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자 정천구의 맹자, 현대도시를 거닐다 <26> 강호동에게서 여민락을 보다

'與民樂'(여민락: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다) 마인드 없는 정치인들, 연예인들에게 배워라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1-10-11 20:31:06
| 본지 21면


	가수 김장훈. 노래와 입담으로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고, 기부 활동과 독도 사랑으로 감동도 준다. 이런 게 여민락이 아니겠는가. 국제신문 DB

- 강호동, 뻔뻔하지 못해 은퇴를 선언했는데 성희롱 동료 감싸고도 부끄러운 줄 몰라
- 많은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위안 주는 예능 고수들처럼 정치와 행정 실행을

제나라 선왕이 설궁(雪宮)에서 노닐고 있다가 맹자를 보자, 물었다.

"현자도 이런 즐거움을 누립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누립니다. 그런데 다른 자들은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제 윗사람을 비난합니다.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고 제 윗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백성들의 위에 있으면서 백성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것 역시 잘못입니다.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한다면, 백성들 또한 그가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백성들이 걱정하는 것을 걱정한다면, 백성들 또한 그가 걱정하는 것을 걱정합니다. 천하와 함께 즐거워하고 천하에 대해 걱정하고서도 왕 노릇하지 못한 자는 여태껏 없었습니다."('양혜왕'·하)


	강호동

"저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TV를 통해 시청자에게 웃음과 행복을 드려야 하는 것이 제 의무이자 명령입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과 같은 상황에 어찌 뻔뻔하게 TV에 나와 얼굴을 내밀고 웃고 떠들겠습니까? 또 제 얼굴을 본들 시청자분들께서 어찌 편히 웃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달 9일, 기자회견을 열고 잠정은퇴를 알리면서 강호동이 한 말이다. 그렇다. 그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는 직업을 가졌고, 그 동안 최선을 다해왔으며,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런 만큼 범죄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 직업의 가치를 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록 잠시나마 활동을 접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게 떠나는 그를 보며, 문득 '여민락(與民樂)'이 떠올랐다.

◇ 누가 딴따라를 하찮게 여기는가

한때, 이 나라에서는 연예인을 낮잡아서 '딴따라'라 불렀다. 여전히 그런 편견이 남아 있을 테지만, 저 옛날 부처님이 말씀하셨던 "그 사람의 신분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가 한 행동으로 판단하라"는 금언을 떠올리며 한 번 생각해보자. 지금 이 나라에서 강호동과 같은 '딴따라'들만큼 대중들에게 커다란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이들이 또 있을까? 국민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여민락'을 그들보다 잘 실천하는 이들이 또 있을까?

진시황 때, 우전(優旃)이라는 이가 있었다. 우전은 신분이 미천했으므로 성씨가 없다. 그래서 직업을 그대로 성씨처럼 썼으니, 그게 '우(優)'다. 지금 배우(俳優)들에게 붙이는 그 글자다. 이 우전은 난쟁이 가수로 우스갯소리를 잘했다. 어느 날 궁궐에서 연회가 열렸는데, 때마침 비가 쏟아졌다. 섬돌 가에 늘어서서 호위를 맡고 있던 군사들은 모두 비에 젖어 떨고 있었다. 이를 보고 측은하게 여긴 우전이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쉬고 싶소?"

군사들이 말했다. "그렇게만 되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그러면 내가 당신들을 부를 테니, 당신들은 재빨리 '예'라고 대답하시오."

조금 뒤, 어전 위에서는 시황제의 장수를 빌며 만세를 불렀다. 우전이 난간으로 다가가서는 큰소리로 불렀다. "호위병들!"

호위병들이 대답했다. "예!"

"너희는 키만 컸지, 무슨 소용이 있느냐? 가련하게 빗속에 서 있구나. 나는 키는 작지만 다행히도 방안에서 편히 쉬고 있지 않느냐!"

이 말을 들은 시황제는 호위병들을 절반씩 교대로 쉬게 했다.

