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게네콘' 사건 선고 공판이 열린 5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외곽 실리브리 교도소 밖에서 경찰들이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있다. AP 연합뉴스

- 세속주의 표방 야당들 "증거 조작"
- 전국서 반정부 시위 재발 조짐

피고인 275명, 수사·재판기간 5년, 증인 130명, 관련 문서 3만9000쪽….

터키 사상 최대 쿠데타 모의 사건인 '에르게네콘'(Ergenekon) 재판이 5일(현지시간) 마무리됐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5년 만이다. 세속주의 세력은 자신들에 대한 집권당의 탄압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서 수그러들었던 반정부 시위가 재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스탄불 제13 형사법원은 이날 '에르게네콘' 사건 선고공판에서 일케르 바시부 전 터키군 총사령부 사령관 등 17명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것을 비롯해 피고인 275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에르게네콘'은 터키인의 조상인 돌궐인이 근원지로 삼고 세력을 길렀다는 중앙아시아 내 전설의 장소를 지칭한다.

'에르게네콘' 사건의 발단은 2007년 이스탄불의 한 주택에서 수류탄 27발이 발견된 것이다. 이듬해 검찰이 쿠데타 모의 혐의로 86명을 구속하면서 군장성과 정당인, 언론인, 학자, 변호사 등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었다. 검찰은 '에르게네콘' 연루자들에게 정부요인 암살 등 정치적 혼란을 일으켜 군부가 개입하도록 함으로써 정의개발당 정권을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피고인들의 상당수가 거물급이다. 지난해 1월 구속된 바시부 전 사령관이 대표적이다. 육해공군과 치안군(잔다르마)을 관장하는 총사령부 수장이 구속된 것은 터키 역사상 처음이다.

세속주의를 표방하는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아드난 케스킨 부대표는 선고 공판 직후 "이번 판결은 사실상 증거를 조작한 기소장에 의존한 것"이라며 "우리당 의원들에게 선고된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민족주의행동당(MHP)도 "정부가 에르게네콘 사건을 야당과 정부 반대 진영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찰과 치안군은 이날 법원으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민간인 출입을 통제했으나, 법원 인근에서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져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서 충돌을 빚었다.

수도 앙카라에서도 터키의 '국부'인 아타 튀르크의 건국이념인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지지하는 시민 수백 명이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우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 튀르크의 군인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는 지난 5월 말부터 3주 이상 터키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의 대표적 구호 가운데 하나다.

반정부 시위는 정부의 강경 대응과 주도 세력의 부재 등으로 지난 6월 말부터 사실상 끝났으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터키 정계 소식통은 "현 정권의 이슬람 성향의 정책 강화에 세속주의 지지자들이 반발한 것이 시위 계기 가운데 하나였던 만큼 이번 판결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라마단이 끝나고 대학 개강과 프로축구리그 개막 등이 예정된 다음 달에 시위가 다시 발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