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검찰청 청사 앞 조형물에 비친 대검찰청의 모습. 국민의 편에 서서 시비지심을 되찾을 때에야 검찰의 칼은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제신문 DB

- 왕조 시대에도 법관들 스스로 중립성 지키려 노력
- 공명정대 본분 잊고 함부로 휘두른 칼, 前 대통령 자살 불러
- 국민으로부터 법 집행 위임받은 역할 되새겨봐야

도응(桃應)이 여쭈었다.

"순(舜)임금이 천자가 되시고 고요(皐陶)가 법관(士)이 되었는데, (순임금의 아버지인) 고수(瞽瞍)가 사람을 죽였다면 어떻게 합니까?"

맹자가 말했다.

"법을 집행할 뿐이다."

"그렇다면 순임금이 그것을 막지 않겠습니까?"

"순임금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고요는 (순임금으로부터 법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렇다면 순임금은 어떻게 할까요?"

"순임금은 천하를 버리는 것을 마치 헌신짝을 버리듯이 하니, 몰래 부친을 업고 달아나서 바닷가에 살면서 죽을 때까지 온화하게 즐기면서 천하를 잊을 것이다."('진심'상35)


한국의 검찰은 오래도록 '정치검찰'이라는 치욕스런 딱지를 달고 다녔고, 여전히 그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대검찰청의 중앙수사부의 수사권을 폐지하기로 합의하자 검찰은 조직적 저항을 하였다. 검찰은 검찰총장이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중앙수사부가 있어서 그나마(?)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주장했는데, 이토록 한심한 말도 없으리라. 검찰이 수사의 독립성을 온전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치적 중립을 지켜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낼 의지가 없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8월에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은 취임식에서 "부정부패, 종북좌익세력, 그리고 오만과 무책임 같은 검찰내부의 적을 상대로 전쟁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바람막이가 되어줄' 검찰총장이 전혀 수사권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독립성과 중립성이 이미 확보되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을까?

■과연 독립과 중립의 의지가 있는가

검찰이 법원과 달리 행정부의 법무부에 속해 있는 국가기관이라는 것, 또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것 등이 수사의 독립성이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렵게 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한낱 날명이다. 저 옛날 왕조 시대에도 법관들이 스스로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려 했다. 그런데 민주국가에서 그것을 지켜가지 못한다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는가?

'사기'의 '오제본기(五帝本紀)'를 보면, 순임금이 고요(皐陶)에게 "흉악한 무리가 나라 안팎에서 사람을 죽이고 혼란하게 하며 악행을 저지르니, 그대가 법관(士)을 맡아 다섯 가지 형벌로 죄인들을 다스리되 경중에 따라 집행하고…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하시오"라 명을 내렸다. 이렇게 왕조 시대에도 법관은 있었다. 절대 권력을 쥔 왕이 임명했다면, 그 법관은 한낱 왕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맹자'를 보자. 제자 도응이 만약 순임금의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면 고요가 법을 엄정하게 집행했을 것인가 하고 묻자, 맹자는 단호하게 "법을 집행할 뿐이다"고 대답했다. 고요가 성역 없이 수사하고 법을 집행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도응은 흥미로운 질문을 더 하였는데, 고요가 아무리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려고 해도 그를 임명한 이가 임금이고 또 그 임금의 아버지가 관련된 사건이니 임금이 막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임금이 비록 고요를 법관으로 임명했으나, 그것은 임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혼란과 악행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여 나라가 태평해지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고요는 그것을 잘 알았다. 따라서 고요는 법관으로서 법을 집행하는 데 예외를 적용할 뜻이 전혀 없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곧 왕명을 완수하는 일이기도 했다. 고요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켰을까 하는 것은 "순임금이 몰래 부친을 업고 달아났을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과연 이렇게 고요처럼 법을 집행하는 일이 어려울까? 아니다. 어쩌면 간단하다. 법관의 본래 임무를 자각한다면 말이다.

