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자 정천구의 맹자, 현대도시를 거닐다 <30> 직업만 갖고 사명은 버린 기자들

밥줄에 목매 책무 저버린, 천하를 속이는 기자는 떠나라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1-11-15 19:50:58
| 본지 20면


	맹자는 임금의 잘못을 간언하는 임무가 경(卿)에 있다 했다. 이는 오늘날 기자에 해당되는 것으로 기자가 진실 추구에 매진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은 취재에 열중하고 있는 기자들. 국제신문DB

- 盧 대통령의 자살, 한진重 사태·미디어렙…
- 사실·진실 간언해야 할 '인척의 경'인 언론·방송
- 그릇된 것 바꾸지않고 '해침'만 일삼아서야
- 진실을 말하고 쓰면 목숨이 위태로운가, 밥벌이 잃을까 두려운가
- 침묵의 펜은 필요없다

제나라 선왕이 경(卿)에 대해 묻자, 맹자가 말했다. "어떤 경에 대해 물으신 겁니까?"

"경이면 다 같지 않습니까?"

"같지 않습니다. 임금의 인척인 경이 있고, 성씨가 다른 경이 있습니다."

"인척인 경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임금에게 큰 허물이 있으면 간언하고, 거듭 간언하는 데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바꿉니다."

왕의 낯빛이 벌겋게 변하자, 맹자가 말했다. "왕은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신께 물으시니, 바른 뜻으로써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이 낯빛을 가라앉힌 뒤에 성씨가 다른 경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임금에게 허물이 있으면 간언하고, 거듭 간언하는 데도 듣지 않으면 떠납니다."('만장'·하)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해결되고 35m 높이의 크레인에 올랐던 김진숙 씨도 내려왔다. 김진숙 씨의 농성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이 없었건만, 결국에는 뜻을 이루었다. 많은 동료들과 시민들의 응원과 동참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 스스로 해낸 일임은 부정할 수 없다. 거대 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웠지만, 정작 자신을 이겨내지 않으면 바랄 수 없었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크레인을 내려오는 김진숙 씨를 보면서 문득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그는 왜곡을 자행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던 거대 언론사들과 단신으로 맞섰다가 재임 기간 내내 그 언론사들의 왜곡된 보도로 고통을 겪었고, 마침내 퇴임 후에는 언론사들의 횡포를 앞세운 정치권력에 의해서 벼랑 끝에 내몰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인의를 버리고 이익 집단이 된 언론사들

이 나라에는 대기업이나 다름없는 언론사들이 있다. 조·중·동으로 뭉뚱그려서 일컬어지는 이 언론사들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정말로 그들은 자랑한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지금에 이르렀으니, 자랑할 만도 하다. 그만큼 이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으면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언론사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거나 왜곡과 조장을 일삼거나 정론을 외쳐야 할 때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재앙이다. 그 재앙의 하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경(卿)에 대해 물었을 때, 맹자는 두 가지 경이 있다고 말했다. 경은 본래 임금의 인척들이 부여받은 신분이요 직위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인척이 아니면서도 경이 된 이들도 생겨났다. 그래서 '임금의 인척인 경'과 '성씨가 다른 경'이 공존했다. 그런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해야 할 책무는 임금의 잘못에 대해 간언하는 일이었다.

지존으로서 권력을 쥐고 있는 임금이 잘못을 하면 백성과 사직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따라서 가까이 있는 이들이 적절한 때에 간언을 해서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된다. 맹자는 "임금을 꾸짖어 어려운 일을 하게 하는 것을 깍듯함(恭)이라 하고, 착한 것을 말하여 삿됨을 막는 것을 지극함(敬)이라 하며, 우리 임금은 '할 수 없어'라고 하는 것을 해침(賊)이라 한다"('이루'·상)고 말한 적이 있다. 바로 그런 깍듯함과 지극함을 다해야 하는 이들이 경이다.

문제는 경이 거듭 간언했을 때, 임금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다. 성씨가 다른 경은 자신이 떠난다. 그러나 성씨가 같은 '인척인 경'은 임금을 바꾼다. 지금은 국민이 주인인 시대이니, 누구나 '인척인 경'이다. 언론사와 방송사는 가장 중요한 '인척인 경'이다. 사실과 진실을 보도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대 언론사들은 인의를 바탕으로 정론을 펴면서 그릇된 이를 바꾼 게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에 걸림이 되는 이를 몰아 붙이더니 이윽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간언보다 왜곡을 임무로 삼아 전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깍듯함과 지극함은 없이 오로지 '해침'만 있었던 것이다.

■사명을 버리고 직업만 가진 기자들

어떻게 해서 거대 언론사들이 그런 횡포를 저지를 수 있었는가? 바로 그 구성원들인 기자(記者)들이 기꺼이 동참하고 동조했기 때문이다. 언론사란 기자들의 모임이 아닌가. 그런데 기자들이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고 사측의 이끗에 따라간다면, 기자는 이미 "책무를 저버린" 기자(棄者)요 "천하를 속이는" 기자(欺者)일 뿐이다.

