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툭하면 발길질, 죽으면 암매장…60년 전 ‘악몽’ 베일 벗는다

영화숙·재생원 직권조사 의미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3-08-23 19:49:26
  •  |   본지 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1951년 설립된 ‘국가폭력 공간’
- 피해자들 아픈 기억으로만 남아
- 생존자 모임 손석주 대표 결심에
- 하나 둘 뜻 모아 진상규명 첫발

- 입소 입증할 기록카드 못 찾고
- 원장 일가 자료도 일부만 남아
- 어려운 상황에도 명예회복 확신
- “인간 이하 삶 산 이들 한 풀 것”

부산 영화숙·재생원은 정부와 부산시 등 국가기관이 힘없고 가난한 이들을 거리에서 ‘정화’하겠다는 명목으로 저지른 국가폭력의 공간이었다. 관과 결탁해 민간이 마구잡이로 수용인을 늘려 보조금을 타내는 ‘부랑인 비즈니스’의 현장이기도 했다. 수용인의 삶은 폭력과 강제노역, 학대와 빈곤으로 점철돼야 했다. 이제는 집단수용시설 인권유린의 기원으로 평가받지만, 불과 지난해까지 피해자 개인들의 ‘아픈 기억’으로만 오랜 세월 머물렀다.

진상규명 움직임이 생겨난 뒤엔 어려 의문이 따라붙었다. 50년 이상 지난 세월, 흔적도 찾기 힘든 당시 기록 등의 사정으로 ‘이제와서 진상규명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가 주변을 맴돌았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국가기관의 직권조사 대상, 즉 국가가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써야 할 일이 된 배경에는 “분명히 있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인정받고 싶다”는 피해생존자들의 간절한 염원이 있었다.
지난 1월 3일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들이 부산시청 앞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국제신문DB
■집단수용시설 ‘영화숙·재생원’

영화숙은 1951년 3월 서구 동대신동에서 처음 출범했다. 재단법인 설립 인가는 1953년 3월로, 당시는 아동 약 50명을 수용하는 작은 시설이었다. 1961년 이순영 원장이 취임하면서 일가가 법인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듬해엔 사하구(당시 서구) 장림동으로 시설을 옮기면서 수용 규모를 늘렸다. 1962년 부산시가 성인 부랑인을 수용하기 위해 영화숙 근처에 조성한 ‘재생원’의 수용 업무를 위탁받았다. 1968년 1월 ‘부산시재생원설치조례’가 제정되면서 명확한 지원 근거까지 확보, 시와의 공식 위탁 계약도 체결됐다. 이로써 재단은 영화숙에 부랑아 400여 명, 재생원에 부랑인 800여 명을 수용하는 지역 최대 집단수용시설의 운영자로 성장했다.

두 시설은 시 보조금과 민간 구호단체의 지원금으로 운영됐다. 고아 1인당 쌀보리 2홉 반과 부식비 10원, 걸인·행려자 한 명당 수용비 58원을 받았다. 이 원장은 구호물품은 국제시장 등에 되팔았고, 보조금 또한 대지 2만여 평과 임야 6500여 평을 사는 데 쓰였다. 1970년 이 원장은 12년간 국고보조금과 구호단체 물품을 횡령한 혐의로 시 공무원 4명과 함께 구속됐다가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되기도 했다.

붙잡혀 온 아동에게 가해진 학대는 심각했다. 아침마다 제식훈련을 받았고, 동작이 틀리면 발길질을 당했다. 끼니는 꽁보리밥이나 강냉이죽이 전부였던 터라, “풀이란 풀은 다 뜯어먹었다”(진순애 씨)거나 “쥐를 고기 삼아 먹거나 시설 내 농장의 소·돼지에게 주는 여물을 훔쳐 먹는”(유옥수 씨) 지경이었다. 맞아 죽거나 병들어 목숨을 잃는 아이들은 “소나무를 뽑아 생긴 구덩이에 파묻었다”(장병문 씨)고 한다.

재단은 미국인 소 알로이시오 신부에 의해 아동 학대 사실을 폭로당했다. 소 신부는 1969년부터 영화숙·재생원의 비위와 아동학대 사실을 수집해 시와 중앙정부에 보냈다. 영화숙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서명운동도 진행했다. 결국 시는 영화숙·재생원 수용자 600여 명을 소년의집·칠성원·형제육아원 등 다른 시설로 옮기는 한편 재생원 위탁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보건사회부는 1976년 1월 재단의 설립 인가를 취소했다.

