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쓰촨성 대지진을 극복해나가는 중국인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인간이 이토록 강인했던가 하는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 희대의 생존기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 중이다. 지난 19일 인민일보가 보도한 46세 여성의 생존기는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극대점을 보여주었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속에 고립된 이 여인은 허벅지를 송곳으로 찔러 흘러나온 피를 마시며 73시간을 버텼다.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발견됐지만 몸을 빠져나오기가 힘들자 연장으로 다리를 자르고 사지를 탈출했다고 한다. 이런 극적인 생환기가 잇달아 보도되면서 세계인들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고 있다.

그뿐인가. 중국 대지진은 인민들을 일심동체로 만들었다. 대참사 현장에서 눈물을 뿌리며 "한 사람의 구조가 전부를 다 구하는 일이다"라고 외치는 원자바오 총리를 보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꼬마들마저 저금통을 들고나와 몽땅 구호 성금으로 내는 광경은 중국 인민이 동족의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몸이 되었다는 징표다.

그런데 그런 풍경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중국에 관한 또 다른 모습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5·12 대지진 이전의 중국 상황이다. 중국군부는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 민중을 유혈진압했으며, 올림픽 애국주의에 불타는 중국인들은 성화를 봉송하는 나라마다 소요를 일으켜 국제적 반발에 직면했었다.

대지진이 일어난 5월12일 앞뒤 상황을 연결해 보면 인간 사랑의 한 유형을 발견하게 된다. 안으로 갇힌 사랑이다. 자기 국가·마을·가족 안에서만 통용되는 사랑, 그 안에서는 모두가 한몸이 되고 서로 고통을 나눈다. 중국이 보이고 있는 2주 전과 지금의 모습이 그렇다. 내 아이가 귀한만큼 다른 아이도 그렇게 대해야 하며, 내 국민이 존귀하면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도 그리해야 할 터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원칙을 지키는 나라는 드물다. 중국 정부는 대참사를 당한 자국민에 대해선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티베트인들에게는 냉정하게 군홧발을 내질렀다. 사실 이런 이기적인 사랑 행태에서 자유로운 국가는 별로 없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 같은 강대국을 위시해 우리나라 역시 이 점에서 큰소리칠 입장은 못된다. 자신과 우리를 떠나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포용할 수는 없는 것인가, 폐쇄적 인간애 속에서 인류는 끊임없이 반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하는 철학적 의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이가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이기적 유전자(1976년)'를 쓴 리처드 도킨스이다. 인간은 유전자를 담는 틀에 불과하며, 그 유전자는 후세에 자신을 남기려는 유일한 목적을 가진다는 도킨스의 주장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격렬한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유전자 덩어리인 인간은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도킨스의 이론은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전쟁과 다툼을 볼 때 그럴 듯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나 도킨스는 유전자란 첨단 과학적 도구로써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고 있지만 그 과정과 결론을 증명하는 방식은 결코 과학적이지 못했다. 어떤 이는 그 불완전성을 희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 중에는 아주 작지만 이타적 유전자도 숨어있다고 믿는 것이다. 둘 다 코드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느 쪽을 믿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우리는 매일 그 결과를 보고 살고 있다. 어느 쪽에 서야 할까.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