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萬章)이 물었다. "벗에 대해 여쭙겠습니다."맹자가 말했다. "나이 많은 걸로 거들먹대지 않고 신분이 높은 걸로 거들먹대지 않고 제 형제가 대단하다고 거들먹대지 않으며 벗하는 것이다. 벗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벗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믿고 거들먹대서는 안 된다. 맹헌자(孟獻子)는 수레 백 대가 되는 가문의 사람이었다. 다섯 사람을 벗으로 사귀었는데, 악정구와 목중(牧仲), 그리고 나머지 세 사람은 그 이름을 잊었다. 맹헌자가 이 다섯 사람과 벗할 때에는 자기 집안을 믿고 거들먹대지 않았다. 이 다섯 사람도 맹헌자의 집안을 의식했더라면 그와 벗하지 않았을 것이다."('만장'·하)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박원순이라는 의외의 인물이 당선되었다. 많은 이들이 바라고 기대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려도 했었다. 불과 두 달 전에는 그 자신도 출마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대중으로부터도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눌하고 서툰 그 모습에 그 지지자들은 불안을 느꼈다. 그러나 20대에서 40대까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당선되었다.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대부분 정치 혐오증으로 투표를 꺼리던 이들이 트위터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으로 행동에 나선 것이 판세를 갈랐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정치권에 거대한 지각 변동이 있으리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일련의 과정 또는 변화를 이끈 원천에 주목하고 싶다.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긴요한 가치이자 덕목이 숨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아보고 알아주는 군자의 사귐

지난 9월 6일, 대중으로부터 50%의 지지를 받고 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5%의 지지를 받고 있던 박원순 변호사가 만났다. 만난 지 10분 만에 안철수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제가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박 변호사님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변호사님의 굳은 의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감동적인 이 짤막한 말에 한 사람의 인격과 삶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단순하고 명쾌한 그 말은 결코 이기적이고 교만한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스스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갖추고 또 그런 사람을 사귈 수 있는 덕을 지녀야만 가능한 일이다.

안 원장의 언행은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의식이 지배하며 상대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진실하게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풍토조차 사라진 정치권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보다도 이기주의와 패거리 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던 정치권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 탓인지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이런저런 추측을 마구 해대면서 막말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한편으로는 이해할 만하다. 참된 사귐을 경험한 적도 꿈꾼 적도 없으니 말이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에는 '안영'(안자)의 전기가 실려 있다. 그는 재상으로 있으면서 임금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면 그 명령을 따르고 올바르지 않을 경우에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인물이다. 어느 날, 안영이 밖에 나갔다가 죄인의 몸이 된 월석보(越石父)라는 어진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다. 안영은 자기 마차의 왼쪽 말을 풀어서 보석금으로 내주고 그를 마차에 태워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안영은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내실로 들어가버렸다. 한참 있다가 월석보는 떠나겠다는 뜻을 전했다. 놀란 안영이 옷과 모자를 바로하고 사과하며 말했다. "제가 어질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어려울 때 구해드렸습니다. 어찌 이토록 빨리 인연을 끊으려 하십니까?"

그러자 월석보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듣건대,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이에게는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고 합니다. 제가 죄인의 몸일 때 옥리들은 저에 대해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느낀 바가 있어서 보석금을 내어 저를 구해주셨으니, 이는 저를 알아준 것입니다. 저를 알아주면서도 예의가 없다면, 진실로 죄인의 몸으로 있는 편이 낫습니다."

이에 안영은 월석보를 존귀한 손님으로 대접하였다고 한다. 재상인 안영은 자신을 낮추며 지극했고, 죄인이었던 월석보는 당당했다. 참된 사귐을 보여준 이들의 모습에서 안철수 원장과 박원순 변호사를 보았다면, 망녕된 생각일까?

■소인배는 패거리를 짓지 사귀지 않는다

제자인 만장이 '벗'에 대해 묻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이 많은 걸로 거들먹대지 않고 신분이 높은 걸로 거들먹대지 않고 제 형제가 대단하다고 거들먹대지 않으며 벗하는 것이다. 벗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덕을 벗하는 것이다." 나이나 신분, 배경 따위를 내세우는 자는 진정으로 사귀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자랑하는 듯이 보이지만, 오히려 사귐을 구걸하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무언가를 내세우면서 사귀려는 것은 내세울 만한 덕이 자신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덕이 없으므로 무언가로 자신을 포장하여 높이려 하는 것이다.

