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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댄스타운'의 한 장면. |
9월 초에 개봉하는 전규환 감독의 '댄스타운'은 세 번째로 만든 작품이다. 그의 첫 영화인 '모짜르트 타운'을 DVD로 보았을 때는 좀 시큰둥했다. 강하게 자극하는 화면을 만들어 낼 뿐 감독의 관심사가 잘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영화였던 '애니멀 타운'은 180도 달랐다. 건조한 화면 위에 도시의 비정함을 따라가는 그의 화술은 유럽 작가영화와 닮아 있으면서도 은근히 격정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좌표가 뚜렷하게 서 있는 것인지 확신이 서 있지를 않았다. 어떤 감독들은 첫 작품으로 자신의 서명을 뚜렷하게 선 보이지만 어떤 감독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전 감독은 후자의 경우에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물론, '타운'이라는 제목을 내세우는 그의 고집은 확연했다. 산 세바스티앙 영화제를 비롯하여 여러 유럽 영화제에 그의 영화가 소개되었고, 확신에 가득 찬 어조를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신인이었다. 그를 제대로 만난 것은 지난해 부천영화제의 한 술자리에서였다. '애니멀 타운'이 부천을 비롯하여 여러 국내 영화제에서도 소개가 되기 시작했고, 여러 영화제를 다니면서도 부지런히 새 영화를 작업하는 그의 모습에는 어딘가 미쳐 있는 예술가의 초상이 뚜렷하게 엿보였다. 감정적으로 흥분을 잘 하는 그는 전형적인 예술가 타입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세 번째 '댄스타운'이 지난해 부산에 소개되는 과정에서도 몇 번의 실랑이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과거 유명한 매니저였던 그의 이력을 들어 선입견을 갖기도 할 것이고, 어떤 이는 호들갑스러워 보이는 그의 태도에 실망스러워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의 영화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그의 외향적 태도가 아니라 영화 속에 드리워진 침묵의 순간들이다. '댄스타운'은 북에서 내려온 여주인공이 겪는 일상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하나원을 나온 후 현실의 삶에 적응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들은 '소외' 그 자체이다. 여성이라는 위치는 더욱 그녀를 소외되게 만든다. 실제로 '댄스타운'에는 라미란 씨가 연기하는 탈북여성 이외에도 마지막을 장식하는 여고생이 등장한다. 우리는 그녀의 삶을 뚜렷하게 알 수 없다. 세탁소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돈을 받아가는 장면에서, 그녀의 가정환경이 유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돌봄을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돌봄'은 '댄스타운'의 핵심이다. 돌봄을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 시선 밖에 머물게 될 때, 폭력의 현실과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잔혹함을 경험한다. 대다수의 매체는 이 잔혹함을 메마르게 전달한다. 도시 속에 쓰러지는 여고생의 모습은 신문기사의 가십란을 통해 매번 접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온갖 미디어는 이 모든 드라마를 평평하게 만들어 버린다.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감정도 없이 경험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소위 '경험의 파괴'라고 불리는 현대 매체의 특성은 발터 벤야민과 같은 이들이 한 세기 전에 예고한 현상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돌아왔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몇 년 뒤에 매체를 통해 소개될 때 경험은 가공되고 변형되기 시작했고, 온전한 경험은 침묵 속에 사라졌다.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시대 예술가들이 고집스럽게 다뤄내는 한 지점이다. 전규환의 영화에는 한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의 무덤덤한 뒤를 따르면서 전해져 오는 가공할 만한 순간들이 있다. 그것은 파괴적인 상황 그대로, '댄스타운'의 여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벌거벗은 생명 그대로 내던져지는 경험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