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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이 산책을 할 때면 언제나 찾아오는 수영동 푸조나무(천연기념물 311호). 그 나무 앞에 선 시인은 "아름다운 느림"을 이 푸조나무에게서 본다고 했다 강덕철 기자 kangdc@kookje.co.kr |
'시장에 들어서며 만난 아낙에게 두부 한 모 사고/두부에 잘게잘게 숨어든 콩 한 짐 얻고/주름투성이 꼬부랑 할멈에게 상치 한 다발 사고/푸른 밭뙈기 넘실대며 지나간/해와 바람의 입맞춤 한아름 안고' ('어느 날의 횡재' 중)
지난 초여름 오후 시인 최영철(50) 씨는 부산 수영구 수영동 성북길 28호 자신의 집 문밖을 나섰다. 지난 2003년 여름 이곳에 이사온 후 벌써 3년째 하는 산책, 아니 동네 순례이다. 그의 걸음걸이는 언제나 왼쪽 가슴이 앞서는, 어쩌면 느린 게걸음처럼 보인다. 중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왼쪽 대퇴부를 크게 다친 탓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걸음걸이는 '어디로 이동한다'는 목적의식이 없어 보인다. 성북길을 따라 가다 골목을 돈다. 동네 구멍가게가 골목마다 나타난다. 어떤 곳은 며칠 전에 문을 닫은 것도 있다. 최 시인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그는 며칠 전 저 너머 수영강변의 대형 할인마트에서 1주일치 장을 봐왔기 때문이다. 어느덧 수영사적공원 앞이다. 불과 300~400m 거리인데 10분 넘게 걸렸다. 여기서 다시 남문길로 접어든다. 70대로 보이는 노인 댓명이 집 앞 골목에 댓자리를 깔고 막걸리판에 화투을 치고 있다. 막걸리에 입맛을 다시며 한참을 구경하다 팔도시장으로 향한다.
옛 수영성을 공원화한 수영사적공원 주변은 최 시인이 보기엔 현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빠름'에 대해 알러지 체질인 그에게 이곳은 아늑한 동네이다. 골목이 다소 복잡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미로처럼 얽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최 시인은 이사온 그해에는 이렇게 산책을 나왔다가 길을 잃고 헤맨 적이 많았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요즘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골목길이 정물화나 동양화라면 팔도시장은 그야말로 살아 펄떡이는 동영상이다. 최 시인은 이곳에만 오면 항상 횡재하는 기분이다.
'시장에 들어서며 만난 아낙에게 두부 한 모 사고/두부에 잘게잘게 숨어든 콩 한 짐 얻고/주름투성이 꼬부랑 할멈에게 상치 한 다발 사고/푸른 밭뙈기 넘실대며 지나간/해와 바람의 입맞춤 한아름 안고'('어느 날의 횡재' 중)
시인은 아낙의 두부에서 농부가 콩을 거두어 땀흘리며 지고가는 모습을 보고, 꼬부랑 할멈의 상치 한 다발에서 푸른 밭의 무성한 상치 잎사귀에 쏟아지고 스쳐간 햇살과 바람을 느낀다.
'파장 무렵 집 근처 노점에서 산 호박잎/스무 장에 오백 원이다/호박씨야 값을 따질 수 없다지만/호박씨를 키운 흙의 노고는 적게 잡아 오백 원/해와 비와 바람의 노고도 적게 잡아 각각 오백 원/…/그것을 파느라 저녁도 굶고 있는 노점 할머니의 노고도 적게 잡아 오백원/…/그것을 입 안에 다 넣으려고/호박 쌈을 먹는 내 입이/찢어질 듯 벌어졌다'('본전 생각')
팔도시장에서의 횡재는 이뿐 아니다. 파장 무렵이면 으레 볼 수 있는 낮술에 취한 사람들의 술주정과 시장 아줌마의 악다구니도 최 시인에게는 놓칠 수 없는 삶의 풍경화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하루 공친 공사판 박씨 무어라 시부렁대는/낮술 주정 한 사발 얻어걸치고/아줌씨가 받아먹을 잘 달구어진 욕지거리/무단히 길 가던 내가 공으로 받아먹고'('어느 날의 횡재' 중)
이제 최 시인의 동네순례는 반환점을 지났다. '성난 볼때기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저물녘 해 내 뒷덜미에 와서 편안히 누울' 무렵이면 발길은 팔도시장을 지나 수영성 동문을 향한다. 동문에 들어서면 수령 500년의 곰솔이 반긴다. 천년기념물이기도 한 이 곰솔은 언제나 그에게 '어깨 두드려주는 덕담 한마디'를 건넨다.
곰솔의 덕담에 한결 든든해진 최 시인은 발걸음을 공원 입구 안용복 사당쪽으로 옮긴다. 사당 바로 옆에는 500년 생 푸조나무(천연기념물 311호·일명 포구나무)가 있다. 최 시인이 산책 때면 언제나 찾는 내면의 친구 같은 나무이다.
