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생업이 없으면서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는 것은 선비만이 할 수 있습니다. 백성으로 말하자면,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그로 말미암아 한결같은 마음도 없습니다. 진실로 한결같은 마음이 없으면 함부로 하거나 치우치거나 삿되거나 사치스럽거나 하면서 하지 않는 게 없게 되는데, 그렇게 죄에 빠뜨린 뒤에야 좇아가서 형벌을 내린다면 이는 백성을 그물로 잡는 짓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왕위에 있으면서 백성을 그물로 잡는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맹자-양혜왕'·상)

대학에는 교수들과 다를 바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강사들이다. 이들은 시간당 강의료를 받는 비정규교수들이다. 사실, 나는 비정규교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교수라는 말을 써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기 때문이다. 물론 자존심이나 존재감 때문에 '교수'라는 말을 선호하는 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봐야 '빛 좋은 개살구' 아닌가.

현재 한국의 대학들에는 모두 7만여 명 이상의 시간강사들이 있다. 이들이 없으면, 대학들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조합을 만들면서까지 부당한 대우에 대해 항변하지만, 도무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기꺼이 강의하려는 강사들이 넘치고 있고, 대학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사들이 스스로 선비로서 자각하지 못하는 한,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강사들의 자승자박이다.

■선비의 길을 가면서 백성이 되려는 강사들

대학의 강사는 대부분 박사 과정을 수료했거나 박사 학위를 취득한 자가 한다. 그렇다면 강사는 이미 학문의 길에 들어선 자로서 엄연히 선비다. 다만, 교수와는 달리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어서 생업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 때문에 그 처지가 미약하고 간간해보일 뿐, 강사는 엄연히 학문하는 선비다. 그런데도 선비로서 자각이 없거나 부족하다.

강사들은 대체로 강의료나 연구비 등등에서 차별을 받는다면서 물질적인 대우에 대해서 말한다. 물론 강사도 사람인지라 먹고 살아야 하니,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가 또한 선비다. 그 사회는 풍족해도 그 자신은 풍족함을 추구하지 않는 자, 오히려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는 자가 선비다. 맹자가 말했듯이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서 한결같은 마음을 지니는 자"가 선비다. 생업이 있고 안정되어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더 많은 게 선비의 길이요 삶이다. 강사들의 고달픈 생활은 본질적으로 이를 자각하지 못한 데서 온다.

그렇지만 생업에 힘을 쓰지 않고 어찌 살 것인가,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 어찌 생업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생업에 힘을 쓴다고 한들 얼마나 풍족한 생활이 보장될까? 강사나 교수만큼 배우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도 많다. 그런데 왜 학문의 길에 들어서서는 뒤늦게(아니면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생업을 걱정하고 물질적 보상을 문제 삼는가.

만약 학문보다 생업이 더 중요하다고, 진리 탐구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가 더 긴요하다고 여긴다면, 당장에 강사 노릇을 그만두는 게 낫다. 생업과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긴요하게 여기는 이들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도 백성은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이 없고, 한결같은 마음이 없으므로 함부로 하거나 치우치거나 삿된 짓을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제 학문을 하고 남을 가르치면서 도리어 선비가 아닌 백성 노릇을 하려고 하니, 이야말로 자가당착이 아닌가.

그러면 선비는 어떻게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을 지닐 수 있는가. 학문을 하면서 사사로운 이익보다 천하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이가 선비이므로 생업을 걱정하지 않을 뿐더러, 선비로서 제 갈 길을 가고 제 할 일을 한다면 천하가 먹여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맹자가 "'어떤 이는 마음으로 애쓰고, 어떤 이는 힘으로 애쓴다. 마음으로 애쓰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으로 애쓰는 자는 남의 다스림을 받는다'고 하였으니, 남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이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게 얻어먹는 것이 천하에 널리 통하는 뜻이다"('등문공'·상)라고 말하였는데, 여전히 이 말은 옳다.

