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부 빈곤층 지원 등 과감한 개혁, 왜곡된 포퓰리즘 비판 딛고 성공
- 한국보다 잘 살았던 남미 국가들, 분배 않고 성장 쫓다 국민 고통만 가중
- 복지정책으로 박탈감 없는 사회 건설을

제나라 선왕이 물었다.

"왕도(王道) 정치에 대해 들을 수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늙어서 아내가 없는 이를 홀아비라 하고, 늙어서 남편이 없는 이를 홀어미라 하며, 늙어서 자식이 없는 이를 외로운 노인이라 하고, 어려서 어버이가 없는 이를 외톨자식이라 하는데, 이 네 부류는 천하에서 가장 막막한 백성으로서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 이들입니다. 문왕은 정치를 하면서 어짊을 베풀 때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에게 먼저 베풀었습니다. 시에 이르기를, '부자들이야 괜찮거니와 이 외롭고 쓸쓸한 이들이 가엾도다'라고 하였습니다."('양혜왕'·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연평균 5% 전후, 총 GDP는 세 배 이상 증가, 외환보유액은 약 열 배 증대, 물가상승률은 12.5%에서 5.6%로 하락,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환하면서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 이는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 다 실바(2003~2010년 재임)가 8년 동안에 이룩한 업적이다. 룰라는 빈민 출신의 저학력자로서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가 편 정책을 포퓰리즘 정책이라 부른다. 포퓰리즘!

■누가 포퓰리즘을 왜곡하는가

지난해 12월 23일 룰라 당시 브라질 대통령이 상파울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폐품과 고철 등을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넝마주이와 포옹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백성의 삶을 먼저 살피는 복지정책에 힘썼다. 국제신문 DB

포퓰리즘은 본래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퓰러스(populus)'에서 유래된 말이다. 따라서 "대중 또는 민중을 앞세우는 이념이나 정치 형태"를 뜻한다고 할 수 있어 '민주주의'와도 통한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무상급식 문제와 관련해서 '포퓰리즘'이 불쑥 튀어나왔는데, '대중에 영합하는 정치 행태'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어 본래의 뜻과는 사뭇 다르다. 그저 다른 게 아니라, 대중을 한낱 우민(愚民)으로 간주하면서 대중에 의한 정치를 부정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어 더 문제다.

그런데 룰라 대통령도 처음에 포퓰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도리어 비판을 받았다. "대중에 영합하는 얄팍한 정책"을 편다고 말이다. 당시 브라질의 경제는 매우 침체돼 있어 성장이 우선 과제였는데, 도리어 분배를 꾀했기 때문이다. 또 국민들의 궁핍한 생활은 국민들 스스로 자초한 것이고 정부가 그들을 돕는다면 도리어 무기력과 나태함을 조장하여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분배를 반대하는 명분이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가?

문득 한나라 소제(昭帝·기원전 86~기원전 74년 재위) 때의 염철 회의가 떠오른다. 그 회의에 대한 기록인 '염철론'을 보면, 황제를 보좌하는 비서관인 대부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 폐하의 신령함으로 말미암아 백성은 오래도록 전쟁에 동원되지 않았음에도 농사를 짓지 않으니, 현재 인구수에 따라 할당하여 토지를 개간해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창고가 빌 때까지 식량을 풀어 백성의 궁핍한 생활을 해결해주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심해졌습니다. 백성은 더 게을러지고 정부의 배급에만 의지했습니다. … 백성이 서로 게으른 행동을 본받아 토지는 나날이 황폐해졌고, 그들은 세금을 내지 않고 국가에 저항했습니다. 군주는 풍족한 국가를 만들려고 했음에도 이러한데, 대체 누가 그들을 풍족하게 해주겠습니까?"

소제는 무제(武帝)를 이어 즉위했는데, 무제는 앞선 문제와 경제 때에 쌓아올린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정복 전쟁을 폈던 황제다. 그 덕분에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불리지만, 내정을 살피면 그렇지 않다. 막대한 군비를 조달하려고 과중한 세금을 물리다가 결국 관리들의 부정을 조장하고 백성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제 때의 염철 회의도 그만큼 국가 경제가 위태로웠기 때문에 열렸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 측 관료는 경제 파탄의 책임을 백성에게 떠넘기고 있다. 백성의 안위를 돌아보려는 최소한의 복지 개념도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유학자를 대표하는 문학은 이렇게 말했다.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자는 모두 힘 있는 사람이어서 세리(稅吏)들도 그들이 두려워 감히 질책하지 못한 것입니다. 대신 가난한 백성만 가혹하게 다그쳤고, 백성은 견디다 못해 먼 곳으로 도망쳤습니다. …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은 반드시 그들의 고통을 없애 주어 편안하고 즐겁게 생업에 종사하도록 하며, 요역을 시키더라도 지나치게 피로하지 않은 범위로 제한해야 합니다."

