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영화 '하비비'로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초청된 수잔 유세프(왼쪽) 감독이 부산 영화의전당 게스트라운지에서 인문학 운동을 주도하는 인디고서원의 박용준 편집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 세계 곳곳 누비며 제작비 모아…'팔' 자치정부 첫 공식 지원
- 이스라엘 입국불허로 고비도
- 영화에선 詩가 중요한 역할
- 나 같은 신인감독의 작품, BIFF 등 잇단 초청은 기적

영화제의 핵심은 결국 영화다. 영화는 감독이 만든다. 경력 많고 명성 높은 감독에게도 새 영화를 한 편 완성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아시아의 소외된 땅을 찾아다니며 힘겹게 자신의 첫 영화를 만든 신인 감독에게 그 어려움이란 말할 수 없이 컸을 테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자신의 생애 첫 장편 '하비비'로 초청된 수잔 유세프(34·미국) 감독을 10일 만났다. '하비비'는 척박한 고난의 땅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촬영한 독특하고 인상 깊은 사랑 이야기였다. 게다가 이 영화를 만든 새내기 감독 유세프의 '좌충우돌 장기간 고군분투 영화 제작기'는 영화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때마침 부산 인문학운동의 선봉인 인디고서원의 박용준(29) 편집장이 유세프 감독과 함께 있었다. 둘은 인디고서원의 넓은 국제 인맥을 통해 알게 된 친구 사이라 했다. 박 편집장에게 유세프 감독의 대담자로 나서달라고 즉석에서 요청했고, 그는 친구의 영화를 위해 기꺼이 나서주었다. 대담 장소는 영화의전당 1층 게스트라운지였다.

박용준 인디고서원 편집장(이하 용준)=자기 소개를 좀 해달라.

수잔 유세프(이하 수잔)=올해 서른 네 살인데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레바논, 어머니는 시리아 사람이다. 고교를 마치고 뉴욕영화학교에 합격했는데 학비가 너무 비싸서(웃음) 못 가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을 마친 뒤 어떤 내면의 이끌림에 따라 혼자 레바논의 (나의 근원이 있는) 베이루트로 갔다. 2년 동안 살면서 교사와 기자 활동을 했다. 지금은 중국인 남편과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다.

용준=그런데 어떻게 영화감독이 된 건가.

수잔=베이루트에 살면서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많이 접했고 친구도 사귀었다. 영화를 공부하고 싶어서 텍사스로 돌아가 영화학교에 들어갔다. 이때 이미 '하비비'에 대한 구상과 기초작업은 있었다. 영화학교 학생시절이던 2004년 학자금을 1000달러 융자받아서 팔레스타인으로 가 제법 촬영을 했다. 하지만 영화작업이 순조롭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용준=이 영화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정식허가와 첫 공식 촬영지원을 받은 영화라고 들었다.

수잔=그렇다. 팔레스타인에서 '하비비'를 찍는 작업이 워낙 힘겨웠다. 미국에 있는 크고 작은 재단을 다니며 제작비 지원을 따내야 했다. 그것만으론 턱없이 모자라 세계 곳곳을 쫓아다녔다. 풀브라이트재단의 지원으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후원활동이 꽤 있는 네덜란드로 가서 팔레스타인 전문가 지원을 받은 것은 천운이었다. 그뒤에도 도하 트라이베카영화제, 두바이영화제 등 각국 영화제를 돌며 어렵게나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후원은 받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에 관한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용준=고비도 많았겠다.

수잔=2009년 막바지 촬영을 앞두고 이스라엘 정부가 입국허가를 주지 않았다. 그동안 받은 숱한 지원금의 만기는 다가오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 현지에서 17일 만에 마지막 촬영분을 마무리했다. 2004년 시작해 촬영은 2009년에 끝났고 최종완성은 2011년이었다. 이렇게 완성한 영화에 대해 BIFF는 어떤 영화제보다 신속하게 초청을 해줬다. 그리고 올해 베니스영화제와 토론토영화제에도 초청됐다. 나 같은 신인감독의 영화를 베니스, 토론토, 부산에서 틀 수 있었던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영화제는 나 같은 신인감독에게 좋은 기회를 준다.

용준=나는 팔레스타인 청춘남녀의 사랑을 다룬 '하비비'를 보면서 거칠고 척박한 현실에 발 붙이고 사는 인간 속에 내재하는 초월성 그리고 영원성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독이자 원작자로서,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수잔=남자주인공 카이스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사는 대학생 출신 막노동꾼이다. 현실에서는 패배자이고 무기력해보이지만 시(詩)를 잊지 않는다. 여자주인공 레일라는 강인하고 주체적이지만 현실의 속박을 이겨낸다는 것은 버겁다. 이 둘을 통해 나는 희망이 없는 팔레스타인의 현실, 그리고 그 속에서 희망이 피어오르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 이 영화에선 시가 중요하다.

용준=BIFF에 처음 온 느낌은.

수잔=큰 영화제라 그런지 행정이 어수선한 면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관객과의 대화도 가졌는데, 관객의 수준과 호응은 최고다. 인디고서원의 친구들을 직접 만난 것도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