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어머니들은 때가 되면 그림책에서 위인전으로, 소설로, 역사책으로 옮겨가는 것을 제대로 된 독서 발달 단계라 생각하고, 자신이 아이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불안해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 어머니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선생님, 우리 아이는 3학년인데 아직도 그림책만 읽어요"하고 걱정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림책 하면 글자를 모르는 유아들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에서 오는 걱정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그림책은 그 어떤 명작 소설보다도 감동을 준다.
그림보다는 문자에 익숙한 어른들은 그림책을 볼 때 그림에 시선이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재미, 책이 주는 풍성한 느낌들을 놓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몇 년 전 일학년을 가르치며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읽어준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네가 내 머리에 똥 쌌지?"하며 온갖 동물들을 찾아가 범인을 색출하는 두더지의 이야기를 몇 번씩 읽어주어도 읽을 때마다 재미있어 했다.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그 표정이라니!
이야기의 재미가 어디에 있나 궁금해 하는 필자에게 아이들이 던져준 해답은 그림이었다.
두더지가 여러 동물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동물들의 생김새와 똥의 모양을 관찰하는 장면이 그렇게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림이 없었다면 비둘기와 말과 토끼, 염소, 소와 돼지 똥의 차이를 아이들에게 그렇게 쉽고도 재미있게 이해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림책의 그림은 단순히 문장의 설명이나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글에서 설명되지 않는 과정이나 상황을 그림이 자세하게 보여주며 글의 세계를 확장시켜준다.
그래서 뛰어난 그림책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대강의 줄거리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어른들이 글을 통해서 이야기와 상징과 느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듯이 아이들은 그림을 읽어내는 행위를 통해서 이야기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나라를 방문해서 특별전시회를 가지기도 한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인 존 버닝 햄은 "요즘 어린이들이 정말 원하는 책은 비디오나 컴퓨터 등과 경쟁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이 녹아있는 책일 것이다"고 말했다. 좋은 그림책은 컴퓨터 오락에 빠져있는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그림책 중에는 초등학생들의 발달을 도울 수 있는 책들도 많이 있다. 좋은 그림책을 아이들에게도 권하고 어른들도 함께 읽어 보자. 새로운 삶의 기쁨과 지식까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인·동래초등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