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4 소총 무장한채 복면 쓴 남성
- TV 향해 난사 후 휘발유 붓고 불
- 54명 부상·한국인 5명은 경상

- 범인, 25억 칩 훔쳐 달아났지만
- 호텔서 자살 추정 숨진채 발견
- IS 배후 자처…경찰, 강도에 무게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 리조트에서 총격과 방화 사건이 발생해 한국인 1명 등 최소 37명이 사망했다.

	2일 필리핀 마닐라의 '리조트 월드 마닐라' 카지노에서 일어난 총격·방화 사건으로 딸을 잃은 한 가족이 울부짖고 있다. AP 연합뉴스

필리핀 경찰은 2일 수도 마닐라 외곽 국제공항 맞은편 '리조트 월드 마닐라'(RWM)에서 발생한 총격·방화 사건으로 범인 1명을 포함해 37명이 사망하고 54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사망자들은 건물이 화염과 연기에 휩싸이자 대피하다가 질식사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은 한국인 피해 현황을 파악한 결과 40대 중후반의 한국인 남성 1명이 숨지고 5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숨진 한국인은 총격 사건이 일어난 RWM에서 대피해 휴식을 취하던 중 숨졌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추정된다. 다른 한국인 5명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대피 과정에서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나 안정적인 상태라고 한국대사관은 전했다.

	필리핀 경찰이 이날 공개한 CCTV 화면 속의 총격·방화 사건 용의자. AP 연합뉴스

이날 사건은 자정을 막 넘긴 시간 RWM의 카지노에 총을 든 한 남성이 들이닥치면서 시작됐다.

필리핀 경찰에 따르면 괴한이 2층에 차를 주차하고 곧바로 근처 카지노로 들어갔다. 복면하고 M4 소총으로 무장한 이 남성은 카지노의 대형 TV 스크린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테이블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갑작스러운 총성에 카지노는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게임에 열중하던 고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라는 외침도 나오면서 공포감이 증폭했다. 카지노와 그 주변, 그 위층으로 자욱한 연기가 펴졌고 대피 과정에서 36명이 질식사했다.

건물 외벽의 유리창은 깨지고 창틀은 열기에 의한 듯 휘어졌으며 그 사이로 이날 오전까지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모습이 목격됐다.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은 브리핑을 통해 범인은 물품 창고에서 1억1300만 페소(약 25억5000만 원)어치의 카지노 칩을 챙겨 달아났다고 밝혔다. 범인은 얼마 뒤 이 카지노의 호텔 방에서 침대에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RWM은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진 대규모 리조트다. RWM은 필리핀에서 최초이자 가장 큰 복합리조트로 카지노를 비롯한 각종 유흥, 쇼핑, 호텔 시설을 한 번에 이용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이곳은 4개의 고급 호텔과 고급 브랜드 매장, 컨벤션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이런 곳에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괴한에 의한 총격 사건이 발생하자 민간인을 겨냥한 테러, 즉 '소프트 타격' 공격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앞서 테러 감시단체 시테(SITE)는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배후를 자처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가 남부 민다나오 섬에 계엄령을 발동, IS 추종 반군과 교전을 벌이는 상황을 고려할 때 IS의 보복 테러가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의 사실관계를 볼 때 강도 행각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 같은 주장을 부정했다. 델라로사 청장은 CCTV를 통해 이 남성이 사람에게 총을 겨누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며 테러로 볼 증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범인이 사람을 해치지 않고 카지노 테이블에 불을 지른 뒤 카지노 칩이 저장된 방으로 들어가 수백만 달러어치의 칩을 훔친 점을 들었다.

그렇지만 IS가 필리핀에서 세력 확장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져 긴장을 늦추기는 어려운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