■오랜 세월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

1971년 영화숙에서 소년의집으로 전원된 수용인의 아동카드.
영화숙·재생원에서의 비참한 삶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영화숙·재생원의 후신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국가와 부산시의 사과를 받았다. 경기지역의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인 선감학원 사건 또한 진상조사 등이 진행돼왔다. 부산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 협의회 손석주(60) 대표가 자신이 겪은 인간이하의 삶을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경남 양산에서 배달부로 일하는 그는 자신의 생계 시간을 줄여가면서까지 두 시설에서의 일을 알리는 데 주력해왔다. 지난해 10월 국제신문과 만난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해온 아픔을 마침내 털어놓은 뒤 “형제복지원 등이 전부가 아니다. 분명히 있었던 일을, 있었던 일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손 대표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공유되면서 피해생존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같은 아픔을 겪은 형(유 씨)으로서 동생(손 씨)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열린 저녁 자리는 머잖아 진상규명을 위해 앞장서는 협의회로 확대됐다. 지난해 12월 21일 처음 발족한 협의회는 이듬해 1월 3일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앞으로 이뤄질 조사도 쉽지만은 않다. 영화숙·재생원 입소 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해 줄 아동기록카드 등은 현재도 발견되지 않았다. 소년의집 등 타 시설로 전원될 때 해당 시설이 작성한 간접 기록만이 확보됐다. 원장 일가에 대한 기록, 시설 운영 상황에 대한 자료 또한 시 기록관이나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등에 파편적으로 남아 있다. 피해생존자의 입소 사실 입증과 별개로, 당시 피해가 발생한 제도적 요인을 확인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마침내는 진실에 빛이 드리울 거라고 피해생존자들은 확신한다. 손 대표는 “부산시와 당시 서구가 주고 받은 공문에서 영화숙에 입소 중이던 아동의 명단이 발견(국제신문 지난해 12월 5일 자 1면 등 보도)됐듯, 참혹했던 당시의 기록이 분명 있을 거라 믿는다. 이번 직권조사를 통해 단지 옷이 남루하다거나, 꼴이 못 났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가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의 한이 풀릴 것이다”고 기대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함안 새차 ‘급발진’ 의심 사고…국과수 “가속 페달 작동 가능성”
  2. 2태권도장서 5세 아동 심정지, 관장 긴급체포…CCTV 삭제 정황
  3. 3허경영 ‘신도 성추행 의혹’ 경찰 조사…“돈 뜯어내려는 것” 혐의 부인
  4. 41128회 로또 복권 1등 63명…당첨금 각 4억 1992만 원씩
  5. 5해운대서 벤츠 전복…운전자 택시 타고 달아나
  6. 6일론 머스크, 트럼프에 거액 정치 자금 기부
  7. 7대한축구협회, 이사회 승인으로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공식 선임
  8. 813일, 오늘 오후부터 모레까지 장맛비.. 경남남해안 중심 강하고 많은 비
  9. 9현대차 올 임금협상 완전 타결
  10. 10'전 양산시 의원의 성추행 논란 의식했나' 양산시의회 의원 징계요건 대폭 강화
  1. 1곽규택 의원-보좌관 협업으로 에어부산 분리매각 연일 목청
  2. 2“野가 여론 왜곡”vs“尹부부가 배후”…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 무혐의 공방
  3. 3이번엔 사천 의혹 등 ‘거짓말’ 충돌…극한 치닫는 원-한 갈등(종합)
  4. 4尹, 기시다와 정상회담 “북러 밀착, 글로벌 안보 심각한 우려”
  5. 5野 ‘노란봉투법·구하라법’ 등 당론 채택
  6. 6[뭐라노-이거아나] 필리버스터
  7. 7與 ‘尹탄핵 청문’ 권한쟁의심판 예고…野 “반대 청문도 환영”
  8. 8국힘 당권주자들 한목소리로 부산 발전 약속
  9. 9‘임성근 구명 로비’ 녹취록 파장…野 “尹 국정농단” 與 “李 방탄용”
  10. 10동북아물류플랫폼 등 부산 4대 사업 GB해제총량 예외 인정 받을까
  1. 11128회 로또 복권 1등 63명…당첨금 각 4억 1992만 원씩
  2. 2'나홀로 자영업자' 지난달 13만명↓…8년 8개월來 최대 감소
  3. 3유류세 인상에 기름값 지속 상승…휘발유 ℓ당 1700원 돌파
  4. 4새 폼팩터 UMPC 시장 후끈…'3040 키덜트' 설렌다
  5. 5부산 재건축 최대어 어디로…망미주공 ‘4파전 ’
  6. 6가덕신공항 공사 ‘공동도급 2→3社’ 입찰 조건 완화
  7. 7유커 감소·고환율에 직원·급여 줄이며 마른 수건 짜내기
  8. 8진해신항 컨부두 3번째 유찰…메가포트 차질 우려
  9. 9더위보다 뜨거운, 유통가 초복 마케팅
  10. 10CU, 초대형 아이스 아메리카노 출시
  1. 1함안 새차 ‘급발진’ 의심 사고…국과수 “가속 페달 작동 가능성”
  2. 2태권도장서 5세 아동 심정지, 관장 긴급체포…CCTV 삭제 정황
  3. 3허경영 ‘신도 성추행 의혹’ 경찰 조사…“돈 뜯어내려는 것” 혐의 부인
  4. 4해운대서 벤츠 전복…운전자 택시 타고 달아나
  5. 513일, 오늘 오후부터 모레까지 장맛비.. 경남남해안 중심 강하고 많은 비
  6. 6현대차 올 임금협상 완전 타결
  7. 7'전 양산시 의원의 성추행 논란 의식했나' 양산시의회 의원 징계요건 대폭 강화
  8. 8폭염엔 물, 그늘, 휴식 그리고 폭염 영향예보 서비스
  9. 9김해 도심 피서지, 대청계곡에 '여름 상황실'
  10. 10마린시티 길이 500m 수중 방파제 세운다…8년 논란 종지부
  1. 1대한축구협회, 이사회 승인으로 홍명보 국가대표팀 감독 공식 선임
  2. 2해동고 40년 만에 ‘금빛 메치기’
  3. 3음주운전 빙속 김민석, 헝가리 귀화
  4. 4고별전도 못한 홍명보 감독
  5. 5반즈 화려한 귀환…박세웅 제 몫 땐 ‘7치올(7월에 치고 올라간다)’
  6. 6잉글랜드 2회 연속 결승행…스페인과 빅매치
  7. 7‘메시 氣’ 받은 야말, 유로 최연소 골…스페인 결승행 견인
  8. 8부산고·경남고 ‘외나무 다리’서 만난다
  9. 9베테랑 투수 의존 과한 롯데…젊은 선수들 분발해야
  10. 10사격 17세 반효진, 43세 이보나…파리행 태극전사 최연소·최고령
해피-업 희망 프로젝트
남자 성인과 대인관계 어려워, 심리치료 절실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韓아나운서클럽 이계진 회장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