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인류 화합의 장이며 참여하는 데 의의가 있다는 말은 다분히 교과서적이다. 이번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각 출전국가들은 획득한 메달 숫자에 따라 서열이 매겨졌고, 그 양상은 기존 '국제 사회'에서 받았던 성적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로지 메달 개수로 일등에서 꼴찌까지 순위를 결정짓는 올림픽과 '화합'이라는 단어는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그간 올림픽이 끝난 후 사이가 좋아졌다는 나라들은 찾아 보기 힘든 반면 갈등이 더욱 깊어진 사례는 쉽게 댈 수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그런 사례가 나타났다. 한국과 중국이다. 다행히 공식 외교관계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벌어진 불화라고 알려졌고 언론에서는 그걸 '혐한증(嫌韓症)'이라 부르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혐한증'이 거론될 만큼 화제가 됐지만 그 뿌리의 정체는 아직 모호하다. 여기서 주목해 볼 점이 하나 있다. '혐한증'이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자궁을 거쳐 거친 돌연변이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양 국민이 관광이나 무역 등 직접 부딪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아니라 무형의 인터넷에서 극렬 네티즌이 무분별한 싸움을 일으키면서 탄생시킨 괴물이라는 것이다.

이 한-중 인터넷 전쟁의 발생 시점은 지난 5월 중국 쓰촨성 대지진이 일어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한국 네티즌이 쓰촨 대지진에 대해 비아냥댔다는 글이 출현했다. 중국 네티즌이 올린 것으로, 혐한 감정 온도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로 부터 3개월 뒤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 안팎에서 한국 관중과 선수들은 중국인들의 혐한 감정을 뚜렷하게 체험했다. 때를 같이 해 중국 인터넷에는 한국과 관련된 날조 기사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한국 언론이 종이·나침반을 한국이 발명했다' '공자·노자도 한국 사람이라고 했다'는 등 터무니 없는 내용 이었다. 이게 중국 인터넷 매체에서 횡행했고, 중국·대만의 일부 언론이 그대로 옮겨 보도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세계적인 자랑거리로서 개막식 주제가 된 문화유산을 한국인들이 자기네 것이라고 우긴다고 보도했으니 중국 국민들이 좋아할리 만무했다. 하지만 한국사람이면 안다, 그 얘기와 우린 무관하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이러한 전형적인 인터넷 역기능의 해악이 개인이나 한 나라를 벗어난 범국가적인 문제임을 상기시킨다. 인터넷이 무척 융성한 우리나라로선 심각한 문제다. 2005년 6월 현재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인구 100명당 25.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다. 국가별 IT(과학기술) 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라는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는 2002년 들어 1000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외국 언론들은 '한국은 인터넷의 양과 질,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의 인터넷은 양적인 성장이 너무 앞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다니엘 솔로브 지음·이승훈 옮김·비지니스맵)도 그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지은이는 2005년 서울지하철에서 한 여성이 동행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아 세계 인터넷상에 '개똥녀'라고 널리 알려진 사례를 계기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사이버 세상의 '클릭 전쟁'이 실제 현실로 확전되는 상황에 대해 국제 사회가 경각심을 갖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걸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