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인가 현대인의 생활 속으로 슬금슬금 들어와 필수품이 돼 버린 게 몇 있다. 주변을 한 바퀴 휘둘러보면 금방 눈에 띄는 휴대전화 컴퓨터(인터넷) 자동차가 그것들이다. 이 세 가지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들이 막 등장했을 때 귀한 물건이었고 다루기가 힘들어 사용자들은 골탕 먹기 일쑤였다는 것.

잠깐 옛날로 돌아가 보면, 휴대전화 초기 모델은 크기가 무전기만 해 결코 '휴대의 대상'이 아니었고 잘 터지지도 않았다(소유한 사람은 목에 힘깨나 주고 다녔지만). 컴퓨터는 쌀쌀맞은 여인 같아 초심자들의 속을 태웠다. 적어도 타자법 MS도스 사용법 정도는 익혀 '컴심'을 알아야 대화가 가능했으므로. '길치'나 '운동치'가 수동기어 차량으로 자동차 면허를 따려면 고생길이 훤했다. 더 이상 인지를 붙일 여백이 없는 운전면허 응시 원서를 응시하면서 한숨 짓는 이들이 적잖았다. 다행히 이런 문제들은 시간이 해결해 줬다. 명석한 과학자들이 관련 기술을 나날이 발전시켜 불편을 덜어준 데다 무엇보다 손기술이 뛰어났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세 가지에 빠른 속도로 적응해갔다. 지금은 다들 휴대전화 컴퓨터 자동차를 잘 다룬다. 마치 자기 몸의 일부처럼. 그런데, 최근 들어 극복해야 할 새로운 대상이 나타났다. 플라톤이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격찬한 술, 와인이다.

와인은 몇 년 전만 해도 필부필녀가 근접하기 힘든 서양 술로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경우가 드물었다. 혹 그런 상황에 처하더라도 어물쩍 넘기면 그만이었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와인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명절 술도 와인, 평상시 간단한 선물도 와인, 조금 고급스럽다 싶은 식사자리에 가면 필히 와인이다.

사실, 남북 정상회담장에 와인이 등장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찬장에서 건배한 와인이 프랑스 보르도산 최고급 '샤토 라투르'였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남북 만찬장에는 한참 격이 떨어지는 부르고뉴산 '미셀 피카르'가 나와 북측이 술로 남한의 두 대통령을 차별했다는 말이 나왔는데, 이건 농담이 아니다. 와인의 가치는 누가 그것을 마시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에 따라 지위를 부여받는다.

와인은 낯선 외국에서 건너온 술이다. 주법 예법도 색다르다. 양주가 이 땅에 들어온 후 온갖 주법이 생겼듯 와인 역시 앞으로 그러할 것이다. 일부 주당은 각종 다른 술과 궁합을 맞춰 보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에 알 건 알아야 한다. 국제 무대에서 통용되는 와인에 대한 기본 지식은 현대인의 필수품. 관련 서적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신간인 '한 권으로 끝내는 와인 특강'(전상헌 지음·예문·1만8000원)이 그 중 하나다.

이 책에는 와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싣고 있는데 왕초보용 와인 매너는 이렇다. 우선, 와인은 빛깔·향· 맛을 즐기면서 마시라는 충고다. 잔에 담긴 와인의 빛깔과 투명성을 살펴본 후, 천천히 잔을 돌리면서 향기를 음미하다가, 한 모금 머금고 입 안에서 굴리면서 끝맛과 잔향을 맛보면 된다. 웨이터가 술을 따르면 잔을 들지 말고 잔받침대를 가볍게 눌러주는 정도로 대응하면 좋단다. 더 복잡한 사항은 학습과 실전을 통하여 익혀야 할 터이고 프랑스어로 '건배'를 '아 보트로 쌍떼'라고 한다는 정도만 기억해 두자.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