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최말자(79) 씨의 재심 공판에서 검찰이 최 씨에게 사과하고 무죄를 구형했다.

23일 부산지법 형사5부 심리로 열린 재심 사건에서 최말자 씨가 공판기일 종료 후 재판정을 나서며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신심범 기자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23일 최 씨의 중상해 혐의 재심 사건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최 씨는 19세였던 1964년 5월 6일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당시 21세) 씨에게 저항하고자 그의 혀를 깨물어 1.5㎝ 자른 혐의를 받았다.

이날 검찰은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1965년 1월 12일 피고인(최 씨)이 법정에서 중상해죄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으나 60여 년의 긴 세월이 지난 오늘 법정에서 재심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심 개시 결정의 취지에 따라 검찰은 사실관계부터 판단에 이르기까지 치우침 없이 재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당시 19세였던 최 씨는 생면부지 남성 노모 씨로부터 인적이 없는 집에서 갑자기 성폭행 범죄를 당하게 됐고, 이에 대한 방어 행위로 부지불식 간에 혀를 깨물게 됐음을 확인했다”며 “현저한 침해에 대한 방어 행위에 소극적으로만 저항할 것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점, 근래에 발생한 유사 사안들이 불기소되거나 무죄로 선고되고 있다는 점 등을 검토,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로서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어떤 시대에도 형사사법의 역할은 개인에게 부당하게 가해지는 차별적 편견을 걷어내고 오로지 법률적으로 마땅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특히 검찰의 역할은 범죄 피해자를 범죄 사실 그 자체로부터는 물론이고 사회적 편견으로부터도 보호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이 사건에서 검찰은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작동했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도움을 받아야 했음에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줬다”며 최 씨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최 씨는 최후진술에서 “국가는 1964년 생사를 넘나든 악마같은 그날의 사건을 어떠한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 피해자 가족들의 피를 토할 고통에 대한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꼭 부탁하고 싶다”며 “희망과 꿈이 있다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이 만들어 달라고 두 손 모아 빌겠다”고 전했다.

검찰이 무죄를 구형하면서 최 씨는 향후 선고기일에 사실상 무죄를 선고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오전 부산지법 앞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 씨는 “저를 위해 모여주신 여러분들께 머리숙여 고맙다고 인사드린다”고 밝혔다. 재판이 끝난 뒤 최 씨는 기자들과 만나 “제가 이겼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고, 분명히 제 귀로 (무죄 구형을) 들었다. 감사하다”며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니까, 대한민국 정의는 살아있다”고 말했다.

23일 최말자 씨가 재심 사건 공판기일 뒤 부산법원종합청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심범 기자

1965년 부산지법은 6개월간 옥살이를 한 최 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노 씨는 최 씨보다 더 가벼운 판결을 받았다. 강간 미수가 아닌 특수 주거침입·특수협박죄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이 나왔다. 노 씨는 사망한 상태로 추정된다. 최 씨 사건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지목돼왔다.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