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 통하고 지켜지는 사회"를 강조하는 서울대 안철수 교수가 지난 1일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 큰 일 할 사람에게는 험난한 시련이 약
- 고결한 굴원의 죽음…초나라 멸망 실마리
- 참된 성인이라면 천하 백성들 돌봐야
- 안철수식 기부 확산…사리사욕 설 곳 없어

맹자가 제(齊)나라를 떠날 때, 충우(充虞)가 길에서 여쭈었다. "선생님께 찐덥지 않은 낯빛이 있는 듯합니다. 지난날에 제가 듣기로, 선생님께서는 '군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는 그 때요, 이 때는 이 때다. 500년이면 반드시 왕 노릇할 자가 일어나리니, 그 사이에 반드시 세상에 이름을 떨칠 자가 있다. 주(周)나라로부터 700여 년이 흘렀으니, 햇수를 보면 이미 지났고, 때로써 헤아려보면 지금이 그 때다. 저 하늘이 아직 천하를 화평하게 다스리려 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천하를 화평하게 다스리려 한다면, 바로 지금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있겠느냐. 내 어찌 찐덥지 않겠느냐."('공손추'·하)


여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꼼수와 날치기로 비준하였고, 그 날 국회 의사당에서는 최루탄이 터졌다. 그리고 비준을 반대하여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은 물대포를 쏘았다. 그 추운 날에. 게다가 시위대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서는 폭행을 당했다고 애써 주장하는 서울 종로경찰서장도 있다. 또 최근에 교육과학기술부는 "금품과 향응수수, 성폭행, 상습폭행, 학생 성적조작 등 교육현장에서 '4대 비위'를 저지른 교원은 최대 2년까지 승진이 제한된다"고 발표했다. 누구라도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을 교육자가 저질렀는데도 고작 승진이 제한된다니! 도대체 여기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게 있는가? 그런데 이런 몰상식한 사회를 만든 이는 과연 누구일까? 누가 상식을 되살릴 것인가?

■혼탁한 세상에서 깨어 있는 자 누구인가

홍콩에서 해마다 열리는 용선 경주. 이 대회는 초나라 정치가 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진 것을 기리기 위해 개최된다.

상식(常識)이란 맹자가 말한 시비지심(是非之心)과 다르지 않다. 맹자는 상식의 차원에서 왕도를 내세웠을 뿐이다. 왕도란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일일 뿐이다. 거기에 무슨 거창한 천하 경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런 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므로 맹자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맹자는 충우의 물음에 대해 "그 때는 그 때요, 이 때는 이 때다"라고 말했다. 이는 때를 아는 이의 말이다. 때를 안다는 것은 세상사를 안다는 것이요 역사를 꿰뚫어보는 통찰을 지녔다는 뜻이다. 모든 위대한 사상가들은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녔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 시대의 병폐를 깊이 알고 치유책을 내놓을 수 있겠는가. 또 당대에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은 너무도, 참으로 너무도 시대를 앞섰기 때문이다. 공자가 "상갓집 개"라는 말을 들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평생토록 애썼으나, 맹자가 벼슬 한 자리 차지하지 못한 것도 역시 당연하다.

"뛰어난 자들은 도를 들으면 애써 행하려 하고, 중치들은 도를 들으면 긴가민가하고, 하치들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는다. 그런데 그들이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다"('도덕경'·41장)고 노자도 말하지 않았던가. 편작(扁鵲)과 같은 명의는 징후가 나타날 때에 병을 다스린다. 그러나 범부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래서 병을 더 키우고서야 비로소 의원을 찾는다. 시대의 병폐에서도 마찬가지다. 선각자들은 미리 진단하고 처방책을 내놓지만, 그 시대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굴원(屈原·기원전 343-277)이 있었다. 그는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매우 깊었다. 그러나 아첨하는 무리의 모함을 받아 쫓겨났다. 굴원은 자신이 쫓겨난 것보다 군주가 현명하지 못해 나라가 망할 것을 먼저 걱정했다. 어느 강가에 이르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물가를 거닐었는데, 그의 낯빛은 꾀죄죄하고 모습은 마른 나뭇가지처럼 야위었다. 한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당신은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소."

