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불만 키운 與, 하는 일도 없이 대안세력인 양 자신하는 野
- 안철수 교수에 기대와 희망 보인 국민들에 놀라
- 말로만 백성을 앞세우고 근본으로 위하지 않는 정치는 그게 그 것임을 알라

양나라 혜왕이 말하였다.

"과인은 나랏일을 함에 있어 오로지 마음을 다하였습니다. 강 이쪽에 흉년이 들면 이쪽 백성들을 강 동쪽으로 옮기고 그 곳 곡식을 강 이쪽으로 옮겼으며, 강 동쪽에 흉년이 들면 역시 그와 같이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이 마음을 쓰는 것만 못한데도 이웃 나라의 백성들은 더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들은 더 늘지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 전쟁을 좋아하시니, 전쟁으로써 비유하겠습니다. 둥둥둥 북이 울리고 병기의 날이 맞부딪친 뒤에 갑옷을 벗어 버리고 병기를 끌면서 달아나는데, 어떤 자는 백 걸음을 달아난 뒤에 멈추고 어떤 자는 오십 걸음을 달아난 뒤에 멈춥니다. 그런데 오십 걸음을 달아난 자가 백 걸음 달아난 자를 비웃는다면, 어떠합니까?"('양혜왕'·상)

	대만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북송의 문인이자 정치가 구양수의 글씨.

"한국 정치에 대한 신선한 충격이다" "정당 정치의 위기다" "국민이 두렵다" "민주당에 대한 준엄한 경고다". 야당인 민주당의 지도적 인사들이 내뱉은 말들이다. 모두 서울대 안철수 교수에 대한 언급이라는 점에서 놀랍고도 충격적이다. '안철수 신드롬'이라 명명될 정도니, 정치권에서는 그야말로 폭풍이나 태풍으로 느끼고 있을 터이다.

지난 8일, 민주당 대표는 "안철수 현상 때문에 정치인들이 자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다. 당연히 자기 성찰을 해야지 자학을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 정치인이 진정으로 자성할까? 갑작스런 폭풍에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는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이런 의구심을 갖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측은지심과 시비지심을 잃어버린 듯한 그들의 행보 때문이다.

■잘못하는 여당 그리고 하는 일 없는 야당

현 정부는 "7% 성장, 4만불 소득, 세계 7위 경제를 이룩하자"는 거창한 747공약과 함께 출발했다. 그 목표를 위해서 성장 우선 정책과 규제 완화, 투자 활성화, 각종 감세 정책 등을 적극 추진하였지만, 결국 서민들의 삶만 더 고달파지고 부자들만 더욱 부자가 되었다. 공약 가운데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다. 남은 재임 기간 동안에 달성하리라는 기대도 전혀 할 수 없다. 마침내 정부와 여당은 그토록 끈질기게 고수하던 '감세정책'을 스스로 철회하였다. 그러면서도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3년 이상 보여준 정부와 여당의 실정(失政)에 국민들은 등을 돌렸다. 그런데 등을 돌린 국민이 마음을 준 곳은 민주당이나 야당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철수 신드롬이 나타났다. 야당은 기대와 희망을 걸 만한 대안 세력이 못 된다는 것이 대중의 판단이었다. 물론 야당에 자성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개혁 진영에서 야권 대통합을 추진하려고 '혁신과 통합'이라는 모임을 발족시킨 데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때늦은 것이기도 하지만, 과연 그런 것으로 충분할까? 갖가지 사안에 대해 정부나 여당에 비판과 촉구를 끊임없이 하기는 했지만, 저 양나라의 혜왕이 한 일보다 얼마나 더 나았을까?

흉년에 고통받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조처를 취했다고 자부한 혜왕은 맹자에게, "이웃 나라의 정치를 살펴보면, 과인이 마음을 쓰는 것만 못한데도 이웃 나라의 백성들은 더 줄지 않고 과인의 백성들은 더 늘지가 않으니,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물었다. 어쩌면 당연한 물음이다. 백성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제후들이 흔하던 시대에 그나마 백성들을 살리는 정치를 펴고자 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칭송을 받을 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맹자의 대답은 서늘하다. 전쟁을 비유로 들면서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고 했으니, "당신은 한 게 없소!"라고 잘라 말한 것이나 진배없다. 맹자의 왕도정치는 적극적으로 백성들을 위하고 백성들의 삶을 돌아보며 행하는 정치를 의미한다. "산 사람을 먹여 살리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원망이 없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혜왕은 그 시작조차 못했는데, 어찌 백성들이 늘기를 바라는가 말이다. 게다가 백성들이 흉년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왕의 허물인데, 그것을 모르고서 그 허물을 조금 바로잡았다고 자부한다면 이는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지금 정부와 여당이 그릇된 정책과 행정으로 국민들을 도탄에 빠지게 했다면, 그 책임은 야당에게도 있다. 아니 더 크다. 야당은 견제와 균형의 원칙 위에서 정부와 여당의 전횡을 막아야 할 정당이요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고서도 여전히 자신들을 대안 세력으로 여긴다면, 양나라 혜왕보다 더 어리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사대부의 선우후락(先憂後樂)과 정치

