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FF '영화의 전당', 무리한 공사에 부실…문제는 있으나 책임·사죄하는 자 없어
- 한나라 개국공신 소하, 맡은 일에 한결같이 지극… 진정한 공인
- 무사안일·현상유지로 복지부동 빠져있는 현 공무원들 본받아야

"추어올리려 해도 추어올릴 게 없고, 깎아내리려 해도 깎아내릴 게 없으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고 더러운 세상과 잘 맞으며, 머물 때는 참되고 미쁨 있는 것처럼 하고 행동할 때는 곧고 깨끗한 것처럼 해서 뭇 사람이 기쁘게 따르며, 스스로 옳게 여기지만 요임금이나 순임금의 길에는 함께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덕을 해치는 자'라 한 것이다. 공자께서는 '비슷하면서 아닌 자(似而非·사이비)를 미워하셨으니, 가라지를 미워하는 것은 싹을 어지럽힐까 해서고, 번드러운 말을 미워하는 것은 미쁨을 어지럽힐까 해서고, 정나라 음악을 미워하는 것은 올바른 음악을 어지럽힐까 해서고, 쪽빛을 미워하는 것은 붉은색을 어지럽힐까 해서고, 향원(鄕原)을 미워하는 것은 덕을 어지럽힐까 해서다'라고 하셨다."(진심·하)

올해로 16회째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끝났다. 그러나 올해 영화제는 기대와 우려 속에서 시작되었다. 전용관인 '영화의전당' 때문이었는데, 결국 마지막 날에 폭우도 아닌 비에 줄줄 새면서 '허울뿐인' 전당의 본색이 드러났다. 그러나 전용관에서 비가 샜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올해 개관은 곤란하다는 반대와 비판이 거세었음에도 공사를 무리하게 강행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정작 문제는 딴 데 있다.

지난달 개관식이 열리던 날에 부산시 건설본부장은 "디자인과 설계가 비슷한 독일 뮌헨 BMW 본사 옆 홍보관인 BMW 벨트(BMW Welt·독일어 Welt는 영어의 World라는 뜻)는 시공에 8년이 걸렸지만 규모가 훨씬 큰 영화의전당은 3년 밖에 안 걸렸다. 기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또 "영화의전당은 유리가 많아 코킹(이음새)에 누수가 발생할까봐 걱정이다. BIFF가 끝나면 연말까지 정밀 진단 후 보강 공사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기적이다"고 하면서 동시에 "보강 공사를 할 예정"이라니. 참 놀라운 '모순어법'이지만, 관료다운 발언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게 "기적이다!" 신조차도 따를 수 없는, 관료주의가 낳은 기적!

◇ 일은 잘못되어도 잘못한 자는 없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기간이던 지난 14일 영화의전당 건물에 누수현상이 생겨 빗물이 마구 흘러내리고 있다. 국제신문 DB

그런데 여태 책임지고 사죄하는 자가 없다. "기적이다"고 호언했던 그 건설본부장도 고작 한다는 말이 "근본적인 시설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설계자와 협의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날명을 늘어놓은 게 고작이다. 제 공으로 내세울 양으로 공사 현장을 찾아 끊임없이 독려했던 시장도 "시설 전반에 대해 다시 시공하는 자세로 꼼꼼하게 마무리 공사에 임하라"고 지시만 했단다. 침묵과 회피, 딴청이 '보신'이 된다는 걸 이미 터득한 자들, 그런 자들을 공자는 '향원'이라 불렀다.

향원은 어떤 존재냐? 맹자가 한 말을 풀면 이렇다. 권한을 가지고 일을 했음에도 추어올리려 하면 딱히 추어올릴 게 없는 자, 일이 그릇되어 깎아내리려 해도 그 책임을 절묘하게 피하므로 깎아내릴 게 없는 자,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면서 제 이끗을 잘 챙기는 자, 속내를 잘 숨겨서 곧고 미쁜 듯이 보이게 하고 비위를 잘 맞추어 남이 잘 따르게 하는 자, 그래서 스스로 군자나 현자인 양 여기지만 함께 이치의 길로는 결코 갈 수 없는 자, 그런 자다. 공자는 이런 향원을 미워하여 "내 집 문 앞을 지나면서 내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내가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 자"라고 했으니, 향원은 '비슷하면서도 아닌 자' 곧 사이비 군자요 사이비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대놓고 소인배 노릇을 하는 자보다 더 은밀하게 '덕을 해치는 자'다. 그런 자라면 저 거심(距心)처럼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죄할 까닭이 없다.

맹자가 평륙(平陸)에 갔을 때, 그곳의 대부 거심에게 "그대에게 창을 든 병사가 있는데, 하루에 세 번 대오를 벗어났다면 그를 내치시겠소?" 하고 물었다.

