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행정이 진정으로 백성을 위할 때 우리 사회는 한결 성숙해질 것이다. 국제신문 DB

- 공공도서관 민간위탁 추진하는 부산시 행정은 안에서 갉아 먹는 좀 같아
- 4대강 사업 요란한 선전, 차일피일 하는 무상급식, 등록금 시위 물대포 대응
- 현정부 정책 상당수는 일 선후본말 몰라 생긴것

맹자가 말했다. "백이가 포악한 주왕(紂王)을 피하여 북해의 물가에 가서 머물다가 문왕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서백(西伯, 문왕)은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고 들었다'고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고, 강태공은 주왕을 피하여 동해의 물가에 가서 머물다가 문왕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오? 서백은 늙은이를 잘 봉양한다고 들었다'고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으니, 천하에 늙은이를 잘 봉양하는 이가 있으면 어진 이가 제 돌아갈 곳으로 여긴다.…서백이 늙은이를 잘 봉양했다는 것은 그 마을과 밭을 잘 마름질하고, 심고 기르는 일을 가르쳐서 처자식을 데리고 늙은이들을 봉양하게 한 것이다. 쉰에는 비단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일흔에는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으니, 그런 것을 떨며 굶주린다고 말한다. 떨며 굶주리는 늙은이가 없는 것, 이를 말한다."('진심'·상)


해마다 가을이 깊어지면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있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공사들. 가장 흔한 풍경은 보도블록을 새로 까는 일인데, 물론 예정되어 있었던 일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풍경을 보자마자 "올해도 예산이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예산!

예산이란 말 그대로 "예상해서 계산한 것"이다. 그러니 일을 실제로 하다보면, 예상보다 더 들 수도 있고 덜 들 수도 있다. 꼼꼼하게 계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했다면, 비용은 덜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예산이 남았다면, 그것은 칭찬할 일이다. 그런데 남아돈다고 아무 데나 써댄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낭비를 일삼는 자식이 하나라도 있으면 집안이 휘청거리는데, 자치단체나 나라가 그런 행정을 일삼는다면 어찌될까?

■선후본말을 모르니 현재를 갉아먹는다

	부산시청사 전경.

예산이 남았다고 보고를 하면 이듬해 예산이 그만큼 줄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말들을 한다. 그런 날명은 깡패나 하는 소리다. 예산의 책정과 실행 등에서 제도적인 허점이 있다면 진작 바로잡았어야 한다. 설령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왜 하필이면 꼭 길을 파헤치고 그다지 급하거나 긴요하지도 않은 일에 쓰는가 말이다. 먼저 사람을 챙겨야 하지 않는가. 날이 추워지면 가장 고단해지는 이들이 누구던가? 홀로 된 늙은이나 고아들이 아닌가.

모름지기 일에는 순서가 있다.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있다. 행정이란 그것을 알고 실행하는 일일뿐이다. 무슨 거창한 일을 벌여야 하는 게 아니다. 맹자는 서백을 높이 일컬었는데, 그것은 그가 늙은이들을 잘 봉양했기 때문이다. 비단옷을 입지 않으면 따뜻하게 지내지 못하는 이들,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는 늙은이들을 잘 보살핀다는 것은 자칫 소외되어 고단하게 살아갈 이들을 찾아서 보살폈다는 말이다. 이것이 왕도정치의 시작이고 행정의 기본이다.

한나라 때, 급암(汲黯)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무제(武帝)가 태자로 있을 때 태자세마(太子洗馬·제사를 받드는 벼슬)였다가 무제가 즉위하자 알자(謁者)가 되었다. 하내에 불이 나서 집 1000여 채가 탔다. 무제는 급암을 보내 실상을 살펴보고 오라 했다. 그가 돌아와서는 아뢰었다.

"백성의 실수로 불이 났고 집이 잇달아 있어서 탔으나, 우려할 만한 것은 못 됩니다. 그보다는 신이 하남 지방을 지나오다가 그곳의 가난한 백성 가운데 만여 가구가 수해나 한해를 입어 아비와 아들이 먹을 것을 놓고 싸우는 꼴을 보았습니다. 신은 삼가 부절을 가지고 임시방편으로 하남의 곳간을 열어 가난한 백성을 구제했습니다. 신은 사자의 부절을 돌려드리며 칙령을 변조한 벌을 받고자 합니다."

무제는 급암이 일을 현명하게 처리했다고 여겨 용서해주었으니, 당연하다. 급암은 명을 받은 일에 매이지 않고 겉으로 드러난 일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 실상을 파악해 그에 따라 조처를 취했다. 이것이 그가 할 일이었고 진정한 행정이었다. 행정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무슨 일에서나 그러하듯 근본과 말단,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정치학의 교본이라 할 '대학(大學)'에서도 "물건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마지막과 처음이 있으니, 먼저 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안다면 곧 도(道)에 가깝다"고 하지 않았던가.