덕이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자들, 재물이나 지위로서 과시하는 자들, 학연이나 지연 따위로 인연을 만들려는 자들, 그들은 군자가 아닌 소인이다. 소인이 이끗을 도모하려고 자신과 비슷한 이들과 어울리는 데서 '패거리'가 나온다. 그런 소인의 생각이 패거리 의식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국부로 칭송받고 있는 쑨원(孫文)이 한탄한 것이 그런 패거리 의식에서 비롯된 울타리 문화였다. 그는 "중국인이 가장 숭배하는 것은 가족주의와 종족주의로, 국가주의는 없다"고 탄식했다. 그는 가족주의와 종족주의가 인정(人情)에 서로 호소하면서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가까운 관계냐 먼 관계냐만 따지는 패거리 문화를 만들었고, 이것이 결국 중국 사회의 분열과 대립, 국가의 몰락을 초래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쑨원이 지금 이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면, 똑같은 탄식을 하리라.

국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정치가들이 같은 정당 내에서도 무슨 계(係)니 파(派)니 친(親)아무개니 하면서 끼리끼리 어울려서 서로 헐뜯고 따돌린다. 그런 그들에게는 안철수와 박원순 두 사람은 두려우면서도 꺼려지는 대상이다. 내세울 만한 정치적 배경도 패거리도 없으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은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높이려 하지 않았다. 그게 그들의 미덕임에도 제 패거리를 믿고 거들먹대던 자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불쌍하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패거리 문화가 이 사회 곳곳에 이미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학벌을 따지고, 서울과 지방을 가르며, 지연이나 학연으로 뭉치는 것도 결국 패거리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지어는 학문을 하고 예술을 한다는 이들 사이에서도, 소통과 화합을 외치는 문화판에서도 패거리를 지으며 대립하고 갈등한다. 진리나 깨달음을 구한다는 종교 단체에서도 그런 패거리 의식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런 패거리 의식은 떳떳하지 못한 자가 제 능력으로는 바랄 수 없는 이끗을 얻으려 할 때 생기고 강해진다.

■열린 시대의 사귐을 위해서는

안철수 신드롬에서 정치적 변화의 가능성만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에게서 참된 사귐의 요체 또한 보아야 한다. 제자인 만장이 "만나고 사귈 때는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여쭙겠습니다"라고 물었을 때, 맹자는 "깍듯함(恭)이다"('만장'·하)라고 말했다. 그렇다, 깍듯함이다. 그러나 그저 자신을 낮추는 것이 깍듯한 게 아니다. 허리를 숙이고 인사나 잘하는 게 깍듯함은 아니라는 말이다. 스스로 곧고 올바르며 떳떳해지려 애쓴 이가 저절로 남에게 자신을 낮추고 삼가며 대하는 것이 깍듯함이다. 이런 면을 안철수 원장에게서 보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에게 열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스마트폰 사용자가 2000만 명에 이르고 트위터와 SNS가 없는 일상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 시대, 공간의 제약은 허물어지고 무한한 소통의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나 시대가 열렸다고 마음이 절로 열리지는 않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있다고 절로 인간관계가 원만해지지는 않는다. 인터넷에는 근거 없는 비방과 욕설, 뜬소문이 여전히 넘쳐나고, 일상에서도 서로 따돌리며 상처를 주고 괴로워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휴대폰은 스마트해졌는데, 사람은 아직도 스마트하지 못하다. 부끄러운 일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용기라고 했다. 이제 용기를 내자. 그리하여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세우자. 내가 세상의 좋은 벗이 되도록.

"한 고을의 좋은 선비는 한 고을의 좋은 선비와 벗하고, 한 나라의 좋은 선비는 한 나라의 좋은 선비와 벗하며, 천하의 좋은 선비는 천하의 좋은 선비와 벗한다."('만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