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가을 부산에서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고 윤이상의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가 국내 처음으로 울려퍼진다. 부산시의회가 최근 열린 정례회에서 시의 문화예술 일반회계 부문 '윤이상 칸타타 공연' 예산을 통과시킴으로써 부산시와 부산문화회관 그리고 한울림합창단이 공동 추진해온 '윤이상 탄생 90주년 기념 칸타타 공연'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 칸타타는 윤이상의 음악이 집대성된 작품으로 우리 민족의 아픈 현실과 남북화해, 자주통일의 염원을 담은 대서사시이다. 특히 이 작품은 내년 윤이상 탄생 90주년을 맞아 평양 공연도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최근 경색된 남북이 윤이상의 염원을 매개로 소통을 재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역사적인 공연의 기획과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은 한울림합창단 차재근(50) 대표이다. 지난 20일 부산 동구 수정동 한울림합창단 사무실에서 차 대표를 만나 윤이상 칸타타 공연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합창단 연습실을 겸한 사무실은 때마침 연습이 없는 시간이라 휑하다는 느낌이 드는가 싶었는데, 출입문 맞은 편 벽에 현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藝術救國'. 세로로 목각된 이 현판은 힘차면서도 회화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차 대표와 인사를 하자마자 이 현판에 대해 물었다. "이건 우리 합창단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항일독립운동가 한형석 선생의 글을 그의 아들인 한종수 씨가 새겨 지난해 10월 우리 합창단에게 기증한 것입니다." 그의 말에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배어 있었다. 한울림합창단은 지난해 광복 60주년 기념이자 민족음악가 탐구 작업의 하나로 한형석 선생의 음악과 삶을 조명하는 음악회 '대륙에 묻힌 이름-항일독립운동음악가 먼구름 한형석'을 가졌는데, 이에 선생의 아들인 종수 씨가 고마움의 표시로 이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윤이상의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공연 계획에 대해 묻자 차 대표는 '한울림합창단의 민족음악 탐구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난 2003년 작곡가 변훈의 작품을 시작으로 2004년 '다시 부르는 겨레의 노래'에 이어 지난해엔 '항일독립운동음악가 한형석의 음악세계' 음악회를 가졌고 올해엔 이를 중국 옌벤에서 공연했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칸타타는 이 같은 민족음악 탐구라는 우리 합창단의 장기계획의 하나일 뿐 아니라 부산시와 국내 음악계의 선생 탄생 90주년 추모 음악회로서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특히 선생은 초기음악을 대부분 부산에서 활동할 때 작곡해 음악적으로는 부산이 고향"이라며 "따라서 '부산을 빛낸 인물'로도 윤이상을 선정한 부산시가 탄생 90주년을 맞아 조명하는 것은 매우 뜻 깊고 적절하다"며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여준 시에 감사를 전했다.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공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묻자 그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며 설명을 이었다. "이 칸타타는 윤이상 음악을 집대성한 대곡인데 아직 한국에서는 한 번도 공연되지 못했습니다. 내용적으로는 남북화해의 염원을 담고 있고, 특히 선생은 이 작품이 남한에서 초연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런 만큼 선생의 탄생 90주년에 음악적 고향인 부산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칸타타는 윤이상의 전성기인 1983년 작곡되었으며, 86년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합창단(지휘 김병화)에 의해 딱 한번 연주되었고, 동·서양에서 널리 사랑받는 칸타타 '카르미나 브라나'를 훨씬 뛰어넘는 대서사곡이라고 차 대표는 루이제 린저(윤이상의 전기 '용의 귀환'의 저자)를 인용해 설명했다.
기자는 인터뷰 도중 갑자기 이 칸타타의 선율이 궁금해 "지금 들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하나뿐이 없는 CD라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대답에 아쉬웠지만 설명을 듣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기마민족의 기상을 상기시킬 정도로 매우 역동적이었어요. 처음 들을 때 온 몸에 소름이 돋더군요. 가사 내용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현실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민족화해와 통일을 염원하고 있어요." 이 작품은 역사 현실1 현실2 미래 등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백기완 문익환 고은 양성우 박봉우 박두진 김남주 문병란 그리고 경련스님의 시를 가사로 삼았다.
