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조성된 고(故) 안현태 씨의 묘소. 하나회 출신으로 제5공화국 비리로 처벌받았던 전력 탓에 국립현충원 안장이 부적절하다는 여론을 일으켰다. 국제신문 DB

- 5공 비리 경력 안현태 국립현충원 안장, 독립군 토벌한 백선엽 씨도 결정돼
- 이 시대엔 나쁜 학설·포악한 행동 난립
- 진시황, 역사 살피지 않아 제국 무너져…단순 행사보다 역사의식 가지는게 중요

"세상에 이치가 약해지고 희미해지면서 삿된 학설과 포악한 행동이 일어났으며, 신하가 그 군주를 살해하는 일이 생기고 자식이 그 어버이를 죽이는 일이 생겼다. 공자는 이런 사태를 두려워하여 '춘추'를 지었으니, '춘추'는 천자의 일을 다룬 것이다. 이런 까닭에 공자는 '나를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오로지 '춘추' 덕분이요, 나에게 죄를 줄 이가 있다면 오로지 '춘추'때문이리라!'라고 말하였다."('맹자-등문공·하')

그제는 광복절이었다. 빛을 다시 찾았다는 날이다. 빛이란 곧 나라의 주권이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과연 빛 속에 있는가? 이 나라 사람들은 그 빛을 누리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이 나라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여전히 친일청산은 되지 않고 그 잔재가 더욱 기세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5공화국 때 경호실장을 지냈고 정치비자금 때문에 법의 처벌을 받았던 안현태라는 자가 국립현충원에 몰래 안장됐다. 게다가 일제 때 독립군을 토벌하였던 친일인사인 백선엽 씨 또한 현충원 안장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한심하다 못해 끔찍하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나 국립현충원만을 탓할 수 없다. 그것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막아야 할 주인인 국민이 역사의식의 결여로 그런 일을 조장한 셈이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의 결여는 민주주의를 흔든다

1919년 3월 29일 부산 경남 사람들이 일으킨 구포장터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는 모습.

"제나라가 한 번 바뀌면 노나라가 되고, 노나라가 한 번 바뀌면 도에 이른다"('논어-옹야 편')고 말한 공자는 이윽고 56세 나이에 대사구(大司寇), 지금의 법무장관 직책을 맡았다. 3개월이 지나자 장사꾼들이 속이지 않았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공자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노나라를 한 번 바꾸어 도에 이르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나라의 변혁에 두려움을 느낀 이웃 제(齊)나라가 무녀들과 아름다운 마차들로 노나라의 군주 및 권세가인 계환자(季桓子)를 유혹하여 정치를 돌보지 않게 하였다. 결국 군주와 계환자는 제나라의 술수에 넘어갔고, 더 이상 노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여긴 공자는 벼슬을 버리고 떠났다.

이런 공자가 쓴 역사서가 있으니, 곧 '춘추(春秋)'다. '춘추'는 노나라 은공(隱公) 원년(기원전 722)에서 애공(哀公) 27년(기원전 468)에 이르기까지 255년에 걸친 노나라 역사를 담고 있는데, 맹자는 "세상에 이치가 약해지고 희미해지면서 삿된 학설과 포악한 행동이 일어났으며, 신하가 그 군주를 살해하는 일이 생기고 자식이 그 어버이를 죽이는 일이 생겼다. 공자는 이런 사태를 두려워하여 '춘추'를 지었다"고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공자가 역사서를 지은 까닭은 도의가 땅에 떨어지고 이치대로 다스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나라도 저 노나라와 다르지 않은 형편에 있다. 몇몇 보수적이고 반민족적인 언론과 방송이 여론을 조작하면서 중대한 문제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고 있다. 이는 삿된 학설의 난립이다. 경찰과 검찰의 위분들은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면서 국민들의 안위보다는 제 밥그릇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고, 군 수뇌부는 무능과 안이한 태도로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 이는 포악한 행동이다. 또 독립유공자들은 버림받고 있는데 친일인사들과 군사쿠데타로 권세를 누린 자들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고 있으니, 이는 "신하가 군주를 살해하고 자식이 어버이를 죽이는 짓"보다 더 심한 일이다.

이런 도리에 어긋난 일들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은 국민들이 역사의식을 결여하고 있어서다. 국민들이 예리한 지성과 철저한 역사의식을 갖추고 있다면, 어찌 이런 패덕한 일들이 일어나겠는가. 국민에게 역사의식이 없다면, 민주(民主)는 그저 허울뿐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투표권이 있다 한들, 올바로 행사하겠는가? 역사와 국어를 영어로 수업하자고 한 이를 대통령으로 뽑지 않았는가.

맹자는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들과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들이 두려워하였다"('등문공·하')고 말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국민들에게 역사의식이 있으면 정치가들이 두려워하고 부도덕한 자들이 설 곳이 없어지리라!"