■포퓰리즘의 요체는 '복지'

저소득층 어린이에 대한 복지 지원을 늘리기 위해 열리고 있는 토론회 모습. 복지에 대해 시민 관심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나라 때 문학이 한 말을 실천에 옮겨 탁월한 성과를 거둔 이가 바로 룰라 대통령이었다. 브라질의 가장 큰 문제가 격심한 빈부의 차이였음은 오래도록 널리 알져진 사실이었다. 빈부의 격차는 분배를 도외시하고 성장만을 지향할 때 더욱더 심해진다. 가진 자가 더 가지는 게 쉬운 상황에서 가진 자가 끊임없이 탐욕을 부렸다. 그 결과, 룰라가 대통령직에 올랐을 때 브라질은 전체 1억8000만 명 가운데서 5000만 명이 절대 빈곤층이었고 5분마다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었다. 측은지심이 있는 자라면 결코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룰라가 내세운 정책은 한 가족의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가 현금을 주는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였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극복, 공무원 연금제도 개편, 외화보유액 확대, 계층 간 합의 도출, 조건부 빈곤층 지원 등의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반대 세력들은 국가 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 즉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지만, 맹자가 "약이 독해서 정신이 어지럽지 않으면 그 병이 낫지 않는다"('등문공'·상)고 말했던, 국민들이 죽어가는 그런 병에 걸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그리하여 국민을 살리고 나라를 다시 일으켰다.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물었던 왕도 정치를 룰라 대통령이 실천해서 보여주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홀아비와 홀어미, 외로운 노인과 외톨자식 등 그 사회에서 가장 곤궁하고 앞길이 막막한 계층의 사람들을 먼저 보살피고 보듬어주는 것이라고 한 맹자의 대답처럼 최하층 민중을 먼저 살리고 또 나라도 살렸는데 말이다. 이제야 룰라의 포퓰리즘을 성공한 포퓰리즘이라 부르지만, 정책의 성패 여부를 떠나서 룰라가 추진한 정책이 바로 본래의 포퓰리즘이었다. 대중의 삶, 민중의 생활을 먼저 살피는 일, 이른바 복지가 바로 포퓰리즘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고대의 현자인 이윤(伊尹)에 대해 "천하의 백성 가운데에 평범한 사내와 아낙이라도 요순(堯舜)의 혜택(왕도 정치)을 입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마치 자신이 그들을 벼랑으로 몰아넣는 것 같이 여겼으니, 그가 천하 사람들을 구하는 중책을 스스로 맡은 것이 이와 같았다"('만장'·상)라고 말했는데, 룰라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한낱 노동자로서 대통령에 올랐던 그가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고 진정으로 민중과 국가를 위해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윤과 같은 마음을 늘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미에는 한때 한국보다 잘 살던 나라들이 매우 많았다. 그들은 왜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그들에게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과연 그들에게는 성장하려는 욕구가 없었을까? 분배를 해야 할 때, 분배를 하지 않고 성장만을 추구했고, 그 결과 빈부의 격차만 심화시키며 국민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자, 오늘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복지는 박탈감과 억울함이 없게 해주는 것이다

저축은행 사태, 반값 등록금, 멈출 줄 모르는 물가상승, 가계부채 900조 원.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두려운 게 있다. 국민의 자살사망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서 최고다. 특히 10대부터 30대까지 사망원인으로 1위가 자살이다. 국가가 성장만을 내세우면서 개인에게는 성공만을 강요하면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이야말로 정치와 행정, 교육이 서로 짜고 국민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격이다.

맹자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옛 왕들은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남에게 모질게 하지 못하는 정치가 이루어졌다"( '공손추'·상)고 말했다. 복지란 다른 게 아니다. 국민들이 박탈감과 억울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 그리하여 떳떳하게 살게 해주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즐거이 살도록 해주는 것일 뿐이다.

양나라 혜왕이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했을 때, 맹자는 이렇게 물었다. "사람을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하고. 혜왕은 당연히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맹자는 다시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까?" 하고 물었고, 혜왕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양혜왕'·상) 자, 이제 우리가 물음을 던지자. "칼로 죽이는 것과 그릇된 정책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는 차이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