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군자가 밝게 살피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바로 잡겠는가?"라 했다. 사람의 생명이나 일생이 걸린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을 내리는 판사라면 저 군자보다 더 밝게 살펴야 한다. 사진은 재판이 이뤄지는 한 법정 모습. 국제신문 DB

- 평생의 고통 안기는 잔혹한 범죄인 강간, 조선시대 사형 처해
- 초범· 음주 등 이유로 가해자 형량 줄이니 해마다 성범죄 증가
- 약자 보호 마음없이 법 집행· 판결함은 피해자에 대한 폭력

맹자가 제나라 선왕에게 말했다. "내 집의 늙은이를 높이는 마음이 남의 늙은이에게 미치고, 내 집의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 남의 아이에게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에서 '내 아내를 바르게 하여서 형과 아우에게 미치니, 집안과 나라가 다스려지네'라고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 저기에 더해줄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미루어 펼치면 사해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어 펼치지 않으면 처자도 편안하게 하지 못하니, 옛사람이 남들보다 크게 뛰어났던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가 한 것을 잘 미루어 펼쳤을 뿐입니다. 이제 은혜가 짐승에게는 넉넉하게 미치면서 그 애쓴 일이 백성에게 이르지 못하는 것은 대체 어찌하여 그렇습니까?"('양혜왕'·상)

'판결'과 관련해 요즘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나영이 사건'. 가해자 조두순이 받은 형벌은 고작 12년 징역형이었다. 재판부는 가해자가 고령이고 음주로 심신장애 상태에 있었다는 이유로 감형해주었다. 참 어이가 없다. 적국의 국민이라도 보호해주어야 할 '여덟 살 여자아이'가 피해자라는 것, 생식기와 내장 상당 부분이 파열되고 겨우 살아났다는 그 엄연한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다. 과연 시비와 선악을 제대로 판단해서 내린 최선의 결정일까?

지난해 7월, 에이즈 걸린 20대 남자가 12세 여자 아이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올해 1월에 재판부(부산고법 형사2부)는 "피고인은 벌금형을 초과하는 전과가 없고, 범행 경위를 보면 다소 정상 참작의 요소가 있어 원심이 선고한 형량은 다소 무겁다"고 판시했다. 그래서 징역 3년의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어찌하여 이런 판결과 형량이 나올 수 있을까?

■악행을 조장하는 것은 눈먼 저울질이다

조선시대에는 강간을 저지른 자를 교형(絞刑) 곧 교수형에 처했다. 근대 이전의 낙후된 시대라서 극형으로 다루었을까? 아니다. 강간만큼 끔찍한 범죄가 없기 때문이다. 강간은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면서, 단순히 상대의 육신을 폭력으로 훔친 행위가 아니라 그 마음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평생 동안 그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게 만드는 잔혹한 죄악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군자가 밝게 살피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바로 잡겠는가?"('고자'·하)라 말했다. 사람의 생명이나 일생이 걸린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을 내리는 판사라면 저 군자보다 더 밝게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마치 눈먼 자가 저울질하듯이 판결을 내리고 있으니, 과연 무엇을 바로잡겠는가? 바로잡기는커녕 도리어 죄악을 조장하고 있다.

해마다 성범죄가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가 쏟아져 나오는데, 당연하다. 초범이라서, 음주 상태여서, 반성을 하므로, 피해자가 반항 불가능 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따위의 이유를 들면서 판사들이 알아서(?) 가해자의 형량을 줄여주고 있는데, 어떤 범죄자가 두려워하겠는가? 맹자도 "목수와 수레 장인이 남에게 그림쇠와 곱자 쓰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있겠지만, 남이 정교하게 쓰도록 할 수는 없다"('진심'·하)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토록 그림쇠와 곱자를 잘못 쓸 수도 있을까? 아니, 어쩌면 안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면, 자격과 능력이 없는 자가 판사 노릇을 하고 있거나.

황제가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한나라 때다. 문제(文帝)가 탄 수레가 어느 다리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다리 밑에서 사람이 뛰어나와 수레를 끌던 말을 놀라게 했다. 문제는 기병을 시켜 붙잡아서 법을 맡은 정위 장석지에게 그를 넘겨 처리하게 했다. 장석지가 그의 죄를 심문하자, 그 사람은 "저는 장안현 사람인데, 폐하가 행차하시기에 다리 밑에 숨어 있었습니다. 한참이 지나 폐하께서 이미 지나가신 줄로 알고 나왔다가 수레와 기병을 보고 달아났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심문을 끝낸 정위 장석지가 그 죄는 벌금형에 해당된다고 판결하자, 문제는 화를 냈다. "이놈이 직접 내 말을 놀라게 했소. 내 말이 온순하였기 망정이지 다른 말 같았으면 나를 떨어뜨려 다치게 했을 것이오. 그런데 그 놈의 죄가 벌금형에 해당된다고 말하시오?" 이에 장석지가 말했다.

