는 것은 거지에게 기부하면서 살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사에 들볶이며 사는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분별심, 곧 시비지심이 먼저 갖추어져야 한다. 나중에 그 분별심의 한계를 자각하여 버리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분별심을 가져야 한다. 그런 시대다!

■맹자는 시대가 부른 사상가다

맹자의 어조는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것은 그만큼 그 시대와 지배층의 병증이 깊었다는 뜻이다. '맹자, 현대도시를 거닐다'의 어조가 서늘하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이 시대의 병폐가 그만큼 크고 깊다는 의미다. 진실은 말하기도 어렵지만, 듣기는 더욱 어렵고 심지어는 괴롭다. 그러나 진실은 말해야만 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하늘이 (주 왕실을) 자빠뜨리려 하니, 그렇게 떠들면서 몰려다니지 말라(無然泄泄)'고 하였으니, 예예(泄泄)는 답답(沓沓)과 같다. 임금을 섬기면서 올바름이 없고, 나아가고 물러남에 예의가 없으며, 말을 했다 하면 선왕의 길(이치)을 비방하는 것을 '답답'이라 한다. 그래서 '임금을 꾸짖어 어려운 일을 하게 하는 것을 깍듯함(恭·공)이라 하고, 착한 것을 말하여 삿됨을 막는 것을 지극함(敬·경)이라 하며, 우리 임금은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해침(賊·적)이라 한다'고 한다."('이루'·상)

수많은 은자들이 공자를 가리켜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려는 사람"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러나 유가의 무리들은 세상을 버릴 수 없었다. 세상에 태어났으니 세상에서 어울려 사는 길을 모색해야 했다. 은자들처럼 해보기도 전에 "안 된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이기적인 처세일 뿐이다.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그 병통을 꿰뚫어본 이라면, 어찌 그것을 외면하겠는가? 더구나 삿된 자들이 그런 틈을 노려서 제 이끗만을 챙기며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는데, 어찌 제 한 몸만 건사하겠는가.

시대가 혼란해지면, 그릇된 말들을 지어내는 자들이 반드시 있다. 병통이 깊으면, 지식인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도리어 그릇된 짓들을 앞서 한다. 맹자가 말한 "올바름이 없고 예의가 없으며, 말을 했다 하면 이치에 어긋나는 짓"을 예사로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시비지심이나 사양지심도 없을 뿐 아니라 수오지심조차 없다. 한마디로 짐승들 소굴이 되어버린다. 그런 때가 되면, 천하는 한 번 뒤집혀질 수밖에 없다. 그게 또한 역사의 법칙이었다.

천하가 뒤바뀌어야 할 때가 되면, 먼저 저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나온다. 이른바 "먼저 깨친 자" 곧 선각자다. 맹자는 전란이 끊이지 않고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대가 부른 선각자였다. 그러했기 때문에 "하늘은 이 백성을 내면서 먼저 안 자가 나중에 아는 자를 깨우치고, 먼저 깨친 자가 나중에 깨치는 자를 깨우치게 하였다. 나는 하늘이 낸 백성 가운데서 먼저 깨친 사람이다. 나는 앞으로 이 도리로써 이 백성을 깨우칠 것이니, 이들을 깨우치는 일을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만장'·상)라고 말했던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느끼고 그 시대의 소명을 받아들였으므로 맹자는 당당하고 호기롭게 제후들을 만나 칼날보다 날카로운 세 치 혀를 놀렸던 것이다. 말하자면, 맹자는 그 시대에 응답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선각자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다 선각자는 아니지만, 선각자는 대체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시대를 앞섰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 시대 사람들보다 더 깊이 보고 더 멀리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의 병통을 치유할 수 있는 방책을 내놓지만, 그 시대에는 쓰이지 못한다. 뒤늦게 그 가치와 효용을 알아챈 이가 나타나야만 비로소 빛을 발한다. '맹자'가 바로 그런 책이다.

■고전은 '지금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정천구 고전학자

2011년은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해였으리라 생각한다. 죽은 줄 알았던 맹자가 되살아나 현대도시를 활보하면서 때로는 비애감을 때로는 통쾌함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만약 '맹자'를 끌어온 일이 적절하고 절묘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맹자'가 고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이 사회의 병증이 깊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쁘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때로 '맹자'를 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하거나 필요한 부분만 끌어와서 단장취의(斷章取義)했다고 비난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다. 맹자의 말로써 대답하자면 이렇다. "'서경(書經)'을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다. 나는 '무성(武成)'편에서 필요한 것 두세 쪽만 가져왔을 뿐이다. 어진 사람에게는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지극한 어짊으로 지독하게 어질지 못한 자를 치는 일이니, 어찌 그 피가 절굿공이를 떠내려가게 하는 일이 있겠는가."('진심'·하)

고전이 고전이 되는 까닭은 바로 끊임없는 해석의 연속에 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늘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있어서 고전이 되는 것이다. 그럴 여지가 없다면, 그것은 고전이 아니라 그저 "오래된 책"으로서 고서(古書)일 뿐이다. 고전의 가치는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고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운 시대마다 거듭 새롭게 해석되면서 오래도록 고전의 명성을 누린다. 새롭게 해석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고전이 아니다. 죽은 자의 찌꺼기로 남을 따름이다. 감히 말하건대, 20세기에 '맹자'는 한낱 찌꺼기였다. 그러다가 21세기에 현대 도시를 거닐면서 비로소 찌꺼기가 아닌 고갱이였음이 입증되었다.

이 시대에 너도나도 인문학이니 고전이니 말들을 한다. 그러나 인문학도 고전도 말로만으로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 송나라 때 사상가인 장재(張載·1020~1077)가 한 말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세상을 위해 마음을 정하고, 백성을 위해 사명을 다한다. 앞서간 성현들을 위해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해 태평성세를 연다." 맹자가 그러했고, 이제 우리가 그래야 할 때다. -끝-


# 맹자 어록

"백성이 귀하고 임금은 가볍다."


"어짊(仁)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고, 올바름(義)을 해치는 것을 '잔(殘)'이라 합니다. 어짊을 해치고 올바름을 해치는 자를 '한낱 사내'라 부릅니다. 한낱 사내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올바름을 뒤로 하고 이로움을 앞세운다면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與民樂)이 왕도다."


"어짊이란 활쏘기와 같으니, 활 쏘는 자는 자신을 바르게 한 뒤에야 쏘며, 쏘아서 맞히지 못하면 자기를 이긴 자를 탓하지 않고 돌이켜 자신에게서 허물을 찾을 따름이다."


"임금이 신하를 개나 말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평범한 사람처럼 여긴다. 임금이 신하를 흙이나 풀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도둑이나 원수로 여긴다."


"우산(牛山)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었는데, 큰 나라의 교외에 있었다. 사람들이 도끼로 날마다 베어 갔으니, 어찌 산이 아름답게 될 수 있겠는가. 밤낮으로 자라고 비와 이슬에 젖어 싹이 나지 않는 일이 없건마는, 소나 양을 풀어 놓아 싹을 먹게 만들었다. 그래서 저토록 민둥해졌는데, 사람들은 그 민둥민둥함을 보고는 본래부터 좋은 재목이 없었다고 여긴다. 이게 어찌 산의 본성이겠는가?…그러므로 진실로 제대로 기를 수 있다면 자라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고, 진실로 제대로 기르지 못한다면 사라지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사람은 부끄러워함이 없어서는 안 되는데,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