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겪는 스트레스 중 하나가 독서하다가 이해가 안되는 이유가 이해가 안될 경우다. 책 자체가 어렵고, 읽는 이가 그 부문에 대해 잘 모를 때는 아득한 절망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런 상황은 외국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을 읽는 과정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번역이 잘못된 것이다. 그 정도가 심할 때 양식이 있는 출판사는 그 번역본을 회수한다. 이 세상에 뜻이 통하지 않는 괴물책을 유통시키는 일이 얼마나 부도덕한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출판사들은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오역의 덫은 어느새 슬쩍 다가와 흉칙한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다.
올 들어서도 번역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 선두에 세계적인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지명이 놓여있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이 묘지명은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로 국내에 번역, 그렇게 인용돼 왔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모 이동통신사가 카피로 사용했고, 심지어 최근엔 이 묘지명에서 소설제목을 따온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이기호 지음·문학동네)까지 나왔다. 이후 이 번역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 격주간 서평지인 '기획회의'224호에 실린 이윤재 씨의 글을 보자. 그는 이 책 '번역은 공학이다2'란 글을 통해 쇼의 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가 아니라 '나는 알았지. 무덤 근처에서(세상 여기저기서) 머물 만큼 머물면 이런 일(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이라고 옮겨야 옳다고 했다.
두 가지 번역을 읽어보면 아무래도 이 씨의 것에 더 수긍이 간다. 이 씨의 글을 싣은 '기획회의'의 편집·발행인이 이기호 씨(소설 '갈팡질팡 하다가…'의 저자)라는 점을 상기해보면 사실상 '나는 알았지…' 번역이 판정승한 것 같다. 이 씨는 'around'가 전치사적 부사로 사용된 걸 무시하면 '우물쭈물하다가…'와 같은 자의적 해석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원작에 될 수 있는 한 가까이 접근해야 하는 번역의 철칙 중 하나를 어겼다고 그는 덧붙였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이번에는 그 대상이 성경(마태복음)이다.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라는 격언으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졌다. 이 격언의 경우는, 옛 성경을 옮기는 과정에서 '밧줄'이 '낙타'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나와 오역 논란에 휩싸여있다. '낙타'를 '밧줄'로 바꿔놓고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어쩐지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게 아니란다. 역시 이 씨 주장인데 그의 얘기가 재미있다.
"'낙타'가 아니라 '밧줄'이 맞다는 얘기는 신빙성이 없다. 옛 성경은 희랍어로 씌어졌는데 낙타에 해당하는 희랍어는 'Kamelon'이고 밧줄을 뜻하는 희랍어는 'Kamilon'이다. 대부분 고문헌은 Kamelon으로 돼 있으며 Kamilon으로 표기한 곳은 훨씬 적다." 이어 직격탄을 날린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성곽 정문외에 낙타 한 마리가 겨우 통과할 만한 쪽문이 하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걸 '바늘귀'라고 했다."
오역 반역(反譯:원래의 의미와 반대되는 번역) 의역 등 잘못된 번역들이 숨겨놓은 함정은 이처럼 은밀하면서도 깊디깊다. 그 속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도록 번역인들의 분투가 절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