최시인이 이 푸조나무를 처음 본 것은 뇌수술로 생사를 넘나든 직후인 1997년 겨울이었다. 당시는 이곳이 공원으로 정비되지 않은 때라 나무둥치는 쓰레기로 덮여 마치 몹쓸 고목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키 18m에 둘레 8.5m인 이 나무의 둥치는 한 줄기가 곧게 자라 굵어진 여느 나무와 달리 갈라지고 뒤틀리고 다시 엉겨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500년 풍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이 나무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다랐던 그에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나무는 모양만 유별난 게 아니다. 봄이면 잎도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늦게 핀다. 물론 단풍도 늦다. 모든 게 빠르기를 지향하는 세태에 이 나무는 유독 '느림의 미학'을 의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 시인이 푸조나무 앞 벤치에서 일어나는 시각은 언제나 나무 그늘과 주변이 모두 어둑어둑해질 무렵이다.
지난 8일 오후 기자는 최근 여덟 번째 시집 '호루라기'(문학과 지성사)를 낸 최 시인을 수영구 수영동 271 수영사적공원 내 푸조나무 아래에서 만나 이 같은 '시인의 하루'를 듣고, 그의 '시론'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최 시인은 일관되게 작고 하찮은 것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보듬어왔다. 이번 시집도 큰 테두리로 보면 같은 맥락의 일상의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죽음에 대한 성찰은 시인의 내면이 더욱 깊어진 방증일 것이다.
푸조나무에는 열매가 한창 검게 익어 수십 마리의 핀치들이 이를 따 먹으며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번 시집은 최 시인의 내면이 그린 이 동네 풍경화 같더라"고 말을 건넸다.
"시집의 시편들은 2003년 여름 이곳에 이사온 이후 쓰여졌으니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곳은 특히 저에게 시적 에너지를 많이 불어넣어 주었어요. 이 푸조나무가 그렇고, 곰솔도 그리고 팔도시장과 골목도 그렇습니다. 이곳은 도시이면서도 30여 년 전의 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또 시간의 흐름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이렇게 말한 최 시인은 푸조나무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시란 본질적으로 '관계 맺기'입니다. 특히 저는 내면과 외부의 구체적인 것이 만나야 시가 써집니다. 이곳에서 많이 만난 셈이죠." 그는 "시가 안 되면 이사를 가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농담조로 한다며 웃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느림'은 시의 본질과 가까운 것 같다. 그는 이렇게 '시론'을 말했다. "시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한 때의 환상에 불과합니다. 시는 질주하는 세태와 욕망을 조금 붙잡아 속도를 늦추는 데 있습니다. 서구의 이성주의와 이에 바탕한 물질주의의 대척점이 시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어느 자리에 있느냐가 중요해지죠. 서울 강남에서 도시의 온갖 욕망을 향유하면서 하찮은 생명을 노래할 수는 없겠지요.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계관이 형성되고 그곳에서 관계 맺기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 말은 곧바로 시의 진정성과 연결되었다. 좋은 시란 진실한, 구체적 진실성을 담보한 시라고 그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최 시인은 "그동안 일정한 보폭(2년 반마다 1권씩 상재)으로 시를 써왔는데, 이것도 종이를 낭비 한, 시의 본질을 위배하는 행위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앞으로는 시작(詩作)의 걸음을 한층 더 느리게 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시집의 표제작 '호루라기'를 비롯해 죽음에 대한 연민과 보듬기를 나타낸 몇몇 시편이 생각나 최 시인과 관련된 부산시단의 우스개 소리를 하나 전했다. "시를 제대로 쓰려면 '두껑을 열어야'(뇌 수술을 해야) 한다. 허만하 강은교 최영철 정일근 등 시를 잘 쓴다는 시인은 모두 머리를 열었지 않느냐."
최 시인은 웃으며 말을 받았다. "뇌수술을 하고 나니 정말 머리가 개운한 느낌이었어요. 몸은 망가졌지만 깨끗해진 머리를 새로 얻은 거죠." 중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도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주변에서 연민에 못이겨 안달인데 정작 그는 "'난 괜찮은데 왜 이리 소란일까' 싶었다"고 한다. 그는 그 후로 '체질적으로' 주어진 여건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체질이라고 될 성질인가. 이른 나이일망정 삶에 대한 어떤 깨달음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체질적인 시인'으로 거듭나도록 한 게 아닐까.
그는 "죽음은 생의 완성인데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될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죽음을 기피할 게 아니라 잘 맞이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느리고 게으르고 무능한 게 나쁜 것 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체질이 그렇고 이들은 곧 시의 본질적 속성"이라며 "그래서 나는 그런 삶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천생 시인이었다. 어쩌면 시의 구도자 같은 모습이었다.
제법 어둑어둑한 시각, 푸조나무 가지에는 여전히 핀치들이 500년생 푸조나무 열매로 성찬을 벌이느라 왁자했다. 우리는 요즘 최 시인이 즐겨 찾는다는 북면막걸리집을 찾아 남문길을 따라 내려갔다. 최 시인은 걸으면서 인생의 동반자이자 소설가인 조명숙 씨에게 전화를 했다.
# 최영철 시인 약력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 ▲시집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일광욕 하는 가구' '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 '그림자 호수', 산문집 '나들이 부산', 어른동화 '사랑을 하면 자유를 잃게 돼' ▲백석문학상 수상(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