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무척 친숙하지만 알려진 건 별로 없는 존재, 기억과 마음이 그렇다. 이런 미지의 영역에 과학자들이 도전해 그 정체를 조금씩 풀어내고 있는 정도다. 인지심리학·인공지능·인지언어학 과학자들이 그들인데 주요 연구 대상은 언어 기억 사고 지각 학습 감정 의식 신념행위와 사회적 상호작용, 동기 부여 등이다. 이 세 분야를 중심으로 한 학제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1977년 미국에서 학술잡지 '인지과학(Cognition Science)'이 창간됐고 1979년 학회가 출범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기억의 메커니즘을 사람의 뇌가 기억을 어떤 방법으로 조절하는가하는 원리가 국내 연구팀에 의해서 규명됐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강봉균 교수 연구팀은 기억의 연결고리인 뇌신경(시냅스)이 강화돼 나중에 기억을 꺼내기 쉽도록 도와주는 사실을 발견했다(사이언스 온라인판 2월 8일자).

강 교수 연구팀은 "기억의 연결고리는 없어졌다 생겼다 하는데 사물을 보거나 정보를 들으면 일단 단기 기억으로 저장된 뒤 일부가 장기기억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흔히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는 상황을 분자생물학적으로 규명 한 것. 연구 결과는 추상적인 개념을 분자 구조의 변화로 뚜렷하게 보여준다. '회상'은 '뇌에서 프로테아좀이라는 효소가 분비돼 해당기억과 관련된 신경세포의 연결고리를 끊어 그 구조가 허물어진 후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연구팀은 이런 원리를 확대해 기억 상실을 치료하는 등 의학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런 기억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책이 바로 스티븐 핑거가 쓴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김한영 옮김·소소)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이론물리센터 (APCTP·소장 피터 풀데)가 선정한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중 하나였다. 지은이 스티븐 핑거는 저명한 인지과학자이다. 1982년부터 21년간 MIT에서 교수로 일했고 2003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로 복귀해 심리학과에서 인간 본성을 주제로 언어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을 강의 중이다. 이 책은 신경과학 경제학과 사회심리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탐사하고 있다. 책 앞머리에 지은이가 밝혔듯이, '감히'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책 제목으로 올려놓고 진화 심리학이란 도구로 마음을 유쾌하게 요리했다.

지은이는 자연선택에 의해 마음이 진화해온 경로를 보여 준다. 마음은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한 기관들의 연산 체계라고 말한다.

"마음은 뇌의 활동인데,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며 사고는 일종의 연산이다. 마음은 여러 개의 모듈 즉 마음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이 세계와의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진화한 특별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 모듈의 기본 논리는 우리의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지정된다. 이러한 모듈들의 작용은 인간의 진화사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렵채집 시기에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이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전시킨 것이다."

마음도 진화한다는 것이 핑커의 주장인데 이는 마음을 추상적인 심리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고 과학적인 방법 추론 실험을 통해 이해하기 위해 도입된 '계산주의 마음 이론'의 도움을 받고 있다. 여기서는 마음의 작동 방식을 정보처리장치로 비유한다. 입력 기억 중앙처리 출력장치 등으로 구성된 컴퓨터처럼 인간의 마음도 이러한 기관들의 네트워크로 이해한다.

핑거의 주장은 기존 우리의 기억을 일격에 허물어뜨리는 효과가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하다. 열정은 비이성적이고, 창의성은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며, 예술과 종교는 더 고양된 정신을 추구하는 열망의 표현이란 주장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마음과 기억을 이토록 '마음껏' 요리한 책이 지금까지 없었으므로.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