민주주의 정치는 곧 정당정치다. 이 정당정치와 유사한 것이 중세 중국과 한국에도 있었으니, 바로 붕당정치(朋黨政治)다. 북송 때의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구양수(歐陽脩·1007~1072년)는 '붕당론'이라는 글에서, "붕당이라는 것은 예부터 있어 왔다. 대체로 군자와 군자는 도리를 함께 구현하려고 붕당을 이루고, 소인과 소인은 같이 이익을 붙좇으려 붕당을 이룬다"고 말하였는데, 속뜻은 도리를 구현하는 붕당에 있다.

붕당은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사대부들이 모여 조직한 집단이다. 붕당이 오늘날의 정당과 가장 다른 점은 바로 학문에 있다. 사대부는 "물러나서는 학문을 하고, 나아가서는 그 학문을 천하를 위해 쓰는 존재"다. 사대부 또한 신분이 세습되던 왕정(王政) 시대의 존재이므로 갖가지 특권을 누리면서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귀족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귀족들처럼 가문을 등에 업기보다는 개인의 자격을 중시했고 또 그들만의 철학이 있었다. 사대부 정신이라 할 것을 역시 북송 때의 정치가이자 학자였던 범중엄(范仲淹·989~1052년)이 잘 표현하였다.

"조정에서 고관으로 있을 때는 백성의 삶을 걱정하고, 강호에 떨어져 나와 있을 때는 군주의 일을 걱정한다. 나아가서 벼슬할 때도 걱정하고, 물러나서도 걱정한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 즐거워하는가? 천하 사람들보다 먼저 걱정하고, 천하 사람들보다 나중에 즐거워한다."('악양루기(岳陽樓記)')

사대부는 언제나 천하의 일, 백성의 생활을 걱정한다. 물러나서는 군주의 일을 걱정한다고 했는데, 군주의 일이란 것도 백성을 위한 정치일 뿐이니 결국 백성을 걱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천하 사람들보다 먼저 걱정하면서 즐거움은 나중에 누리는 것, 이를 '선우후락(先憂後樂)'이라 한다. 이런 선우후락은 사대부가 곧 군자의 길을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송대 사대부들이 '맹자'를 특히 높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군자에게는 평생의 걱정은 있어도 하루아침 끙끙 앓는 일은 없다. 만약 걱정할 것이 있느냐 하면, 있다. 순 임금도 사람이요 나 또한 사람인데, 순 임금은 천하에 본보기가 되어 후세에 전할 만한 인물이 되었음에도 나는 아직 한 마을의 범부를 면치 못하였으니, 이것이 걱정할 일이다. 걱정이 된다면 어찌할 것인가? 순 임금과 같이 되려 할 뿐이다. 군자가 끙끙 앓는 일이 있느냐 하면, 없다. 어짊이 아니면 하지 않고, 예의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 만약 하루아침 끙끙 앓아야 할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군자는 앓지 않는다."('이루'·하)

■새로운 시대와 전망은 새로운 사람에서

군자가 걱정하는 것은 천하 사람들의 안위다. 사사로움이 없으므로 자신의 욕심을 위해 끙끙 앓는 일은 없다. 사사로운 일로 걱정하는 이는 소인이다. 그런 소인들을 방송이나 언론 도처에서 보는 일을 이제 국민들은 지긋지긋해 한다. 그때 안철수 교수가 등장한 것이다. 이는 현실이면서 상징이다. 그는 하나의 인간형, 오래도록 망각 속에 버려져 있던 인간형을 다시 보여주었다. 저 사대부나 군자처럼 인격과 학문을 겸비하고 그것을 천하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정신과 철학을 지닌 인간형 말이다.

기존 정치인들 가운데는 안철수 교수를 걱정하면서(?) 정치란 결코 단순하지 않고 또 문외한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본인이 잘 하는 학문이나 하라고 백안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착각이요 망상이며 무지다. 도대체 자신들은 정치를 얼마나 잘 알고 또 잘 하는가? 얼마나 잘 하기에 한낱(?) 문외한이 나서서 정치판을 그토록 휘저어버리도록 한 것인가? 맹자가 한 말을 기억하라.

"나는 자기를 굽히고서 남을 바로잡았다는 일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다. 하물며 자신을 욕되게 하고서 천하를 바로잡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성인의 행동은 똑같지 않다. 때로는 멀리 가고 때로는 가까이 있으며, 때로는 떠나고 때로는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로 돌아가니, 제 몸을 깨끗이 하는 것뿐이다."('만장'·상)  

정천구·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