차 대표가 이 작품을 듣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2004년 가을 윤이상평화재단 발기인 소식지에 수록된 윤이상 작품 리스트에서 이 칸타타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독일의 출판사를 다 뒤졌으나 이 작품의 악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윤이상평화재단을 통해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초연 실황 음반이 소수 남아 있다는 정보를 듣고 어렵사리 구한 것이다.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이 연주한 음반을 들어보니 엄청난 대곡이자 난곡이어서 우리가 과연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감도 엄습하더군요. 그러나 부산시립교향악단과 시립합창단의 기량이 뛰어난데다 윤이상의 음악을 많이 지휘한 거장들이 있어 잘 해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칸타타를 지휘할 지휘자는 이 작품을 초연한 김병화, 독일 하노버슈타츠오퍼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겸 음악감독인 구자범 씨와 재일 조선인 신분으로 일본열도를 휘어잡은 김홍재 씨가 물망에 오르고 있다고 차 대표가 귀뜸했다.
윤이상의 칸타타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기자는 차 대표가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으면서도 해박한 지식과 철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음악에, 특히 민족음악(우리의 것을 주체적으로 담아낸 작품)에 관심을 가졌느냐는 물음에 그는 "고1 때 변훈의 '떠나가는 배' '명태'를 듣고 기존 찬송가풍의 가곡과는 다른 문화충격을 느끼고, 대학 때 변훈 선생을 직접 찾아가 뵌 이후부터"라고 대답했다. 그는 변훈 선생의 가곡에 매료된 나머지 대학 3년 때인 지난 1980년 서울 동부이천동 한강빌라맨선 선생의 자택을 찾아갔다. 외교관으로서 외국생활에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은 선생은 경영학과 대학생의 느닺없는 방문을 반갑게 맞아줬고, 비주류 작곡가로서의 허허로운 속내를 소탈하게 드러내보였다. 이들 두 사람은 얼마되지 않아 '양부양자' 결연을 했다. 선생은 작곡을 마친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꼭 차 대표를 오게 해 부르게 하곤 했다. 차 대표는 당시 통기타가 위세를 떨치던 시대에 '변훈, 그리고 음악과 시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서울 7개 대학을 돌며 공연해 큰 호응을 받았다.
"원산이 고향인 선생은 항상 우리 현대사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이를 작품으로 토해내곤 했어요. 하루는 '한강'이란 작품을 쓸 때 남한강과 북한강 수계를 함께 답사한 자리에서 '이 화천댐의 물고기는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는데 나는 왜 못가나'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다부진 체구에 선량한 동안의 모습인 차 대표는 보기와는 달리 매우 파란만장한 삶의 이력을 가졌다. 경영학과를 전공하면서 음악에 심취했다는 것 외에, 강제징집 등으로 2개 대학을 거치며 11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는가 하면 출판사, 문화예술기획, 호텔관리, 외제차 딜러 등을 전전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한울림합창단의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이 지난해 문광부로부터 우수사례에 선정되면서 한울림합창단은 부산에서 민간단체로는 유일하게 전문예술단체 승인을 받았다. 차 대표는 부산문화예술교육협의회 회장에 선출돼 더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앞으로 삶의 방향을 묻자 그는 한형석 선생의 글 '藝術救國'이 새겨진 현판을 다시 한번 보며 말했다. "문화와 예술을 통해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 차재근 대표 약력
▲1956년 경기도 용인 출생 ▲도서출판 '이랑' 대표 역임 ▲공연기획 '예바라지' 대표 역임 ▲메르세데스벤츠 울산딜러 CEO 역임 ▲현 전문예술단체 한울림합창단 대표 ▲현 (사)부산문화예술교육협의회 회장 ▲현 문화관광부 '2007대한민국 문화의 달 행사' 추진위원 ▲현 문화관광부 문화바우처사업 주관사업자 ▲2005~2007문화관광부 사회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 주관사업자 ▲2006~2007문화관광부 학교문화예술교육시범사업(부산) 운영위원
# 藝術救國 - 예술구국 : 예술로써 나라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