거심이 대답하였다. "세 번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대가 대오를 벗어난 일 또한 많소. 흉년이 들어 굶주릴 때에 그대의 백성 가운데 늙고 야윈 자들은 도랑이나 골짜기에서 뒹굴고, 건장한 자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떠나버리는데, 그 수가 수천 명이오."

"그것은 이 거심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남의 소와 양을 맡아서 대신 기르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 일을 위해 목초지를 찾아서 꼴을 주어야 할 것이오. 그런데 목초지를 찾아서 꼴을 줄 수가 없다면, 다시 그 사람에게 소와 양을 돌려주어야 하오, 아니면 죽어가는 것을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어야 하오?"

그러자 거심은 "그것은 이 거심의 죄입니다"라고 말했다.('공손추'·하)

◇ 공인 의식이 드문 공무원의 세계

	한(漢)나라 소하의 초상화.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창업하는 데 일등공신이었던 이는 '소하(蕭何)'다. 그는 본래 패현(沛縣)의 아전이었다. 늘 공무를 조리 있게 처리하여 그 성적이 으뜸이었다. 그러다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자 그 밑에서 또 공무를 감독하였다. 유방이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으로 진입했을 때, 모든 장수들이 다투어 창고로 달려가서 금은보화를 차지하여 나누어 가졌다. 그때 소하는 궁에서 법령 문서들과 도적(圖籍) 문서들을 수집하였고 잘 보관하였다. 나중에 유방의 군대가 항우의 군사들을 누르고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산천과 요새, 호구(戶口)의 많고 적음, 재력의 분포 등에 관한 이 문서들을 소하가 완전히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또 장수로서 가장 큰 기여를 한 한신(韓信)을 추천한 이도 소하였다.

소하에 대해 사마천은 "도필리(刀筆吏·옛날에 죽간에 글을 새길 때, 잘못 기록된 것을 아전이 칼로 긁고 고친 일을 했으므로 얕잡아서 부르는 말)에 지나지 않았고, 평범하여 특별한 공적은 없었다. 그러나 한나라가 일어나자 소하는 직책을 충실하게 수행하였고, 백성들이 진나라의 법을 증오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시류에 순응시키면서 새롭게 하였다"고 일컬었다. 소하가 왕조를 창업하고 그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아전으로서 자신의 직책에 충실했기 때문이지,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맹자는 "남을 주군으로 섬기는 자가 있으니, 주군을 섬기면 받아들여지고 또 기쁘게 해주는 자다. 사직을 편안하게 하는 신하가 있으니, 사직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자다. 하늘의 백성인 자가 있으니, 통달한 것이 천하에 실행될 수 있게 된 뒤에 실행하는 자다. 큰 사람인 자가 있으니, 자기를 바르게 하여 사물이 바르게 되도록 하는 자다"('진심'·상)라고 말했는데, 소하야말로 그런 사람이다. 아전에서 승상의 지위에 올랐다는 데에 그 존귀함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에 한결같이 지극했던 그 마음이 존귀하다. 그는 진정한 공인(公人)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나라, 이 도시에서는 소하 같은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공인(公人)으로서 의식을 가진 공무원이 드물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익(公益)을 위해서 공무원이 되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선택한다. 이른바 '철밥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지루하고 답답한 시험 준비를 끈질기게 해서 공무원이 되고, 되고 난 뒤에는 깊은 애착을 갖고서 한껏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린다. 그래서 무사안일과 현상유지로 처세하면서 복지부동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예인들조차 자처하는 공인이라는 의식을 가진 공무원조차 만나기 어렵다. 하물며 소하 같은 이가 나오기를 감히 바랄 수 있겠는가?

◇ 공무원이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해, 공무원들이 들으면 섬뜩할 해외 소식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도시 메이우드(Maywood)시가 시 공무원 전원을 해고했다. 올해 초에는 위스콘신, 오하이오, 미시간, 아이오와, 인디애나 등의 주들도 심각한 재정 적자에 직면하여 공무원 노조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것은 재정 적자의 주범이 공무원 조직의 운영비용에 기인한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었다. 시와 공무원의 동반 몰락!

자, 이것이 남의 나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까? 부자도시 경기도 성남시가 작년에 파산신청을 했다. 부산시만 해도 그 부채가 상상을 초월한다. 부산시의 부채가 3조 원, 산하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합치면 7조 원에 이른다. 1년 예산이 7조5000억 원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라.

맹자는 "요임금은 (현자인) 순을 얻지 못할까 걱정하였고, 순임금은 우와 고요를 얻지 못할까 걱정하였는데, 100무의 밭을 다스리지 못할까 걱정하는 자는 농부다"('등문공'·상)라 말했다. 그러면 시나 국가의 행정과 재정이 파탄나면 누가 걱정해야 할까? 그러나, 과연 공무원들이 걱정할까? 행정과 재정의 실무를 맡았던 이들이 그들인데? 이제는 공무원들이 제 철밥통이 찌그러질까 걱정하지 않는 것만도 고마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