■역사를 잊으면 스스로 망한다

저 옛날 600여 년 동안의 전란과 혼란을 일거에 종식시킨 진시황의 제국은 왜 16년 만에 무너졌을까? 진시황은 제후들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압하였다. 그런데 한낱 평민일 뿐인 진승(陳勝)과 그 무리들에 의해 흔들리더니 결국 무너졌다. 이를 두고 한(漢)나라 문제(文帝) 때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가의(賈誼·기원전 200~기원전 168)는 '과진편(過秦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진시황이 앞 시대의 일을 따져보고, 상나라와 주나라의 경험에 의거하여 자신의 정책을 조절했다면, 설령 뒤에 방자하고 교만한 군주가 나왔다 할지라도 나라가 기울고 위태로워지는 환난까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일을 잊지 않는 것이 뒷일의 스승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나라를 다스릴 때에 상고(上古)의 역사를 살펴보고 당대에 시험해보며 인사를 헤아려서 흥망성쇠의 이치를 고찰하고 권세와 형세가 알맞은 지를 자세하게 살핀다."

왜 역사를 살피는가? 그것은 인간사가 되풀이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시대와 공간이 다르고 일어난 일들이 다르다고 해도, 그 이면에는 역사의 법칙이라고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왜 거세게 일어난 것이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결코 약해질 것 같지 않던 것이 왜 사그라지는지, 그 이치를 역사는 보여주고 말해준다. 그래서 역사를 아는 것은 곧 현재에 서고 미래를 여는 바탕이다. 그런데 진시황은 역사를 살피지 않았다. 통일을 이룬 제왕, 역사상 최초의 황제라는 오만이 역사를 간과하게 만들었으리라.

가의는 "천하를 합병할 때에는 속임수와 무력을 숭상하지만, 위태로운 형세를 안정시킬 때에는 형편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곧 시세의 변화를 읽고 그에 따라 알맞은 정책을 편다는 뜻이다.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당연히 새로운 길을 모색했어야 한다. 그러나 진시황에게는 가의와 같은 신하가 없었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있었으나, 선비를 멀리했다. 비판을 꺼려 학자들을 파묻어 죽이는 갱유(坑儒)를 저질렀던 것이다. 결국 그것이 제 무덤을 판 꼴이 되었으니, 역사에 대한 무지가 곧 자멸이었던 셈이다.

맹자는 말했다. "왕자의 자취가 그치면서 시가 없어졌으니, 시가 없어진 뒤에 '춘추'가 지어졌다. 진(晉)나라의 '승(乘)', 초(楚)나라의 '도올', 노(魯)나라의 '춘추'는 모두 한가지다. 거기에 적힌 일은 제(齊)의 환공(桓公)·진(晋)의 문공(文公)의 일이요, 그 무늬는 역사다. 공자는 '그 일들에서 나는 (숨겨진) 올바름을 넌지시 끌어왔다'고 말했다."('이루·하') 왕자의 자취가 그친 것은 왕업(王業)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을 뜻한다. 환공과 문공의 일은 곧 패업이다. 공자는 패업의 역사를 쓰면서 왕업이야말로 천하를 화평하게 다스리는 길임을 암시했다. 그리고 진 제국을 이어 등장한 한나라가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는 데에 가의가 앞장서고 동중서가 뒤를 받쳤다. 동중서가 '춘추번로(春秋繁露)'를 지어 정치·윤리·사상 등에서 새로운 학설을 편 것도 한나라가 진나라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리라.

■행사보다 일상에서 역사를 배우자

광복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뜻있는 행사가 벌어졌다. 그러나 "불의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맞섰던 선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광복의 참뜻을 되새기는 행사도 좋지만,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까? 일상에서 역사를 배우고 익히며 역사의식을 갖추려는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행사는 한낱 행사일 따름이다. 오히려 한때의 행사에 참가하면서 그것으로 역사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착각을 할까 걱정이다.

일본의 국사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등이 한국을 망하게 하지 않는다. 한국을 망치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우리 스스로 저지르는 역사왜곡이다. 일본 정치가의 망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친일인사나 군사쿠데타로 권세를 누렸던 자들을 비판하지 않고 현충원에 안장한 일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국민들은 역사를 배우지 않고 역사의식을 갖추려 하지 않는다. 이러고서는 미래가 없다. 미래는커녕 현재조차 위태하다.

맹자는 혼란한 시대에 홀로 이렇게 외쳤다. "내가 이를 두려워하여 앞선 성인들의 길을 지키고 양주와 묵적을 막으며 도리에 어긋난 말들을 내쳐서 삿된 학설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 마음에서 일어난 것은 그 일을 해치고, 그 일에서 일어난 것은 그 정치를 해치니, 성인이 다시 나온다고 하더라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리라."('등문공·하')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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