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턱에 선 경남 하동군 북천면이 남다른 두 가지 향기를 피워올려 전국의 탐방객을 유혹하고 있다. 첫 번째는 꽃내다. 북천면은 지난 19일 '2008 북천 코스모스·메밀 축제'를 시작했다. 올해로 두 번째인데 조용한 시골마을이 전국에서 몰려든 '상추객(賞秋客)'과 출사객으로 북적대고 있다. 그들의 넋을 빼앗은 건 북천면 일대 31㏊ 논에 조성된 코스모스·메밀꽃밭이다.

가을을 대표하는 이 두 가지 꽃이 논에 절반씩 심어져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으니 보지 않아도 장관이다. 2006년 봄부터 이 꽃밭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국도 2호선을 타는 운전자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지난 해 이맘 때 첫 번째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려 지역관광상품으로서 진가를 인정 받았다. 고무된 북천면 주민들은 수세미가, 조롱박이 주렁주렁 달린 '덩굴터널'까지 조성해 볼거리의 밀도를 높였다.

북천면만이 가진 또 다른 향기는 직전리 산자락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바로 지난 4월 문을 연 '이병주문학관'이 내보내는 문향(文香)이다. 이곳에는 26~27일 이틀간 '이병주 문학 학술세미나'가 열린다. 나림(那林·이병주의 호)의 지울 수 없는 진한 문향은 고향인 이 곳에 문학관이 세워지게 했고 여러 문사들을 불러들였다. 이병주기념사업회(공동대표 김윤식 정구영)가 정기행사의 하나로 이번 학술세미나를 마련했다.

나림 이병주(1921~1992). 그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얻은 체험을 누구도 흉내없는 다작, 88권 분량으로 쏟아냈다. 그야말로 한국 문단의 거대한 숲인 것이다.

그는 특히 1955~1961년 7년 동안 국제신문(당시 국제신보) 편집국장과 주필을 역임하면서 이른바 '5·16 필화'를 치러야 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터진 후 나림은 당시 국제신보에 '중립 통일론'을 내세우며 '통일에 민족역량을 총집결하라'는 논지로 칼럼을 썼고 그 해 7월 박정희 군부는 그에게 용공 혐의를 씌워 혁명재판소에 제소했다. 나림은 당시 고 변노섭 국제신보 논설위원 등 2명과 함께 구속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2년 7개월을 복역, 출소했다. 그 때의 나림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당시 국제신보 문화부 기자였던 원로 언론인 김규태 씨는 본지에 연재한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문화부 기자인 필자와 정정화 기자를 광복동 입구에 있는 '갓집'에 불러냈다. 나림은 예의 그 호방한 표정과 늠름한 팔자걸음새였다. 복역 전과 조금도 달라진 데가 없어 보였다'. 두 후배가 위로의 말을 올리자 나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소설을 통하여 우리 현대사의 진통과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또는 할 수 없는 그 함정들을 메우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일념을 가졌어."

나림이 그 말을 곧바로 실천했다는 건 한국 문단사가 증명한다. 1965년 중편 '알렉산드리아'를 월간지 '시대'에 발표해 44세의 늦깎이 소설가로서 등단한 것이다. 이후 '관부연락선'(1972)부터 시작해 폐암으로 타계한 1992년 '세우지 않은 비명'까지 나림은 원고지 10만 여장 분량의 작품을 썼다. 일제 치하의 식민지 교육을 받고, 태평양전쟁에 학병으로 강제 징집됐고, 남북 좌우 이념 대립 현장과 6·25전쟁, 남북 분단, 5·16 쿠데타를 경험한 나림이 피어올린 문향은 사시사철 맡아야 하고, 대를 이어 기억해야 하는 우리 삶의 향기가 아닐까.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