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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을린 사랑'의 한 장면. |
캐나다의 새로운 영화를 찾기 위해 몬트리올에 왔다. 아마 최장시간 동안 비행기를 탄 듯 하다. 꼬박 하루를 채운다. 캐나다의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는 곳은 텔레필름 캐나다이다. 한국처럼 제작펀드, 배급 지원 등을 포함하는 백화점식 업무는 서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독일의 '저먼 필름'도 그랬지만 이곳의 주된 업무는 자국영화의 '프로모션' 그 자체에 있다. 다른 국가의 영화 지원 제도를 접하게 되면서 종종 느끼는 것은 한국은 확실히 종합만물상 같은 시스템을 즐겨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여하튼, 몬트리올에 도착하자 한 편의 캐나다 영화가 생각난다. 한국에서도 이미 개봉된 '그을린 사랑'은 지난해 부산에서 소개된 화제작 중 한 편이었다. 영화제 상영 당시 제목은 '그을린'이었다. 영화를 처음볼 때는 제목이 선뜻 다가오지를 않지만 엔딩 크레딧과 함께 전쟁의 기억이 '그을린'것처럼 다가오는 순간 원제로 표기된 한 단어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수작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 같지만 어느새 거대한 인간의 역사와 상실의 기억을 마주하게 되는 경험을 전하고 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남매가 중동지역으로 오면서 시작되는 복잡한 서사는 과거와 현재, 사랑과 죽음, 운명과 성장의 이야기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이러한 형식은 어쩌면 캐나다라는 장소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몬트리올 현지에 도착한 것은 밤 10시 무렵이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20분 정도를 들어오면서 도시의 얼굴을 관찰해 본다. 캐나다의 두 번째 도시답게 높은 빌딩도 눈에 띄고, 공항에서 오는 길에 잠깐 보았던 구시가지는 유럽의 한 모퉁이를 옮겨 놓은 것 같다. 캐나다의 동북부에 위치한 퀘백 지역은 '프랑스'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다보니, 간판과 안내방송에는 영어와 불어가 함께 쓰인다. 길거리를 표기하는 방식은 프랑스식이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정치와 역사를 들먹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복잡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산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대형 건물과 혼재되어 있는 유럽의 문화들은 캐나다가 이민자의 도시이며, 자신의 뿌리를 고집하기 보다는 다양한 장점들을 수용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 때문에 '그을린 사랑'처럼 복잡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지닌 영화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아시아계 사람들이었다. 다른 유럽의 지역이나 미국과는 달리 이곳의 아시아계 사람들은 훨씬 더 밀착되어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만큼 많은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을린 사랑'의 극 중 대사를 보면 "1+1=1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것은 영화의 이야기일뿐만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이 함께해야 하는 이곳의 필요한 조건일지도 모르겠다. 이제부터 겪어야 하는 일이겠지만 그동안 캐나다 영화가 독특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 역사의 복잡성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몬트리올과 토론토 중간에는 거대한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나이애가라 폭포가 있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에 운전수가 나이애가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데, 이곳은 미국, 영국, 프랑스식이 뒤엉킨 것도 모자라서 거대한 호수와 자연이 함께 놓인 참으로 독특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무진에서 내리는데, 50편이 조금 안 되는 리스트 페이퍼 묶음을 선물로 준다. 종종 사람들이 출장을 부러워하지만, 3일 동안 이 많은 영화를 어둠의 극장에서 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두통이 시작된다. 가끔은 내가 기억하는 현실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어둠 속 빛이 재현하는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이다.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