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이나 강가, 공원·산기슭 같은 전망이 좋은 곳에 초고층 아파트들이 잇달아 들어서고 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 한강을 가진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도시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혀야 건물 꼭대기가 보이는 이들 아파트는 서민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세계적 명장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고품격' 아파트라니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부러움, 도시 경관이나 해안선을 잠식하는 거대한 덩치가 주는 위압감, 못 가진 자가 가진 자에 대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위화감…. 물론 이런 서민들의 복잡한 흉중은 아파트 시공회사들의 분양 광고에서는 (당연히!)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우리는 거기서 현대 자본주의가 슬그머니 끼워넣은 신종 '권리'를 접하게 된다. 조망권(眺望權·Prospect right)이다.
조망권은 고층 건물에서 밖으로 바라봤을 때 특정 풍경을 볼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일조권과는 달리 법 규정이 없지만 생활 이익과 직결되다 보니 법정 시빗거리가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2004년 9월 서울고법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한강 주변 고층 아파트의 조망권을 처음으로 인정한 이후 이 새로운 '권리'는 점차 우리의 일상 생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선, 조망권이 재산권으로 둔갑했다.
예컨대, 요즘 부산에서 주목받는 아파트들을 보자. 고가·고층·해변에 위치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들 아파트 분양사는 멋진 바다 풍경을 제공한다는 점을 유독 강조한다. 입주자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조망권에 대한 비용인데 이건 고스란히 아파트 분양가에 반영된다. 바닷가에 지어진 고층 아파트는 십중팔구 그렇지 않은 아파트보다 비싸기 마련이다. 부산 부동산정보업체인 고고넷이 조사한 바로는 아파트 3.3㎡당 조망권 소유에 따른 비용은 100만 원이라고 한다(서울 한강변 아파트는 이보다 훨씬 비싼 3.3㎡당 600만~800만 원이다). 멋진 풍경을 계속 감상하게 됐으니 대가를 치를 만하고 아울러 환금성을 가진 권리가 되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논리가 일견 그럴 듯해보인다. 또 그렇게 해서 조망권이 탄생했다. 이 대목에서 잠깐 생각해 보자. 무릇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익을 본 자가 생기면 손해보는 자가 있기 마련. 부산 해변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들이 '바다 조망권'을 소유하는 이익을 봤다면 손해를 입은 이들은? 생각해보나마나, 그 아파트에 입주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이다.
원래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그 바닷가는 열린 공간이었다. 누구나 바닷가에 서서 멋진 조망을 즐길 수 있었다.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조망권을 공유했던 것이다. 바다는 인류 공동의 유산이니까. 그런 곳에 아파트를 높게 지어 바다 조망권을 유료화하고 극소수 입주민에게만 즐기도록 했다. 아파트 분양사는 건물뿐만 아니라 저 멀리 풍경까지 약삭빠르게 팔아 먹었고, 행정당국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 부산 시민들은 이런 것들을 불쾌하게 여기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 60%가 지역 자연경관이 나빠졌다고 평가한 '도시경관에 대한 의식조사'(2008년 1월 발표)가 그 증거다.
'현대 세계의 일상성(박정자 옮김·기파랑)'을 쓴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1901~1991)는 광고는 인간의 욕망을 파헤쳐 그것을 왜곡된 이미지로 보여준다고 했다. 아파트를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에 바다 조망권을 끼워파는 분양 전략이 그렇지 않은가. 부산이 해양수도를 꿈꾼다면 바다를 즐기는 시민들의 천부권리가 더 이상 침해돼선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