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사회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지만 정작 학자나 예술가들이 인문학을 넓히고 깊게 하기 위해 벌이는 학술과 창작활동 지원에 대한 인식은 뒤떨어져 있다. 사진은 부산문화재단이 지난달 개최한 공청회 모습. 국제신문DB

- 부산문화재단 등 '푼돈'으로 생색…'원북원 운동' 문학 편식 풍조 조장
- 시민들의 良能·良知 미리 막아
- 역사·철학 독서 권장 … 대인 키워야

만장(萬章)이 여쭈었다. "군주가 곡식을 보내면 받으십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받는다." "받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군주는 백성에게 진실로 베푸는 법이다." "군주가 베푼다면 받는다고 하시니, 계속해서 받아도 됩니까?" "무공(繆公)이 자사(子思)에 대해서는 자주 문안하고 자주 삶은 고기를 보냈는데, 자사는 찐덥지 않게 여겼다. 그러더니 마침내는 사자에게 손짓하며 대문 밖으로 나가라 하고서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한 뒤에 받지 않으면서 말하였다. '이제야 군주가 나를 개나 말처럼 기르는 줄 알았구나!' 이때부터는 자사에게 물건을 보내는 일이 없었다. 현자를 좋아하고 따르면서 불러 쓰지 못하고 또 제대로 봉양할 줄 모르니, 과연 현자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만장'하)

인문학 콘서트의 한 장면.

2009년에 부산문화재단이 창립되었다. 꽤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데 부산시가 해마다 40억 원을 내놓기로 약속을 하고서는 2009년에 20억 원만 내놓더니, 올해는 또 30억 원만 내놓았다. 부산시의 사고 수준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재 부산문화재단의 기금은 20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서울문화재단이 1500억 원, 경기문화재단이 1000억 원 정도 되는 것에 견주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그렇다면 더더욱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데, 생각이 꽉 막혀 있으니 달리 길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하소연할 것은 아니다. 부족한 대로 효용을 극대화해서 기금을 운용하면 된다. 문제는 제대로 운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거지에게 동냥 주듯 지원하지 말라

지난 7월에 부산문화재단에서는 '2011 학예진흥을 위한 회원활동 지원사업'을 공모하였다. 이 지원 사업은 지역의 학술인과 예술인을 지원함으로써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시행한 것인데, 지원 규모나 방식을 보면 어이가 없다. 올해 이 사업의 총 예산은 5000만 원인데, 이를 열 명에게 쪼개서 지원했다. 1인당 500만 원 정도를 지원한 셈인데, 이걸 받으려면 서류를 작성하고 그 돈의 사용처도 자세하게 적어야 했다. 게다가 그 돈을 가지고 저자가 알아서 6개월 안에 책을 내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이런 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저자가 저술에 기울인 노력에 대해 지원한 것인지, 아니면 출판 비용에 대한 지원인지도 헷갈린다. 어쨌든 책으로 내야만 하는데, 시일이 촉박할 뿐 아니라 출판사를 찾기도 어렵다. 어느 출판사가 손 놓고 앉아 있다가 이 열 명의 저자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책을 출판해주겠는가 말이다. 이런 식의 지원은 결국 푼돈으로 학자나 예술가를 농락하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

부산문화재단뿐만 아니라 시나 구청 등의 자치단체에서도 지원을 하는데, 그 꼴은 더 가관이다. 고작 몇백만 원을 지원하면서 온갖 서류를 다 갖추고 또 보고하라고 한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이들이 가장 꺼리는 짓을 요구하고서는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낸다. 이는 제사 지내고 남은 술로 사람을 대접하면서 무슨 거창한 잔치라도 연 것처럼 허세를 부리는 격이다. 도대체 학술이나 문화 활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존중도 없다. 마치 거지에게 적선하듯이 하는데, 이러고서 어떻게 문화가 살아나겠는가.

군주는 백성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선비에게는 그저 베풀어서는 안 된다. 그에 걸맞은 대접을 해야 한다. 맹자가 "현자를 좋아하고 따르면서 불러 쓰지 못하고 또 제대로 봉양할 줄 모르니, 과연 현자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를 기용해서 올바른 정치를 펴야 한다. 그게 선비 대접이다. 자사가 무공의 대접을 두고 "개나 말처럼 기른다"고 탄식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목마른 놈이 우물 파는 게 아니냐며 아쉬운 놈이 와서 얻어가라는 식으로 지원한다면, 이는 학자나 예술가를 개나 말보다 못하게 여기는 짓이다. 과연 그게 올바른 대접일까? "한 그릇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얻으면 살고 얻지 못하면 죽는다고 할지라도 혀를 차고 꾸짖으면서 주면 길을 떠도는 사람도 받지 않고, 발로 툭 차면서 주면 거지도 마뜩잖게 여긴다"('고자'상)고 한 맹자의 말은 지금 문화를 지원한다는 단체들과 그 담당자들이 잘 새겨두어야 한다.

