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장기하와 얼굴들 연합뉴스 |
때 이른 폭염 속에 등장한 두 장의 앨범이 시선을 끈다. 하나는 지금 주말마다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는 '나는 가수다'의 주역 김범수의 신작이고 나머지 하나는 2005년 가난한 홍대 인디씬에서 청년실업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여 2008년 '싸구려커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앨범이다.
1999년에 데뷔한 김범수는 2011년에 이르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그가 일요일 저녁 브라운관에서 부른 노래는 바로 다음 날 음원 차트의 Top10에 등극하는 행진이 수주째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작년에 발표했던 일곱 번째 앨범의 'part 2'에 해당하는 이번 앨범의 머리곡 '끝사랑'(윤사라 작사·윤일상 작곡)은 발매되자마자 차트의 정상을 기록했다.
과잉된 감정이입 없이 여유 있게 프레이즈를 장악하는 그의 보컬은 'singing machine'이라는 기존의 견고한 인프라 위에 풍부한 서정성을 분만한다. 하지만 달랑 일곱 트랙이 들어 있는 볼륨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아무리 'part 2'라고 하지만 앨범도 EP도 아닌 어정쩡한 스탠스는 슬며시 근간의 인기에 편승한 '졸속'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김범수는 지난 12년 동안 일곱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앨범 아티스트로서의 치열한 집중력을 보인 앨범은 두세 장 정도이고 뛰어난 가창력을 증명하는 리메이크 트랙들이 과도하게 많았다. 그런 공력이 '나는 가수다'에서 빼어난 경쟁력을 발휘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이제 보다 높은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 그것만이 ''보고 싶다'와 '약속'의 히트곡을 보유한 노래 잘하는 가수'에서 벗어나 리듬앤블루스와 훵크, 소울 등 흑인음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입체적으로 소화하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군림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코러스걸 미미시스터스가 빠지고 건반과 기타가 보강되며 본격적인 밴드로서 출사표를 던진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은 날로 치솟는 불쾌지수를 날려버릴 해학의 청량제 같은 앨범이다.
장기하는 신뢰로 충만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싸구려커피'가 한판의 해프닝이 아니었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휼륭하게 증명했다. 그의 노래는 걸그룹의 후크송과는 또 다른 중독성이 있다. 그의 음악적 기반은 당대 젊은이들의 감수성에 기반한 한국어의 미묘한 울림이다. 그것은 이 앨범의 오프닝곡 '뭘 그렇게 놀래'부터 머리곡인 '그렇고 그런 사이'를 지나 록밴드 특유의 리프에 실린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까지 양극화로 무너진 '88만 원세대'의 내면의 풍속도를 경쾌하게 그려낸다.
장기하는 이번의 문제작을 통해 그 자신이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우리 시대의 '가수'로 진화하고 있음을 똑똑히 보여준다. 이 앨범의 놀라운 대목은 두 번 반복하는 'TV를 봤네'가 자연스럽게 자아내는 텅 빈 독백의 경탄할 만한 통찰력이다. 그는 결코 장난스러운 익살꾼이 아니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두 번째 앨범은 김민기에서 진지함을 빼고 정태춘에서 분노를 빼고 산울림에서 문학적 시정을 빼고 신중현과 엽전들에서 실험적인 미학을 빼고 황신혜 밴드에서 과장법을 뺀, 그 나머지의 질료로 21세기 대한민국 청년의 통속성이라는 술통에서 발효시킨 도수 낮은 술과 같다. 이 노래들은 너무 쉽게 내 슬픔의 목젖을 타고 내려가지만 어느새 나는 취해 있다.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말한다. 이 앨범은 제발 '다운' 받지 마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