■현재를 갉아먹으니 미래도 등친다

맹자는 "우왕(禹王)은 천하에 물에 빠진 자가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를 빠뜨린 것처럼 생각하였고, 후직(后稷)은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자신이 그를 굶주리게 한 것처럼 생각하였다. 이런 까닭에 그토록 서둘러서 챙긴 것이다"('이루'·하)라 말하였으니, 우왕과 후직이 가졌던 그런 마음이 곧 복지 행정의 바탕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그런 바탕 위에 선 행정을 찾기가 힘들다. 4대강을 파헤치는 일도 그러하고, 예산 타령이나 하면서 무상급식을 주저하는 것도 그러하다. 이런 행정에서 과연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 바삐 처리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불필요하거나 급하지 않은 일에 예산을 낭비하는 일은 어쩌면 고질병이 되어 있는 게 아닐까? 멀리 갈 것 없이 부산시의 경우를 보자. '다이내믹 부산'이니 뭐니 하면서 요란하게 떠들면서 정작 문화시설은 전국 최악이고 경제는 천천히 추락하고 있는 부산의 행정을 책임진 부산시가 지난 8월에 공공도서관을 민간에 위탁하는 조례안을 시의회에 상정하는 일로 논란거리를 제공했고 여전히 철회하지 않고 있다. 공공도서관의 민간 위탁이라니! 현재의 시장이 시정을 책임진 이래 부산시가 한 일들을 돌이켜보면, 그다지 기이하다고 여길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공공도서관을 민간에 위탁하려는 발상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영화의전당'이 아니라 '이런 발상'을 기네스북에 등재하는 게 어떨까? 단박에 될 듯해서 하는 말이다.

지금 심각한 재정난과 도저히 해법을 찾지 못하는 교육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미국이 그나마 지탱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공공도서관 덕분이다. 이전에 '제국 대신에 문화를 남긴 앤드류 카네기'에 대해 쓰면서 그가 미국의 3500개 도서관 가운데 절반을 세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개인의 깊은 이해와 혜안이 거대한 나라의 토대를 단단하게 마련한 것이다. 그는 왜 그토록 많은 도서관을 세웠을까?

카네기도 사람이었다. 그도 행복을 추구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제국을 이룩하고서도 흐뭇함이나 떳떳함을 느끼지 못했으니, 어찌 행복을 느끼거나 누렸겠는가? 한 사람의 재물이 늘어갈 때, 그만큼 많은 이들이 가난과 고통을 겪는다. 그도 그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은 나눔에 있으며 그 나눔을 최상으로 실현하는 길이 도서관에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도서관은 창조의 씨앗이 무궁무진하게 갈무리되어 있는 곳간이요, 현재를 즐겁게 해주면서 미래에 수확의 기쁨을 안겨 주는 복전(福田)이다. 어린이에서 늙은이까지 모든 이의 놀이터요 공부방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은 그 자체가 공공성을 갖는다. 민간이나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공익성이 내재해 있으므로 재물로써 비용이나 손익 따위를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공공도서관을 더 늘리거나 기존의 것을 더 알차게 꾸미려 하지 않고, 고작 민간에 위탁할 생각이나 했다니, 그런 생각을 한 자는 공공의 적이다. 밖에서 침입한 도적보다 더 고약하고 은밀한, 안에서 기둥과 들보를 갉아먹는 좀이다.

■복지 행정을 통한 참된 성장을 이루어야

	고전학자 정천구

12월이면 한국의 무역규모가 1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참으로 엄청난 규모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이미 넘었다. 이 정도면 오로지 성장을 위해 내달릴 때는 지났다는 게 분명해진다. 사실 지나도 한참 지났다. 각종 지표도 성장이 둔화되었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자치단체나 국가의 행정은 여전히 성장에 치우쳐 있다. 빚이 더욱 늘고 빈부의 격차도 심화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아무리 전 세계가 찬사를 보내는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 안에 들었다 해도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이제까지 한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된다. 폭죽이나 쏘아대면서 공공도서관은 민간에 위탁하려 하고 청남대에 '이명박 대통령 길'을 조성하려 하는 자치단체들의 어이없는 발상, 비싼 등록금으로 아우성인 대학생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연행하는 공권력, 재앙의 씨를 뿌린 4대강 사업과 요란한 선전 등은 이 나라 행정의 현주소다. 이 모두 선후와 본말을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니, 어찌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맹자는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는 것을 은혜라 하고, 남을 가르쳐서 착하게 해주는 것을 참마음이라 하며, 천하를 위해 사람을 얻는 것을 어짊이라 한다"('등문공'·상)고 말했다. 은혜와 참마음, 어짊을 구현하는 일, 이것이 복지 행정이요 참된 성장의 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