■학인으로서 공자의 삶을 보라

귀족들이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에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든 제자로 받아들여 기꺼이 가르쳤던 인물이 공자다. 공자는 평생을 정치가로 살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후대에 그는 교육자로서 높이 떠받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열 하고도 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홀로 섰으며, 마흔에는 헷갈리지 않았고, 쉰에는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에는 무슨 말을 들어도 막히는 게 없었고, 일흔에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여도 이치에 어긋나지 않았다"('논어' 위정 편)고 자신의 삶을 정리해서 한 말에서처럼 일생을 학자로서 한결같이 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공자를 마치 타고난 성인인 듯이 여기고 있지만, 공자는 스스로 배우면서 성인의 경지에 이른 인물일 뿐이다. 만약 공자를 신격화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공자를 모독하고 왜곡하는 짓이다. 공자는 스스로 "나는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었다. 옛것을 좋아하여 재바르게 구하는 사람일뿐"('논어' 술이 편)이라 말했다. 이는 누구나 배우면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다.

그러나 공자도 먹고 살아야 했다. 젊어서부터 널리 알려진 공자였지만, 포부를 펼칠 기회를 얻거나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해 고생을 꽤나 했다. 그럼에도 공자는 불평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 처지에 알맞게 판단하고 행동했다. 그러다보니 온갖 일을 다 했고, 할 때마다 지극한 마음으로 했으므로 재주도 많아졌다. 누군가가 어찌하여 그토록 재주가 많은가 하고 물은 데 대해서, 공자는 "내 젊은 시절에 데데하였던 까닭에 하찮은 일에 재주가 많다"('논어' 자한 편)고 대답했다.

공자에게 어찌 벼슬할 기회가 적었겠는가만은, 자신의 뜻을 펼 수 없는 자리라면 받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재물에 대해 무슨 집착을 했겠는가? 공자는 "가멸지려 해서 가멸질 수 있다면, 비록 채찍 잡는 일일지라도 내 기꺼이 하겠다. 그러나 가멸질 수 없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논어' 술이 편)고 말했다. 공자는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았다.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이면 했다. 그러나 벼슬이나 재물에 뜻을 두지는 않았다. 그것은 선비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맹자는 공자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벼슬은 가난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가난 때문에 하기도 한다. 아내를 얻는 일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부모 봉양을 위해 하기도 한다. 가난 때문에 벼슬하는 자는 높은 자리는 사양하고 낮은 자리를 차지하며 가멸짐을 물리치고 가난하게 산다.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를 차지하며 가멸짐을 물리치고 가난하게 사는 것은 어떤 일을 하면 되는가? 관문을 지키거나 목탁을 치는 일이다. 공자는 곳간지기가 된 적이 있었는데 '물건 세는 일을 맞게 할 따름이다'라고 말하였고, 가축 치는 일을 맡은 적이 있었는데 '소와 양을 살지게 잘 자라게 할 따름이다'라고 말하였다."('만장'·하)

■강사들이여, 이제 대학을 떠나자

나도 강사다. 아니, 강사였다. 지난 학기를 마지막으로 나는 대학을 아주 떠난다. 이미 몇 년 전에도 3년 동안 아무런 강의를 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했고, 떠날 때가 되어 떠난다. 대체 무얼 걱정하겠는가. 내가 학문을 할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할까 그게 걱정일 따름이다. 안경알을 깎으며 뜻을 굽히지 않았던 스피노자보다는 내가 더 나은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맹자는 "천하의 너른 집에서 살고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크낙한 도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니, 부유함과 높은 지위도 그 마음을 어지럽힐 수 없고 가난함과 미천함도 그 뜻을 꺾지 못하며 위세와 무력도 그를 굽힐 수 없다. 이런 이를 대장부라 한다"('등문공'·하)고 말했다. 나는 대장부의 길을 간다. 그러니 무엇에 흔들리겠는가.

강사들이여, 대장부의 눈으로 보라. 지금 대학은 강사들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교수들이 과연 강사들의 몫까지 해낼 수 있을까? 천만에. 제 몫도 제대로 못하는 교수들이 상당수다. 결국 칼자루를 쥔 쪽은 강사들인데, 왜 강사들이 몸을 사리거나 굽히는가? 왜 대학에 머물려고만 하는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대들은 떳떳하지 못하다. 떳떳하다면, 대담하게 행동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