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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일본 나오시마 이우환미술관을 가다

[창간 63주년 특집] 부산의 향기 - 문화상품을 만들자

작품과 뗄 수 없는 '그만의 공간' 문화 랜드마크로 자리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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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 타다오의 건축과 한 몸 … 전체가 작품
- 들어서는 순간 명상적 예술세계로 인도해
- 유럽·亞 관객 줄이어 …"자체로 명품 콘텐츠"
- 연고있는 부산에도 미술관 하나쯤 검토를

관람객들이 이우환 미술관 광장에 설치된 조각작품 '관계항'과 18m 높이의 육각형 콘크리트 봉 사이를 거닐고 있다.
일본 나오시마는 열도를 구성하는 네 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혼슈와 가장 작은 시코쿠 사이의 내해(세토나이카이)에 있는 섬이다. 면적 8.1㎢, 둘레 16㎞, 인구 3323명으로 부산 영도(12㎢)보다 훨씬 작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이 연간 34만 명(2009년 기준)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교육기업인 베네세그룹이 지난 20년 이상 섬 전체에 구축해온 아트사이트를 보기 위해서다. 미술관과 호텔을 합친 신개념 고급 리조트 베네세하우스(1992년)를 시작으로 폐가를 갤러리로 바꾼 아트하우스프로젝트(1997년), 2004년에는 세계 최초의 땅속 미술관인 치추(地中)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이 세계적인 예술 낙원에 지난 6월 또 하나의 방점이 찍혔다. 한국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 이우환(74) 화백의 미술관이 개관한 것이다. 치추미술관이 서양미술가 3인(클로드 모네, 월터 드 마리아, 제임스 터렐)의 미술관이라면 이우환미술관은 한국예술가 1인에게 바쳐졌다. 고향인 경남 함안이나 학창시절을 보낸 부산은 물론, 고국에도 하나 없는 미술관이 일본 땅에 처음으로 생겼다. "위대한 예술가가 탄생한 곳임에도 부산이나 경남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신옥진·부산 공간화랑 대표), "나오시마와 같은 명품 미술관이 있으면 그 자체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뿐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도 엄청날 것이다."(조현·조현화랑 대표),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결국은 부산시의 의지이다."(전창래·갤러리604 대표) 지역 미술계의 안타까움과 아쉬움 속에 우선 현장부터 밟았다.


■건축과 미술이 하나

미술관 입구.
지난달 중순, 부산에서 가가와현 다카마쓰까지 비행기로, 다카마쓰에서 다시 페리를 갈아탄 끝에 도착한 한여름의 나오시마는 무더웠다. 낮 최고기온이 37~38도까지 치솟는 데다 습기까지 머금은 공기 때문에 불쾌지수는 최고치에 도달했다.

섬 동쪽에 있는 미야노우라 항구에서 남쪽으로 10분가량 버스를 타고 가면 치추미술관과 베네세하우스 사이에 정갈한 회색빛의 콘크리트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명성이 높은 안도 타다오(69)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우환미술관이다. 미술관 앞 광장에는 높이 18m 육각형 모양의 콘크리트 기둥이 솟아 있고, 철판과 자연석으로 상징되는 조각 작품들이 놓여 있다. 미술관은 9860㎡(약 3000평) 부지에 지상 1층이다. 안도 타다오와 이우환 화백이 긴밀한 상의 끝에 작품과 미술관이 하나가 되도록 설계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그 공간은 그 작품만을 위한 것. 다른 작품이 들어올 수 없고 교체도 불가능하다.

미술관은 들어가는 입구부터 색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벽이 하나 우뚝 서 있다. 출입문이 따로 없다. 벽을 타고 그냥 걸어 들어간다. 폭이 3m가 채 안 될 것 같은 좁은 통로이다. 통로의 끝에서 다시 한번 방향을 틀면 그제야 작품이 있는 미술관의 입구가 나온다. 후텁지근한 오전, 9시를 조금 넘긴 이른 시간이었지만 티켓박스에는 벌써 10여 명의 관광객이 줄을 서 표를 끊고 있다. 입장료는 1인당 1000엔(한화 1만4000원)이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5개의 방

미술관 전경.
입구에서 실험복 같은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관람객을 맞았다. "크게 떠들지 말고, 볼펜 같은 필기구를 안에서 사용하지 말고, 사진도 찍을 수 없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감상하기를 바란다"는 안내말을 건넨다.

가장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곳은 '조응의 공간'이다. 콘크리트 벽으로 삼면이 막힌 삼각형의 마당에 자갈을 깔고 철판과 자연석을 놓았다. 철판 한 귀퉁이가 약간 말려올라가 있다. 천장은 없다. 바로 하늘이다. 안도 밖도 아니다. 이어지는 '만남의 방'에는 초기작인 '선으로부터'(1974)에서 '조응'(1992)까지 7점의 그림이 걸려 있고 홀 중앙에는 '대화'(2009)라는 조각이 놓여 있다. 깨진 철판 위에 유리를 덮고 그 위에 돌멩이를 하나 얹었다. 짙고 옅은 점이 선을 이루며 흘러가는 작품 앞에서 어떤 이는 몇 분 동안이나 가만히 서 있다. 다음이 '침묵의 방'이다. 거대한 철판을 비스듬히 세워놓고 그 앞에 자연석 하나를 마주 보게 앉혀 놓았다. 천장에 난 구멍에서 자연광이 스며든다. 여기쯤 이르면 절로 말이 없어진다. 대신 눈과 귀의 감각이 살아난다.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명상의 방'. 동굴처럼 무덤처럼 갑갑하지만 왠지 아늑하다. 온통 하얗다. 벽의 각 면에 하나씩 찍힌 푸른색 점이 전부이다. 사람들이 넋을 잃는 곳은 '그림자 방'이다. 돌 그림자 위에 비치는 해와 달과 물의 영상물이 차갑고도 잔잔하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위대한 예술가인 게 중요"