결국 굴원은 결백한 사람이라서 혼탁한 세상에서 취한 사람들과는 살 수 없다고 여겨 돌을 안은 채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의 죽음은 굴원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았다. 결국 초나라는 굴원처럼 간언하는 이가 없었던 까닭에 날로 쇠약해지다가 수십 년 뒤에 진나라에 멸망당했다. 진나라에 맞설 수 있었던 초나라가 망한 것은 진나라가 더 강성해서가 아니었다. 초나라에 깨어 있는 자가 없어서 천천히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세상에 나 말고 누가 있겠는가

고결한 성품을 지니고 충정이 깊었던 굴원을 후대의 지식인들은 높이 기리었다. 그의 열전을 역사서에 실었던 사마천도 이렇게 썼다. "장사(長沙)에 가서 굴원이 스스로 빠져 죽은 연못을 바라보고 일찍이 눈물을 떨구며 그의 사람 됨됨이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삶과 죽음을 한가지로 보고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가볍게 여겼으니, 나는 마음에 깨달은 바 있어 상쾌해지며 스스로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맹자라면 굴원을 그렇게 높이 일컬었을까? 아니다. 맹자는 그런 죽음을 헛된 것이라며 나무랐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그 때를 알고 기다릴 줄 몰랐다고 하면서.

무엇보다도 맹자는 큰일을 할 사람에게는 그만큼 험난한 시련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하늘이 그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그 힘줄과 뼈마디를 힘들게 하며 그 몸뚱이를 굶주리게 하고 그 몸을 고달프게 하여,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이는 그 마음을 다잡아 참고 견디는 성품을 길러주어 이제까지 할 수 없었던 것까지 이룰 수 있게 해주려는 것이다"('고자'·하)고 말하지 않았던가. 쉽사리 이루어질 일이라면 굳이 애써 할 까닭이 없다. 맹자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랬으므로 응등그러진 마음도 없었고, 누구를 탓하는 법도 없었던 것이다. 나아가 "만약 하늘이 천하를 화평하게 다스리려 한다면, 바로 지금 세상에서 나 말고 누가 있겠느냐"고 호기롭게 말했다. 이런 호기가 어찌 갑자기 일어난 것이겠는가.

굴원에게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느냐고 물었던 어부가 또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대체로 성인이란 사물에 매이지 않고 세상의 변화와 함께 간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뭇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지녔으면서 스스로 내쫓기게 되었습니까?"

아, 어부의 말은 옳으면서도 그르다. 그의 말대로 혼탁한 세상에서 그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은 성인이라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 홀로 유유자적하며 자유롭게 노니는 일은 세상을 버리는 짓이다. 천하에 살면서 천하를 내버려두고 천하 백성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찌 참된 성인이라 할 수 있으랴. 천하와 백성들을 버려두고 제 홀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성인이 할 짓이 아니다. 그래서 공자처럼 맹자도 천하를 주유했던 것이다. 맹자가 "가운데로 가는 이가 가운데로 가지 않는 이를 기르고, 재주 있는 자가 재주 없는 자를 기른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현명한 부모가 있음을 좋아한다. 만약 가운데로 가는 이가 가운데로 가지 않는 이를 버린다면, 현명한 자와 못난 자의 차이는 한 치도 못된다고 하리라"('이루'·하)고 말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상식의 시대는 상식의 시민이 만들어야

정천구 고전학자

올해 한국사회의 중심에 선 인물은 안철수 교수다. 그가 던진 화두는 '상식'이다. 1995년에 안철수연구소를 세워서 컴퓨터바이러스백신을 개발하며 개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한 일에서 최근에 1500억 원을 기부한 것까지 그가 한 일은 상식을 넘어서는 듯하지만, 한 순간도 상식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러했기에 그는 상식의 시대를 꿈꾸고 있고 그런 시대가 도래할 것을 믿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몰상식에 익숙한 시민들이 그저 그를 경이롭게 바라보기만 하고 스스로 상식적인 사람이 되려 애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비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맹자가 말했듯이, 상식이 없고 상식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사람이 아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그대로 병집의 소굴이다. 그런 소굴에서는 권력이나 금력을 쥔 자들이 사리사욕을 채울 뿐이다. 이제 시민이 상식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지금 나 말고 누가 상식의 길을 열겠는가!"라며 호기롭게 나아가야 할 때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힘이 오리 한 마리를 이길 수 없다고 한다면 힘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고, 이제 3000천근을 든다고 한다면 힘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 옛날에 장사였던 오확(烏獲)이 들던 짐을 든다면, 그 또한 오확이 될 뿐이다. 사람이 되어서 어찌 이기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는가. 스스로 하지 않을 뿐이다."('고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