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 보수동책방골목에서 지난 2009년 열린 축제에서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인문학 행사를 열고 있다. 국제신문 DB

- 부산 문화시설 수 전국 16개 시·도서 꼴찌
- 문화 정책·담론·장기 비전들도 '연목구어'
- 인문학 바탕 없는 문화 '빛 좋은 개살구'
- 백년어서원 등 대학 밖 강좌 활동 주목

서자(徐子)가 여쭈었다. "중니(공자)께서는 곧잘 물을 일컬으며 '물이여, 물이여!'라고 하셨는데, 물에서 무엇을 구하셨는지요?"

맹자가 대답하였다. "근원이 있는 물은 세차게 솟아 나와서는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구덩이를 채우고 그런 뒤에도 나아가서 사방의 바다에 이르니, 뿌리가 있는 것은 이와 같다. 물에서 이것을 구하신 것이다. 진실로 뿌리가 없는 것은 칠팔월 사이에 쏟아진 비와 같아서, 도랑이 가득 차도 그것이 마르는 것은 서서 기다릴 수 있다. 그러므로 명성이 실상보다 지나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맹자-이루·하18')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1 전국문화기반시설 총람'을 발간했는데 전국의 공공도서관, 등록된 박물관과 미술관, 문예회관 등의 현황이 실려 있었다. 부산은 인구 100만 명당 시설 수가 18.5개로 전국 16개 시·도에서 꼴찌를 차지했다. 인구가 35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가 규모에 걸맞은 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게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참으로 참담하지만, 그렇다고 놀라운 일은 아니다. 부산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던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짐작하고 있거나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의식에서나 문화에서나 부산은 척박하기 짝이 없는 도시다. 한국 제2의 도시, 제1의 항구도시라고는 하지만, 20세기의 혼란과 빈곤의 와중에서 비로소 주요하고 거대한 도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하던 시기에 성장한 도시였으니, 무슨 문화가 있겠는가? 그러나 시대는 변하여 먹고 살만한 때가 되었다. 그럼에도 문화적 수준이 낮다는 것은 자각과 실천의 결여를 의미한다.

■뜬 구름 잡는 부산의 문화 행정과 담론

인문학 강좌에 참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부산의 인디고서원 청소년들.

부산의 문화적 수준이 낮다는 것은 먼저 부산시의 졸속 행정과 공무원들의 처신에서 엿볼 수 있다. 부산시는 삼가고 삼가면서 진행해야 할 '영화의전당' 공사를 갑자기 서두르면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여기서 치르겠다고 우기고 있다. 또 시청의 1층 로비에 들어선 '행복한 시민 책방'은 시청 공무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2000명의 공무원들이 있음에도 한 달에 400에서 500권이 고작 팔리고 있단다. 이는 결국 문화인으로서 자각이 부족한 사람들이 부산을 움직이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을 보여준다.

또 최근 들어 부산의 문화정책이나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공청회나 심포지엄, 세미나 등이 부쩍 많아졌다. 한 신문에서는 부산을 창조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기사를 싣고 있고, 부산문화재단에서는 '문화가 일상이 되는 도시'를 위한 장기 비전과 정책·시책의 방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원론적인 이야기들뿐이고, 원천에 대한 이야기는 결여되어 있다. 원천이란 무엇인가? 바로 사람이다. 문화는 곧 사람에서 시작되고 사람에서 끝난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논의, 사람을 기르고 가르쳐야 한다는 데 대한 토론이 없다.

맹자는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하면서 거기에 "천하의 왕 노릇하는 일"은 들어 있지 않다고 했다. 그 대신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가르치고 기르는 일"('진심·상20')을 넣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결국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빼놓고 무얼 한다는 말인가? 이러고서 부산을 문화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니, 문득 저 제(齊)나라의 선왕(宣王)이 떠오른다.

선왕은 부국강병책을 펴서 천하를 통일하고 싶은 열망은 있었으나, 백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선왕에게 맹자는 "왕께서 크게 한 번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토지를 개척하고 진나라와 초나라가 제나라 조정에서 조회하도록 하여 중앙의 여러 나라들에 군림하면서 사방의 오랑캐들을 누르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지금 하는 방식으로 바라는 것을 구하시려 한다면, 그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습니다"('양혜왕·상7')라고 말했다. 지금 부산의 행정과 담론들로 부산을 창조도시로 만들겠다는 것도 그야말로 연목구어다!