이우환 미술세계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만남의 방'.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이 화백이 그렸던 평면 그림 7점과 조각 작품 1점을 배치하고 있다.
"저도 영상 작품이 좋았어요. 내용이 참 아름답더군요." 여름휴가를 받아 오사카에서 놀러온 안도 치히루(여·23) 씨와 나가타 나오코(여·22) 씨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는 '이우환'이란 작가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정적이고 명상적인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풀어놓는다. 홍콩중국대학(CUHK)에서 건축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케네스 리(24) 씨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을 보러 왔다가 이우환의 미술에 반했다. "저는 '조응의 공간'에서 만난 작품이 기억에 남네요. 철판, 돌, 콘크리트 벽이 순차적으로 보이고 그 위에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왔어요. 작가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지만 공간을 이런 식으로 배치한 것 놀라웠어요." 폴란드 출신 애니메이션 감독인 비올레타 소바(여·38) 씨는 "이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더 많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선생의 작품을 관객이 비로소 완벽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동굴 같은 그 방도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는 침묵만 흐르지만 관람객이 들어가 발소리를 내고 잡음을 냄으로써 공간을 울리게 만들고 작품 역시 생동감을 갖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심플해보이지만 강한 느낌이 있다"며 이우환 미술세계를 더 깊이 알고 싶어 아트숍에서 구입한 두꺼운 책도 보여준다.

'그림자 방'에서는 자연석을 놓고 그 그림자에 영상물을 비춰 자연과 사물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한다. 사진 다다스 야마모토
이우환 미술관 설립은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 그룹 회장이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으로 열린 이우환의 개인전 '울림'을 관람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6월 15일 개관 이래 하루 평균 200명, 7월 한 달간 5530명이 다녀갔다. 84~90%는 일본인, 5~8%가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인, 나머지 5~8%가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인이라는 게 나오시마 후쿠다케 미술관재단 측의 설명이다. 홍보담당자인 다카코 우라베 씨는 "개관 이후 한국인들의 나오시마 방문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담당 큐레이터인 다카후미 시무카 씨는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세계적인 예술가라는 사실"이라며 "철저한 사전조사를 거쳐야 하겠지만 부산에도 미술관이 건립된다면 일본과 함께 아시아권에서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시기획자이자 국민대 초빙교수인 정준모 씨는 "잘 지어진 미술관은 명품 문화콘텐츠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우환 화백 인터뷰

- "나오시마의 또렷한 주제에 끌렸다"

"나오시마에 제 미술관이 설 줄은 사실 꿈에도 몰랐습니다. 예술가가 살아있는 동안에 미술관을 갖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나오시마의 경우에는 좀 달랐습니다. 몇 달간 자꾸 전화가 왔고 분명한 태도와 입장, 콘셉트를 제시했습니다. 비록 주체가 민간인(기업)이지만 그것이 사라지더라도 나오시마 아트 프로젝트 자체는 변질되거나 사라질 수 없는 그런 구조적인 튼튼함 같은 게 있습니다. 건축을 맡은 안도 타다오 선생과도 의견이 잘 맞아 기적적인 이뤄짐이 됐습니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가 아니고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우환(사진) 화백은 '점 선 면'으로 대표되는 미니멀리즘의 대가이자, 미술평론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서울대 미대를 2개월 만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1970년대부터 만드는 것의 최소화를 통해 사물과 사물, 사물과 공간, 공간과 사람간의 관계와 울림을 말하는 '모노하(物派)' 운동을 이끌었다. 2001년에는 미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세계문화상을 아시아권에서는 최초로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선생은 경남 함안 군북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진학하면서 부산으로 왔다. 부산에서 경남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사대부고에 진학했으나 당시 6·25 전쟁 중이었으므로 고등학교 1년은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부산에서 지낸 기간은 총 4년이다.

"부산은 제가 소년시절을 보냈고, 학교를 나오고 친척 친구 누님 여동생이 다 있는 곳입니다. 다른 데보다도 각별한 정이 있는 곳임은 틀림없습니다. 우리나라 몇몇 도시와 외국에서 제 이름을 내세운 미술관 건립 이야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로서도 크게 애착을 갖고 있는 게 아니고요. 그저 멀리서 바라볼 뿐입니다. 그렇지만 부산에서, 그것도 개인이 아니고 공신력이 있는 공공기관에서 예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술관을 추진한다면 거기는 관심이 있어요."

이우환 화백은 도쿄 바로 밑에 있는 가마쿠라라는 고도에 살고 있다. 1936년생인 선생이 1956년 일본으로 갔으니 한국에서 20년, 일본에서 54년이다. 하지만 그 54년도 절반 이상은 유럽에서 머물렀다. 요즘도 1년에 7개월은 유럽에서 보내는 것이 이 화백의 일상이다. 내년 뉴욕 구겐하임 회고전을 앞두고 오전 8시 기상, 9시까지 산보, 오후 2~3시까지 작업, 이후 다시 산책의 일과를 반복하며 정신과 몸을 가다듬고 있다.

"어시스턴트를 가끔 기용하긴 하지만 거의 전부를 혼자서 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에요. 최첨단 현대사회에서 완전히 원시적이고 수공업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뭐 부끄럽지만 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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