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피해 처마 밑에 서 있던 어머니는 맞은편 처마 밑에 있던 중학생 아들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서로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것일까. 마침내 어머니가 아들에게 건너와 그의 교모를 툭 치고는 아들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준다. 그 순간 고개를 돌려버리는 어린 아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폐막작으로 선택한 영화는 일본 영화다. 야스시 이노우에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하라다 마사토의 '내 어머니의 연대기'는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버리지 못한 중년의 아들이 서로의 사랑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감동적인 그들의 이야기가 가을날 스산한 마음을 꼭 껴안아 주는 듯 따뜻하고 다정하다.

오프닝에서 어머니의 시선을 외면했던 중학생 아들은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는 일이지만, 폭우가 쏟아지던 그 날은 다섯 살 때 자신을 할아버지의 첩에게 보냈던 어머니를 8년 만에 만난 날이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어머니의 시선을 외면하던 그 순간, 어린 그의 내면은 얼음장처럼 냉랭하게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후로도 수십 년 동안 그런 마음으로 어머니를 대해왔다.

'내 어머니의 연대기'는 어머니와 아들 간의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분노를 터트리지 않고, 또 단 한 순간도 격정에 휩싸이지 않은 채 고요하고 차분하게 가족의 일상을 그려낸다. 어린 시절의 외상을 중년이 된 지금까지 치유하지 못한 코사쿠 이가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고 또 가족의 이야기를 써서 성공한 작가가 되었지만 정작 가족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자신을 버렸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고, '편리하게도' 지금은 병으로 나쁜 기억들을 하나씩 지워가고 있다. 반대로 그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더해간다. 어머니의 기억이 아들에게로 하나씩 이동 중인 것일까. 이제 아들도 못 알아볼 지경에 놓인 어머니는 자신을 '할머니'라 부르는 이 친절한 남자에게 처음으로 비밀을 털어놓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정적 파고가 높아지는 순간. 아들 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진다. 그 눈물이 그걸 지켜보는 이의 마음에 똑 떨어진다. 치유의 약물.

어머니 역을 맡은 키키 키린과 아들 역의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관객의 마음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움직여가는 마법의 지휘봉과도 같다. 이 위대한 배우들의 연기는 언제나 훌륭했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 그들의 연기는 다른 배우로는 대체불가능한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찾아다니는 엄마처럼' 한밤중에 손전등을 들고 집을 나선 어머니를 바닷가에서 맞이하는 아들. 어머니의 부음 소식을 전해 듣기 직전, 그는 고려장을 나선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머니를 버릴 '좋은' 곳을 찾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를 버렸다고 털어놓는 아들. 

'내 어머니의 연대기'는 오즈 야스지로의 '부초'의 비 내리는 처마 신으로 시작해서 이마무라 쇼헤이의 그 처연한 '나라야마 부시코'의 현대 버전으로 끝난다. 

아름다운 불빛이 아른거리는 영화의전당 지붕 아래에서 이 영화를 만나는 일은 가을 밤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 중의 하나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