아, 한낱 희극배우가 보여준 그 마음, 그것이 바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이다. 그런데 이 마음을 마땅히 더 크게 지니고 있었어야 할 황제는 희극배우를 통해서 그 마음을 되찾아 호위병들에게 황은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자각하지 못했으므로 그 마음을 오래 지니지 못했다. 보라, 그 결과 시황제의 제국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따라지의 향연을 펼치는 행정가와 정치가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 부부는 잠실야구장에서 '키스타임' 때 깜짝 키스를 선보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오붓해 보여야 할 그 모습에서 무언가 찐덥지 않은 느낌을 가졌다. 그게 나뿐이었을까? 왜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을까? 치솟는 물가와 전세대란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 고달파져서 부부의 즐거움조차 잊을 지경인데, 그것을 걱정하고 책임져야 할 이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패자가 되고 싶어 했던 제나라 선왕은 맹자가 왕도를 펴라고 하자, 갖가지 핑계를 댔다. 어느 때는 "과인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으니, 과인은 미인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은 음악이나 미인 따위를 좋아하는 그런 속된 왕이니, 부디 왕도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으리라. 그러자 맹자는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옛날에 태왕께서는 여색을 좋아하셔서 그 부인을 아끼셨습니다. 노랫말에 '고공단보(古公亶父)는 아침 일찍 말을 달려 서쪽 강가를 따라서 기산 아래에 이르렀도다. 이에 아내 강씨(姜氏)를 데리고 가서 드디어 함께 살았다네'라는 게 있습니다. 바로 그 시절에는 안으로는 지아비 없는 여인이 없었고, 밖으로는 지어미 없는 사내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미인을 좋아하신다면, 백성들과 함께 하십시오. 그렇다면 왕 노릇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양혜왕'·하)

태왕 곧 고공단보는 타락한 주왕(紂王)이 폭압을 일삼던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周)나라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비록 왕이지만, 그 또한 사내이므로 여색을 가까이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 홀로 여색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백성과 더불어 즐기는가가 중요하다. 만약 지아비 없는 여인이 있고 지어미 없는 사내가 있는데도 돌보지 않고 그 자신만 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폭정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맹자는 "왕께서 미인을 좋아하신다면, 백성들과 함께 하십시오"라고 말해주었다. 이것이 '여민락(與民樂)'이다.

이제 이 나라에서 정치와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 늘 "국민을 위한다"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예사로 하는 이들 가운데에 과연 '여민락'을 알고 실천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나경원 의원은 7년 사이에 재산이 18억 원에서 40억 원으로 두 배나 늘었다. 서민들의 살림은 팍팍해지고 나라 빚은 늘어나기만 하는데, 국회의원의 재산은 늘었다. 그러고도 서울시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데,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물론 지은 죄는 없다. 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바에야 재산이 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는가만은, 그렇다고 해서 부끄럽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맹자는 "사람은 부끄러워함이 없어서는 안 되는데, 부끄러워함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워할 일이 없으리라"('진심'·상)고 말했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서 부끄러워하지 못한다면, 부끄러워할 짓을 또 저지른다. 문제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을 저지르고서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른다는 데에 있는데, 이는 '수오지심'이 없는 것이다. 수오지심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진정 여민락은 예능의 몫인가

제나라 왕은 자신이 세속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데 대해 조금 부끄러워했다. 이에 맹자는 "왕께서 음악을 아주 좋아하신다면, 제나라는 제대로 다스려질 것입니다. 지금 음악은 옛 음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라 말해주었다. 음악의 본령은 즐거움과 어울림이다. 그에 따라 정치를 할 수만 있다면 세속적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랴. 맹자가 왕에게 "홀로 음악을 즐기는 것과 남들과 음악을 즐기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라 묻자, 왕은 "남들과 즐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맹자가 "적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과 많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즐겁습니까?"라고 묻자, "많은 사람과 즐기는 것이 더 좋습니다"라고 왕은 대답했다.('양혜왕'·하) 바로 이것이다. 왕도정치란 모두 어울려서 함께 즐거워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는 누가 이 일을 맡아 하는가?

학자들이 세대 간의 갈등을 운운하며 걱정만 할 때, 세대와 세대를 이어준 역할을 한 이들은 연예인들이었다. 노래로, 드라마로, 예능으로. 정치가들이 지역 갈등을 조장할 때, 그 갈등을 넘어서 다함께 어울리도록 해준 이들 또한 연예인들이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암담했을 때, 한 줄기 빛을 비추어준 이들 또한 연예인들이었다. 이들 연예인들이야말로 맹자가 제왕들에게 강조했던 '여민락'의 진정한 실천자들이다. 그러나 여민락을 이들에게만 맡겨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코미디 잘 배우고 떠납니다!" 오래 전 '코미디 황제' 이주일 씨가 4년 국회의원 임기를 마치며 한 말이다. 성희롱한 동료를 감싸는 국회의원들, 국민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던 그들이 무슨 벼락을 맞았는지 뜬금없이 고액기부자를 위한 '김장훈법'을 만들겠다며 또 희극 한 마당을 연출하고 있다. 천하장사를 지낸 강호동도 뻔뻔하지 못해 은퇴를 선언했는데, 뻔뻔하기로는 천하무적이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이 아닌. 이제 제발 예능 고수들에게 여민락 정신을 좀 배웠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