왜 기자가 책무를 저버리고 천하를 속이는가? 직업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직업으로 여기므로 밥벌이에 지장이 될 만한 일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이끗을 탐하는 언론사에 있다는 것 자체가 밥벌이를 위해 기자 노릇을 한다는 뜻이다. 이끗을 탐하지 않는 언론사나 방송사의 기자들 또한 광고주의 돈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역시 밥벌이를 위해 보신하고 조신하게 굴면서 어느새 기자의 사명은 잊어버렸다. 그러면서 사실만을 공정하게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임무라면서 비판적인 언사는 삼간다.

본래 기자는 역사가였다. 역사(歷史)의 '사(史)'가 바로 "일을 기록하는 사람" 곧 기사자(記事者)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과거의 일뿐만 아니라 현재의 일까지 기록하는 자가 사관이었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라. 사마천은 지나간 일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았던 무제(武帝) 때의 일들도 아울러 기록하고 있지 않은가. 기록만 했는가? 아니다. 은근하면서 날카로운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이 역사가로서 기자의 일이요 사명이다. 그런데 사명을 저버리고 광고주의 눈치를 본다면, 과연 기자라 할 수 있을까?

전국시대 제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제나라 장공(莊公)은 대부인 최저(崔杼)의 아내인 당강(棠姜)과 사통하여 자주 그 집에 드나들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최저는 장공에 대해 원망을 품게 되었다. 장공에게는 가거(賈擧)라는 시종이 있었는데, 장공은 그를 매질한 적이 있음에도 가까이 두고 있었다. 원망을 품은 최저가 장공을 시해할 뜻을 품었을 때, 그 가거가 최저를 위해 장공을 시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최저가 병을 핑계로 공무를 보지 않을 때, 장공이 그를 문병하러 갔다가 틈을 보아 당강과 은밀히 만났다. 그런데 당강은 내실로 들어가서는 최저와 함께 옆문으로 빠져나갔다. 장공은 그런 사실을 모르고 기둥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가거가 신호하여 무장한 병사들이 뛰어들어 장공을 죽였다.

최저는 경공(景公)을 새 군주로 세우고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그러자 기록을 맡은 태사(太史)가 죽간에 이렇게 썼다. "최저가 그의 군주를 시해했다."

그러자 최저는 태사를 죽였다. 태사의 아우 중 두 사람이 계속해서 이같이 기록하다가 연이어 죽음을 당했다. 태사의 또 다른 아우가 또 그렇게 기록하자, 최저는 더 이상 죽일 수가 없었다.

물론 최저는 원망을 품었을 뿐 직접 장공을 시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읽고 장공을 시해한 가거의 죄를 묻지 않고 자신은 대부가 되었으니, 그 스스로 시해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것은 사실이면서 진실이다. 태사는 그 진실을 숨기지 않고 썼고, 그 대가로 죽음을 당했다. 그 아우들도 태사의 직책을 다했다. 그리고 죽었다. 자, 이 시대의 기자들도 그런 위험 속에 있는가? 진실을 말하고 쓰면 목숨이 위태로운가? 고작해야 밥줄을 잃는 것뿐이지 않은가?

■침묵하면서 떠나지 못하는 기자들이여

재벌과 언론, 검찰 권력이 어떻게 결탁해 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삼성의 '떡값 리스트'를 공개한 혐의로 노회찬 전 의원이 대법원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언론과 방송에서는 거의 이를 다루지 않았다. 이 불의를 앞에 두고 그야말로 '고요의 바다'처럼 조용하다. 미디어렙 법안과 종편 채널에 관해 그토록 반대하던 기자들은 또 어디로 갔나? 김진숙 씨 같은 기자는 없는가? 아마 기자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팔자 좋은 네가 말해라!"

그렇다면,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맹자가 (제나라 대부인) 지와에게 말했다. "그대가 영구(靈丘)의 수령을 사양하고 사사(士師)가 되기를 빈 일은 그럴 듯하니, 그것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소. 그런데 이제 여러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말할 수 없단 말이오?"

지와가 왕에게 간언했으나 쓰이지 않자, 신하의 직책을 내놓고 떠났다. 이에 제나라 사람들은 "지와를 위해서 한 것은 좋지만, 맹자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은 까닭을 우리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맹자가 말했다. "내 들은 적이 있다. 관직을 지키는 자는 그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 떠나고, 언론을 책임진 자가 그 말을 하지 못하면 떠난다고. 나는 지켜야 할 관직이 없고 언론을 책임지지도 않았으니, 내가 나아가고 물러나는 일이야 어찌 여유작작하지 않겠는가?"('공손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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