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인회의가 지난 1~7일 집계한 8월 첫째 주 베스트셀러 집계(1~20위)를 보면 이른바 '불온서적' 한 권이 18위에 올라 화제가 됐다. 지난달 중순께 국방부가 엄선한(?) '불온서적 23선'에 포함된 '나쁜 사마리아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가 쓴 이 책은 최근 대한민국학술원이 발표한 '2008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된 바 있어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
'나쁜 사마리아인'의 선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둘째 주(8월8~14일) 집계에서는 무려 6단계나 뛰어오른 12위에 올라 그 인기가 결코 허수나 '반짝 특수'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출판인회의는 부산의 동보서적 영광도서, 서울의 교보문고 영풍문고 리브로 반디앤루이스를 포함해 대전 광주지역 서점 11곳의 판매자료를 넘겨받아 주간 베스트셀러 순위를 결정한다. 즉, 이 집계 결과는 전국 통계이며 '책심(冊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국 독자들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23선' 조치에 대해 한 방 먹인 걸로 보면 된다. 국방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여론은 어떨까. 국방부 홈페이지(www.mnd.go.kr)에 가봤다.
국방부 홈페이지 국민참여마당의 열린게시판에 접속해 보니 '불온서적'에 관한 시민들의 의견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합당한 조치란 견해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거의 한심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읽을거리를 찾아 고민 중이었는데 때마침 적당한 책을 선정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비꼬는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불온서적을 선정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하느냐고 준엄하게 꾸짖는 이까지 많은 시민들이 성토하고 나섰다. 국방부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삭제된 것으로 추정되는 원색적인 댓글까지 포함한다면 '불온서적 23선'에 항의하는 글은 게시된 것보다 훨씬 더 많았으리라.
국방부로부터 '불온서적 선정'이라는 유탄을 맞은 관련 출판사와 지은이들도 가만 있지 않았다. 지난 7일 부키('나쁜 사마리아인들') 실천문학사(현기영 씨의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 출판사 16곳, 한국출판인회의를 비롯한 출판단체 3곳, 장 교수와 현 씨 등 저자 13명이 이름을 내걸고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국방부의 불온서적 선정은 학문 사상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침해한 처사로, 저자와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반발하며 국방부의 사과를 요구했다. 현 씨 등은 이들 서적 목록이 국방부에 한해 유효하다고는 하나 외부로 알려짐으로써 독자들의 책 선택 자유를 훼손했다고 지적하고 이들 서적 목록이 작성된 경위와 선정 기준 공개를 촉구했다.
국방부는 이 같은 외부 반발에 대해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 이유는 이번 사태를 내부 문제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연 군(軍)만의 문제일까. 책 23권에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지금까지 그 책을 읽은 사람을 자동으로 '불온한 독자'로 만들었는데도? 관련 책을 판 '불온한 서점', 그런 책을 소장하고 있는 '불온한 도서관'을 양산한 건 어떻고. 출판단체와 출판사, 저자만 명예를 훼손 당한 게 아니다. 숱한 독자와 독서 단체들이 정신적인 테러를 당했다. 앞으로 이들이 국방부에 피해배상을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국방부가 차라리 '권장도서'를 선정해 발표했다면 상황은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체조차 불명확한 '불온서적'을 선정해 평지풍파를 일으킨 국방부의 '불온한' 행보는 그 뿌리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문화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