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치러진 터키 지방선거에서 온갖 악재에도 집권 정의개발당이 압도적 우세를 보여 승리했다. '부패 스캔들의 주역'인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아들 빌랄 그리고 딸 수메이예(왼쪽부터)가 당사 발코니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터키 지방선거에서 '부패 스캔들'과 감청 파일 폭로, 트위터·유튜브 차단 등의 악재에도 집권당의 압승이 예상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대권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

터키 반관영 아나돌루통신의 집계에 따르면 31일 오전 10시(현지시간) 개표율 98% 상황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은 전국 득표율 45.6%를 기록해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27.9%를 크게 앞서고 있다. 이는 정의개발당이 목표로 제시한 2009년 지방선거 득표율(38.8%)을 크게 웃돌고,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2011년 총선(49.8%) 수준에 근접한 것이다.

에르도안 총리가 이끄는 정의개발당은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과 수도 앙카라에서도 공화인민당 후보와 5% 포인트 이상 격차를 벌리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터키 정계에는 '이스탄불에서 이기면 터키에서 승리하고 앙카라에서 패배하면 터키에서 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국 득표율은 물론 두 도시의 결과가 승패의 가늠자로 여겨진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여름 전국적 반정부 시위에 이어 최근 에르도안 총리가 직접 연루된 부패 스캔들이 한창인 가운데 실시돼 자연스레 에르도안에 대한 신임 투표의 성격을 띠었다. 11년간 통치한 에르도안 총리는 최근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정계에서 은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에르도안 총리가 자신과 측근들의 비리와 언론탄압 등을 폭로하는 감청자료가 연일 유출되자 선거 직전 트위터와 유튜브 접속을 차단하는 강수를 두면서 정권 심판론도 고조됐다. 하지만 야당들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채 자멸하면서 에르도안 총리가 어부지리를 얻는 결과가 연출됐다.

이번 승리로 에르도안 총리는 오래전부터 구상한 대선 출마를 실행에 옮길 동력을 얻게 됐다.

정계에서는 총리직을 3연임한 에르도안 총리가 8월 대선 전에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한 후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 도전할것으로 보고 있다. 터키는 2012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권한도 과거보다 강화했지만 총리가 모든 행정에 관한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국회에 책임을 지는 내각책임제다.

에르도안으로서는 헌법 개정을 통해 더욱 강화된 위상의 대통령으로 자리 이동을 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는 2001년 정의개발당을 창당하면서 의원직 연임을 3회로 제한하는 당규를 제정했기 때문에 총리 4연임을 위한 총선 출마의 길이 막혀 있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비리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에르도안이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당규를 바꿔 총리 4연임을 시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번 지방선거 승리로 대선 출마로 마음을 굳힐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계 관계자는 "지방선거 득표율이 예상보다 훨씬 높게 나와 에르도안 총리가 다시 대권에 도전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스탄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