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대한민국은 온통 빨간색의 물결이었다. '대~한민국'. 남아공 월드컵 개막이 임박하면서 월드컵 축구팀을 응원하던 그날의 함성이 더욱 가까이에서 진동하는 듯하다. 대한민국 붉은 악마는 빨간색이다. 이 책에 따르면 색채로서의 빨강은 관중을 흥분하게 만들거나 열정을 불어넣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다. 빨강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어 중 가장 오래된 색 언어. 러시아에서 빨강은 오래전부터 '아름다움'과 같은 말로 통했다. 국기에 붉은 색이 들어가는 나라는 77개국이나 된다. 이중에서 21개국은 빨간색을 아예 기본바탕으로 삼았다. 이런 국기를 내세운 나라들은 예외없이 혁명과 연관된 나라라고 봐도 무방하다. 빨강은 '민중'이고 '대중'이다.

색은 미학적인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심리적 의학적 정치적 과학적 경제적 분야에서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상자를 어두운 색으로 사용할 경우 그 안에 든 내용물이 빈틈없이 꽉 차고 무거우며 견실하다는 느낌을 준다. 같은 크기와 무게의 상자라도 체감무게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실제 실험에서 하얀색 상자는 실제 무게(3.0파운드)와 비슷하게 나왔지만 검정색은 5.8파운드로 배 가량 차이가 났다.

붉은 악마들이 축구경기를 관전하며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국내외 사례를 통해 볼 때 상호나 상표로고를 파란색으로 한 기업들은 영업 성장, 경쟁력, 매출이나 수익 상승면에서 그렇지 않은 곳보다 실적이 두드러졌다. 스포츠계는 물론 유엔 헬맷, 유럽경찰도 파랑을 선호한다. 청바지에 사용되는 푸른색의 일종인 '인디고'는 옷 색깔의 범주를 넘어서는 또다른 상징이 된다. 성별 세대 인종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청바지가 해냈기 때문이다. 몸매를 가꾸는 화장품이나 아기용품 약포장에는 분홍색이 주로 쓰인다.

독일의 심리학자와 연구기관에서 일반적인 독일인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색깔을 조사한 결과 고소득자는 파스텔톤이나 음영표현을 활용한 순수한 색을 선호한 반면, 저소득자는 번쩍이면서 단순한 색상이나 자극적인 톤을 선호했다. 건강한 일반인들은 빨강 파랑 초록 노랑의 순으로 색 선호도를 보였지만, 환자들은 초록 파랑 회색 보라 등의 순으로 나왔다. 이유가 무엇일까.

독일 출신 광고·그래픽·텍스트 디자이너인 저자는 색이 우리의 모든 사고 작용과 느낌, 행동 전부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심리적 정신적 특질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색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색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데 의미있는 일"이라며 "사회현상을 통찰력있게 살펴보는 눈을 갖게 하는데 색채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고 귀띔한다.

종교 문학 예술을 넘나드는 색채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재미있다. 보랏빛을 띠는 빨간색은 왜 귀족의 색깔로 인식될까. 1g의 붉은색 염료를 얻기 위해서는 10만 개의 조개를 잡아야 했던 고대인들의 염료 추출법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 1㎏의 모직을 보랏빛으로 염색하려면 오늘날 가치로 3500유로(약 470만 원)가 필요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