제나라 선왕처럼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게 이토록 심한가?" 맹자의 말로써 대답하면 이렇다. "이보다 더 심한 게 있다.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려다가 물고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재앙은 없다. 그러나 지금 하는 방식으로 바라는 것을 구하려 한다면, 온 마음과 힘을 다하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재앙이 있을 것이다." 무슨 재앙? 재정의 낭비(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문화에 무지하고 무능한 자들의 행세(악화가 양화 구축), 문화 수준의 정체, 심지어는 퇴보 등 다음 세대에 지금보다 더 고약한 환경을 물려주게 될 것이니, 그보다 큰 재앙이 어디 있겠는가?

■인문학으로 사람부터 길러야 한다

부산이 자랑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로 16회째가 된다.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높이며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행사 그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세월 동안 부산에서 뛰어난 영화학자나 영화평론가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부산을 영화도시로 만들려고 했다면, 영화제를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려 했다면, 영화제 조직위는 인재를 키우려 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인재가 눈에 띄지 않는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음에도 인재 양성이 이러하니, 다른 분야는 오죽하겠는가.

영화뿐만이 아니다.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에서 뛰어난 작가나 평론가, 학자가 적다. 인구에 비례해서 본다면, 적어도 아주 적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것은 모든 문화의 근간이 될 인문학이 죽어 있기 때문이다. 왜 문화를 말하면서 인문학을 운운하는가? 문화는 곧 사람이고, 사람은 인문학으로 길러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말하는가? 맹자의 말을 들어보자.

"자로(子路·공자의 제자)는 남이 그에게 허물이 있다는 걸 알려주면 기뻐하였다. 우 임금은 착한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다. 위대한 순 임금은 더욱 위대하였으니, 남과 함께 착하였고 자기를 버리고 남을 좇으며 남에게서 취하여 착해지는 것을 즐거이 하였다. 밭 갈고 곡식을 심고 질그릇 굽고 고기잡이할 때부터 황제가 되기에 이르기까지 남에게서 취하지 않은 게 없었다. 남에게서 취하여 착해지는 것은 남과 더불어 착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에게 남과 더불어 착해지는 것보다 큰 것은 없다."('공손추·상8')

인문학은 군자의 길로 나아가는 공부요 학문이다. 그리고 군자는 문화를 체득하고 체현하는 존재다. 공자는 "바탕이 무늬보다 나으면 메떨어지고, 무늬가 바탕보다 나으면 번지르르하다. 무늬와 바탕이 알맞게 어우러져야 군자가 된다"('논어·옹야편')고 말했는데, 여기서 말한 바탕이 곧 인문학이다. 이런 인문학이 결여된 무늬는 단순한 포장이요 허세일 뿐이다. 인문학의 바탕이 없는 문화는 번지르르할 뿐, 창조적 활기도 지속할 힘도 없다. 맹자가 "근원이 있는 물은 세차게 솟아 나와서는 밤낮을 쉬지 않고 흘러 구덩이를 채우고 그런 뒤에도 나아가서 사방의 바다에 이르니, 뿌리가 있는 것은 이와 같다"고 말한 속뜻이 여기에 있다.

■부산의 인문학과 '바까데미아'

인문학을 통해서 먼저 사람을 기르고 또 문화를 향유할 두터운 층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창조도시나 문화도시라는 구호는 한낱 입타령에 지나지 않게 된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열정을 쏟아 붓고 정책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문학이라는 근원이 없으면 그런 문화는 칠팔월 장맛비가 구덩이를 채우는 꼴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긴요하고 중요한 인문학을 대학에서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이미 이전의 글에서 나는 대학이 "봉황(학생)을 받아들여서는 닭으로 만들어 내보내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대학이 제 학생들조차 제대로 기르지 못하는 판국이니, 결국 눈을 대학 밖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공자나 맹자 모두 그 자신이 스승이면서 학교였다. 그렇다면, 지금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부산에서도 근래에 여러 곳에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백년어서원, 카페헤세이티 등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강좌를 여는 곳이 이제 적지 않다. 나 또한 그 가운데 한 곳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인데, 나는 그곳을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라 부르고 있다. 대학이 해야 할 것을 바깥에서 대신하므로 "진정한 아카데미는 바깥에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또 부산의 문화를 살리고 인문학을 다지는 일이라면, 굳이 대학 안팎을 가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저 맹자가 말한 대로 스스로 원천이 되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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