지금 검찰이 신뢰를 잃고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그런 자각의 부족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결코 힘이 없거나 정치권력이 강제해서가 아니다. 강제하는 권력이 있더라도 얼마든지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 지금의 검찰이 아닌가.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하지만, 대통령은 엄연히 국민의 대리자일 뿐이다. 따라서 검찰은 국민으로부터 법의 집행을 위임받은 존재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이치를 망각하고 사사로이 법을 집행하기 때문에 신뢰를 얻지 못하고 오명을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누가 법을 살인검(殺人劍)으로 만드나

	법과 질서, 정의의 여신 테미스 동상(일본 추오대학 교정).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테미스(Themis)는 법과 질서, 정의의 여신이다. 테미스라는 이름 자체가 '거룩한 법'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그 형상을 보면 한 손에는 칼을, 또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엄정한 법의 집행과 공정한 판결을 상징한다. 그 상징적 칼을 쥐고 있는 기관이 검찰이다.

칼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사람을 살리는 칼은 활인검(活人劍)이고, 사람을 죽이는 칼은 살인검(殺人劍)이다. 법 또한 마찬가지다. 그 본래의 취지대로 올바르게 쓴다면,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이 된다. 그러나 악용을 한다면, 언제든지 살인검이 되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살인검으로서 법을 수없이 많이 목도했다. 근래에 전임 대통령이 자살한 일은 그 단적인 예다. 노무현 전임 대통령에 대해서 검찰은 혐의가 분명하고 또 증거도 있어서 그를 취조했다고 할지 모르나, 과연 엄정하게 절차를 밟아서 그렇게 했느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정치적 의도의 문제는 제쳐두고, "죄의 유무가 확정되기 전에는 결코 죄인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스스로 깼다. 그러고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으니, 수오지심이 없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것은 수사와 관련된 사항을 언론에 흘려보낸 일이다.

옛날 공자의 제자인 증삼(曾參)은 효자로 유명했다. 그런데 노나라 사람 가운데 증삼과 이름과 성이 똑같은 자가 있었는데, 그가 사람을 죽였다. 어떤 이가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태연하게 베를 짰다. 조금 뒤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역시 태연하게 베를 짰다. 그러나 조금 뒤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하자, 그 어머니는 베를 짜던 북을 내던지고 베틀에서 내려와 달아났다고 한다.

옛말에 "세 사람이 우기면 없던 범도 만든다"고 했다. 만약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 언론이나 여론을 이용하기로 한다면, 과연 이 세상에 누가 증삼의 어머니처럼 되지 않겠는가? 법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할 이를 먼저 여론을 통해 죄인으로 몰아버린다면, 이야말로 살인검을 휘두른 격이다.

검찰을 둔 것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여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함이었는데,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는 칼을 쓰라는 것이었는데, 도리어 칼을 함부로 휘둘러 혼란을 조성하고 불평을 조장하며 무고한 자를 해치고 있다. 맹자는 공권력의 횡포를 두고 "옛날에 관문(關門)을 둔 것은 포악함을 막으려던 것이었는데, 이제 관문을 만드는 것은 포학한 짓을 일삼으려는 것이구나!"('진심'·하)라고 탄식하였는데, 지금 검찰은 이 탄식 앞에서 과연 떳떳할까?

■활인검은 시비지심에서 나온다

	고전학자 정천구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라는 시구가 있는데, 지금 검찰이 그렇다. 수사권과 공소권이라는 칼을 쥐고 있으면서 스스로 독립과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한, 위험한 짐승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 그 독립과 중립은 누가 보장할 것인가? 스스로 찾아서 지켜야 한다. 어디서 찾을 것인가? 제 속에서 찾아야 한다. 시비지심이 그것이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하고 행동하게 하는 이 마음이 있어야 법을 살인검이 아닌 활인검으로 만들 수 있다.

맹자는 "이제 군주에게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평판이 있음에도 백성이 그 혜택을 입지 못하고 후세에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것은 선왕의 도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한 마음만 가지고는 정치를 하기에 모자라고, 법만 가지고는 저절로 행해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이루'·상)라 말했다. 좋은 의도나 평판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듯 법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법치국가가 되고 질서가 바로서는 것이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올바로 일을 해야 한다. 선왕의 도란 스스로 법을 지키며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일 뿐이다. 검찰이 시비지심을 가지고 칼을 쓸 때, 선왕의 도가 행해질 뿐 아니라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도 저절로 확보된다. 제발 구걸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