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왔을 때 정확히 포착하여 유리한 결과로 이끄는 것은 바둑에서 상당히 중요한 기술이다. 바둑을 두다 보면 절호의 찬스가 몇 번 오는데 하수들은 그 찬스를 무심하게 날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 삶에도 그런 일이 허다하다. 흔히 일생에 세 번 정도 좋은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그러한 찬스를 적절하게 살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왕년의 스타 서봉수 9단은 찬스 포착에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겉보기엔 예리함이 드러나지 않지만 찬스가 왔을 때의 빠른 후각과 결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백성호 9단이 흑●△로 단수했을 때 잇는 수가 극히 당연해 보이는데 서 9단은 기수를 돌려 좌변의 백◎로 젖혔다. 앞서 살펴보았듯 이곳은 흑이 먼저 귀로 젖히면 선수가 되는 곳. 그곳을 잽싸게 먼저 둔 것이 기민한 선수 포착이라고 할 수 있다.

흑93으로 잡을 때 백94로 뒤에서 몰아 넘어간다. 보통 때라면 흑에게 빵빵 따내게 하여 백이 신통치 않지만 이 상황에선 빵따냄의 위력이 그리 크지 않다. 백100으로 머리를 내미니 흑이 애써 건설했던 좌변 흑진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이 순간 백 9단의 가슴은 얼마나 쓰라렸을까. 보복을 하듯 백 9단은 흑101로 백 한 점을 따낸다.

그러고 나서 흑103으로 최후의 큰 곳을 점령해 집의 균형을 맞춘다. 실리상 나쁘지 않다고 본 서 9단은 백101로 유유히 뻗어 중앙을 제압한다. 백110의 세 칸뜀이 재미있다. 보통 중앙에서 세 칸은 허술한 행마인데 이 경우 양쪽 연결을 보고 있어 위험하지 않다. 흑119로 반격에 나설 때 서 9단은 아예 백120으로 파고든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