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A 입시학원은 지난해부터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대 입시반을 운영하고 있다. 2021년 지역 의과대학 정원의 40%를 지역출신 고교 졸업생을 선발토록 하는 ‘의무 할당제’ 발표 이후 학부모의 요구가 컸기 때문이다. 학원 관계자는 “의대 지역 할당제가 도입되면서 학부모의 관심과 수요가 크게 늘었다”며 “학원가에서 초등생부터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것이 낯선 풍경은 아니다”고 말했다. 의대 전문반을 운영 중인 동래구의 한 재수학원 관계자는 “경기침체 등 취업이 어려워지니 재수생 뿐만 아니라 재학생의 의대 지망 자체가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의대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대학 입학 후 소위 반수를 하면서 의대에 재도전하거나, 직장인이 회사를 관두고 의대 입시에 뛰어드는 것은 보편적인 모습이다. 도 넘은 의대 일극화 양상에 가뜩이나 우수 인재 수급에 애를 먹는 이공계 이탈 가속화와 ‘수험 낭인’ 양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이 막대하다는 지적이다.

수영구의 중학생 학부모 B 씨는 한 입시학원을 찾았다가 등록을 포기했다. B 씨는 “학원이 의대 진학을 목표로 삼고 초등학생 때 고교 수학과정을 시작하고, 중학생 때는 고 3 과정을 끝낸 후 반복을 거듭한다고 했다”며 “중학생인데도 고교 수학 선행이 전혀 안 돼 있는 우리 아이는 맞지 않다고 하더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부모 C 씨는 “고등학생 아이가 수업 시간 중 희망직업을 묻는 선생님 질문에 반 학생의 80% 이상이 ‘의사’라고 했다”며 “요즘 대학 순위는 전국 의대 다음 서울대라고 할 만큼, ‘의대공화국’에 사는 것 같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이 부산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고등학교 관계자는 “따로 의대진학반을 운영하진 않지만 목표로 하는 학생이 많은 편이라 동아리 활동도 적극적인 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학교에서 올해 의·치·한·약대에 합격한 학생은 현재까지 64명으로 집계됐다.

극심한 의대 편향은 직업적 안정성은 물론 높은 소득과 사회적 평판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고용정보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2020 한국 직업 정보 보고서’를 보면 국내 소득 상위 10개 직업은 기업 고위임원(8위)을 제외하고 비뇨기과·정신과·안과의사 등 모두 의사가 차지했다. 20대 후반 D 씨는 서울대 이공계열을 졸업하고 공기업에 취업했다가 퇴사해 의대 진학을 준비 중이다. 그는 “좋은 직장에 갔지만 장기적으로 의사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 부모님도 적극 찬성하신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한 학원가 모습. 국제신문DB

지나친 쏠림에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부산대 기계공학부 전충환 교수는 “우리 대학을 비롯해 포스텍이나 유니스트 등을 졸업한 우수 학생들이 의학전문대학원 등으로 빠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역은 수도권 쏠림 현상까지 겹쳐 인재 유출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산업 비중이 커서 연구개발 역량을 가진 우수한 전문인력의 수요가 많은데 갈수록 좋은 인재 유입이 줄어들어 아쉽다”고 말했다.

의대 입시에 올인하면서 ‘수험 낭인’ 배출 등 막대한 사회적 비용도 발생하고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지역할당제가 도입됐지만 의대 정원이 늘지 않는 이상 입학은 바늘 구멍인데도, 모두 한 곳만 바라보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