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이상용의 시네 아고라] 세이렌의 노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1-28 18:51:17
  •  |   본지 2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영화 '스모크' 포스터.
지난 주 이 코너를 통해 올해 시상식 영화제들을 일별하면서 한 해의 밑그림을 그려보았다. 하지만, 한 해의 시상식이 대중적인 의미의 결산이 될 수는 있어도 영화예술의 새로운 변화를 가늠해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박스오피스 성적과는 무관하게, 아니 박스오피스를 넘어서서 영화라는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라는 본질론적인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예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유명한 신화 중의 하나가 이타카로 귀향하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의 노래'다. 신화에 따르면, 세이렌의 노래는 너무나 강렬한 유혹이어서 노래를 듣는 뱃사람들을 바다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노래소리는 '나가수'와는 비교될 수 없는 감동이었고, 너무나 강렬한 것이어서 자신이 속한 상황과 위치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었다. 뱃사람들은 노래소리에 끌려 손에 잡은 그물을 던져두고 노래가 들려오는 바다를 향해 걸어갔던 것이다.

우리는 이 상황에 대해 노래뿐만 아니라 '세이렌'은 무엇이었는가를 질문할 수가 있다. 모리스 블랑쇼는 예술을 논하는 자리에서 "요컨대 동물에 불과한 세이렌이 인간과 똑같이 노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의 노래는 아주 기이한 것이 되어 버렸고, 그것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이 부르는 모든 노래도 비인간적인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게 했다"고 말한다. 흔히, 천상의 목소리나 신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저 가인들의 노래소리는 이따금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지 않는가. 블랑쇼의 말은 세이렌이라는 존재는 원래 노래라는 것의 절정이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되어 버린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가 이 일화를 기록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왜냐하면, 호메로스의 이야기야말로 애초에는 노랫말과 가락이었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의 첫 머리에 세이렌의 노래를 기록하는 것은 호메로스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을 기록한 '일리아드'와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 '오디세이아'를 통해 호메로스야말로 세상의 세이렌이 되고 싶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일리아드'는 신도 속일만한 지혜를 지닌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기만'을 기지로 통과하고, 결국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갔다고 말하지만 무수한 전설이 남긴 것은 세이렌의 강력한 노래로 인해 죽음을 맛본 이들의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이 이야기에서 진짜 기만을 부린 것은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호메로스이며, '일리아드' 전체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세이렌이라 할 수 있는 호메로스는 자신의 노래인 '일리아드'를 통해 독자를 기만하고, 멋지게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로 빨려들 수 있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독자들은 오디세우스의 무사통과에 안심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호메로스의 입담 좋은 기만에 빠져드는, 텍스트의 바다로 빠져드는 순간을 알려주는 것이다.

모름지기 좋은 영화예술이나 좋은 이야기란 이와 같다. 독자가 속지 않고 있다고 믿는 순간 속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좋은 기만, 즉 예술이 허구를 통해 표현하는 기만에 해당된다. 우리는 예술적 기만이라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순간들을 웨인 왕이 연출하고, 폴 오스터가 쓴 '스모크'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속 소설가 폴 벤자민은 담배가게 주인 오기로부터 크리스마스용 단편소설 이야기의 사연을 들은 뒤 "당신이야말로 예술가다!"라는 상찬을 한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직접 경험했다고 하는 오기의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헷갈린다. 그 순간이야말로, 진짜 기만, 진짜 예술이 꽃피는 순간이다. 속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면서 속일 수 있는 그 순간. 바로, 예술적 모멘트!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3. 3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4. 4전재수 부산시장 “목숨 걸고 북항 돔구장 공모 준비”
  5. 5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6. 6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7. 7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8. 8“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9. 9경남도, 2027년 농어촌 기본소득 공모에 산청군만 추천
  10. 10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1. 1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2. 2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3. 31호기 명단 유출 파일 'MOFA(외교부) 형식, 유출 경위 파악에 주력
  4. 4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5. 5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6. 6친청 “공개사과하라”·김 “자정 노력”…민주 신천지 수습 난항
  7. 7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8. 8與주도로 조작기소 특검법안 법사위 상정…국힘 반발·퇴장
  9. 9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10. 10美 중간선거 시작, 우주서도 투표는 계속된다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가덕도신공항 올해 예산집행률 고작 0.03%…정상화 시급"
  4. 4“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5. 5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8. 8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김장재료 공급 차질 없도록 할 터”
  9. 9‘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10. 10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전재수 부산시장 “목숨 걸고 북항 돔구장 공모 준비”
  3. 3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4. 4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5. 5경남도, 2027년 농어촌 기본소득 공모에 산청군만 추천
  6. 6“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7. 7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8. 8부산 양정동 한 대학 창고서 불…인명피해 없어
  9. 9수능 ‘AI 안경 커닝’ 막는다지만…전문 탐지기 없어 실효성 의문(종합)
  10. 10첫 공소청 수장 후보, 이정현·박철우·예세민 물망(종합)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4. 4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5. 5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6. 6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7. 7[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8. 8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극락암 벚나무 /홍종원
곰 두 마리 /황인숙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5일 (음 9월 26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4일 (음 9월 25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