■대인을 기르는 독서를 권하라

근래 몇 년 동안에 책을 내면서 출판사들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좋은 책이라고 내놓아도 독자들이 거의 손을 대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보니 대중성이 부족하다 싶으면 책을 내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한창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과는 대조된다. 그렇다면, 인문학 열풍은 헛바람이라는 말인가? 최근에 신문에 실린 '제22회 영광 독서 감상문 현상공모'의 광고를 보고서야 그 이유의 일단을 짐작했다.

대상 도서 목록을 보니, 역사나 철학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를 망라하지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저술들이라고 보기 어려운 책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런 책들도 읽을 가치가 없지는 않지만, 굳이 이런 책들을 대상으로 할 필요가 있을까? 부산 시민들의 문화적 수준을 감안하면, 이 정도라야 책을 읽는다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책들로 얼마나 문화 수준을 높일 수 있을까? 진정으로 시민들에게 유익할까? 혹시 좀 어려운 책을 선정하면, 시민들이 독서를 멀리할까 지레짐작한 것은 아닐까?

시민들의 자각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시민의 시대다. 공자가 "백성들에게는 그 길을 따라가게 할 수는 있으나 알게 할 수는 없도다"('태백'편)라고 말한 그 백성의 시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의 시민들은 곧 선비들이다.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다. 맹자는 "사람에게는 배우지 않고도 잘 하는 능력이 있으니, 양능(良能)이다. 헤아리지 않고도 아는 능력이 있으니, 양지(良知)다"('진심'상)라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양능과 양지가 있어서 공부만 하면 얼마든지 지혜를 갖출 수 있는데, 얄팍한 독서를 권장하는 것은 시민들의 양능과 양지를 미리 막는 짓이다.

부산을 더욱 척박하게 만드는 일을 '원북원부산 운동'이 하고 있다. 해마다 열 권의 책을 골라서 널리 알리고 읽게 한다는데, 선정된 책들이 거의 모두 문학이다. 이는 대놓고 '편식'을 조장하는 짓이다. 부산 문화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독서 풍토를 만들어야 하는데, 수준 향상은커녕 잘 해야 제자리걸음이다. 내 생각에는 독서 전문가들이 시민들을 매우 얕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시민들을 비판한다. 그들의 능력을 얕보지 않기 때문에.

공도자(公都子)가 "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이는 대인이 되고 어떤 이는 소인이 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맹자는 "그 대체(大體)를 따르면 대인이 되고, 그 소체(小體)를 따르면 소인이 된다"('고자'상)고 대답했다. 본래 대체는 마음이고, 소체는 감각기관을 가리킨다. 이제 책으로써 말하자면, 대체는 오래된 것이든 새 것이든 고전이 되는 책을, 소체는 얄팍한 책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독서를 중시한다면,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대인이 되기도 하고 소인이 되기도 한다.

■발상을 전환해야 문화가 살고 사람이 산다

정천구 고전학자

문화를 살리기 위해서는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틀에 박힌 사고로는 결코 창조적인 학문과 예술을 기대할 수 없다. 서류 따위나 보고 지원해준다면,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맹자가 "무언가를 하는 것은 우물을 파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우물을 아홉 길이나 깊게 팠더라도 샘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은 우물을 버리는 것과 같다"('진심'상)고 말했듯이, 일을 했다면 결과를 내야 한다. 그런데 지원해주는 쪽에서 좋은 결과를 내려 해서는 안 된다. 학자나 예술가가 창조적인 작업을 하도록 맡기고, 한 결과를 보고서 지원하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독서를 비롯한 문화 운동을 주도하는 이들도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먼저 시민들은 모두 양능과 양지를 갖추고 있으나, 아직 자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문화를 체득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쉽게 문화를 접하려는 시민들에게 영합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처럼 문화에 목마른 시민들이 날로 늘면서 인문학 열풍이 거셀 때는 더욱 삼가야 한다. 목마른 자는 맛을 모르고 마구 마시는데, 이것이 자칫 지적 허영이나 그릇된 관념을 갖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맹자의 이 말을 명심하자. "굶주린 자는 달게 먹고 목마른 자는 달게 마시니, 이런 자들은 먹고 마셔도 바른 맛을 알지 못한다. 굶주림과 목마름이 해(害)가 되어서 맛을 모르게 한 것이다. 어찌 굶주림과 목마름이 입과 배에만 해를 끼치겠는가? 사람의 마음에도 해를 끼친다. 사람이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마음에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면, 남에게 미치지 못하더라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진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