"법이란 황제와 천하 사람들이 다 같이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법에 의하면 이와 같이 하면 되는데, 고쳐서 더 무거운 벌로 다스린다면 백성이 믿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 정위는 천하의 법을 공정하게 다스리는 자인데, 한쪽으로 기울면 천하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다 제각기 법을 무겁게도 하고 가볍게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성은 그들의 손발을 어느 곳에 두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황제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정위의 말이 옳소!" 그렇다. 법 집행은 공명정대해야 하고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황제도 없는 이 시대의 판결들은 왜 납득하기 어려울까?

■측은지심을 잃은 판사는 죄인이다

맹자는 "내 집의 늙은이를 높이는 마음이 남의 늙은이에게 미치고, 내 집의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 남의 아이에게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맹자가 미루어서 펼치라고 한 마음은 어짊의 실마리인 '측은지심'인데, 그 마음이 먼저 향해야 할 대상은 약자들이다. 늙은이나 아이들처럼 그 사회에서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먼저 그 마음을 써야 한다. 법의 집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가 기어서 우물에 들어가려 하면, 누구든지 화들짝 놀라며 달려가서 아이를 구한다. 그것이 측은지심이다. 이런 측은지심은 그 아픔과 괴로움을 똑같이 느끼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런 마음이다. 그런데 판결문들을 보면, 피해를 당한 어린아이나 여성에 대한 측은지심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함부로 대하는 판사들도 적지 않다. 지난 6월 초 "재판 과정에서 판사의 언행이 억울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폭행 피해자가 있었다. 재판부는 "궁금한 부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고 말했지만, 과연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었다면 피해자가 자살했을까?

판사는 사람의 생명 또는 일생을 좌우하는 재판을 맡아서 한다. 그런 만큼 삼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형법에 대한 연구서이자 실무지침서인 '흠흠신서(欽欽新書)'를 지으면서 그 제목에 '흠흠'이라는 말을 썼다. 흠흠은 "삼가고 삼가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마음이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산은 그 서문에 이렇게 썼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고 죽이니, 인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지방관(또는 법관)은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은 편하게 살도록 해 주고 죄 있는 사람은 잡아다 죽이는데, 이는 하늘의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서 삼가며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 만한 일도 세밀하게 분석해서 처리하지 않고 소홀히 하고 흐릿하게 하여, 살려야 되는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고, 죽여야 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게 여긴다.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 아녀자들을 호리기도 하면서 백성들이 비참하게 절규하는 소리를 듣고도 그것을 구해줄 줄 모르니, 이는 매우 큰 죄악이다."

법을 집행할 권한을 가진 이는 하늘의 권한을 대신 맡아서 백성들의 생명을 다루는 자다. 그런 자가 시비지심이 없으면 산 사람을 죽이고 죽여야 할 자를 살리며, 수오지심이 없으면 그러고도 태연하고 편안하게 있으며, 측은지심이 없으면 백성의 절규를 듣고도 구해줄 줄 모른다. 그런 짓을 다산은 매우 큰 죄악이라 했다. 지금 이런 죄악을 저지르는 않는 판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은 폭력이다

고전학자 정천구

"사람이 짐승과 다른 까닭은 별 것이 아니니, 뭇 사람은 이것을 버리고 군자는 이것을 간직한다. 순임금은 뭇 사물에 밝고 인간의 도리를 잘 살폈으니, 이는 어짊과 올바름을 따라서 간 것이지 어짊과 올바름을 굳이 실행하려 한 것이 아니다."('이루'·하) 군자가 간직하고 순임금이 쉽사리 썼던 것은 바로 시비지심과 측은지심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 마음을 판사가 쓰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쓰지 않는다면, 판사는 법을 폭력으로 만드는 죄인이다.

법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지키려 한다면, 먼저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약자를 지켜주지 못하면서 질서 유지니 정의 실현이니 떠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시비지심과 측은지심이 없이 법을 집행하고 판결할 때, 그 법은 약자에게 폭력으로 다가온다. 악법도 법일 수 있지만, 약자를 지켜주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집행되지 않는 법은 폭력일 뿐이다. '도가니'를 낳은 그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