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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용의 시네 아고라] SF 영화들의 깨달음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8-22 20:30:5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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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한 장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할리우드의 시리즈 영화 중 하나가 '혹성탈출'이다. 팀 버튼 감독에 의해 새롭게 리메이크가 시작된 SF는 최근 두 번째 이야기를 선보이면서 대중적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시리즈는 지난 20년 동안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종말론적인 영화, 묵시론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모든 원형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누가 뭐래도 가장 유명한 것은 찰턴 헤스턴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오리지널 1편이다. 오랜 우주여행 끝에 이름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이들은 원숭이가 지배자이고, 인간이 노예인 상황을 목격한다.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동료들이 뇌수술을 받게 된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이 행성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노예 여자와 함께 금지구역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금지구역에서 목격한 것은 쓰러져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어린 시절에 이 작품을 보면서 무척이나 공포스러웠다. 주인공을 따라 이곳이 낯선 행성이라고 생각했건만 지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모든 의미가 한꺼번에 밀려 왔다. 우주선을 타고 머나먼 여행을 한 동안 지구에서는 원숭이가 진화를 하기 시작했다. '시저'라 불리는 원숭이의 존재는 세월이 흘러 인간과 동물의 지위를 뒤바꿔 놓은 셈이다. 이러한 논리는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간이 지배자였고, 기계는 인간의 노예에 불과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의 지구는 상황이 뒤바뀌어 있다. 기계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생체에너지를 '건전지'로 활용하고 있고, 매트릭스라는 20세기 말의 가상도시를 만들어 인간들이 꿈꾸도록(살아있도록) 유지시킨다. '매트릭스' 1편은 앤더슨이라는 이름으로 매트릭스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이 '네오'라는 이름으로 깨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이처럼 깨닫는 자이다. 원숭이들이 지배하던 행성은 알고 보면 지구였고, 기계들이 지배하는 행성은 미래의 지구였다. 이 상황을 깨닫는 순간, 고통을 견디던 그들이 현실을 깨닫는 순간은 누가 뭐래도 공포스럽다. 그것은 단순한 공상과학 영화의 과대망상이 아니라 인간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깨달아야 하는 충격이다. 원숭이가 지배하고, 기계가 점령해버린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해질 때 새로운 혹성의 가능성이 시작될 것이고, 새로운 매트릭스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긴 시간의 역사를 다룬 SF 영화들은 종종 시간의 사슬이 얼마나 단단하게 매듭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오리지널 '혹성탈출'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는 금지구역으로 나온 찰턴 헤스턴이 핵에 의해 신체와 정신이 훼손된 인간을 만나는 장면을 다룬다. 여기에 새롭게 등장한 또 다른 우주인이 핵폭탄을 섬기며 멸종해 버린 인간들과 대결을 벌이는 장면도 포함한다. 이 영화의 맨 마지막은 결국 단추를 눌러버린 변종인간에 의해 지구가 폭파해 버리는 것이다. 마치 '지구를 지켜라!'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그리고, 다음 편에서는 시저를 전면에 등장시키며 어떻게 원숭이가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오리지널에서 출발한 시간의 고리가 있다. 1편에서 찰턴 헤스턴을 도왔던 박사 부부가 우주선을 타고 과거의 시간으로 탈출하여 시저를 낳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알고보면, '혹성탈출' 시리즈는 미래의 원숭이가 과거로 돌아가 자신들의 현재를 만들어 낸 셈이다.
'매트릭스'에도 비슷한 논리가 있다. 네오가 기계의 대왕과 협상하는 과정을 통해서 3편의 제목인 '혁명'은 매번 반복된다는 순환의 논리를 보여주고 있다. 역사의 혁명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된다. 두 영화의 이러한 논리를 보고 있으면, 역사는 뒤엉켜 있는 순환의 고리이고, 혁명의 사건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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