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가경의 부산 사람 인생사 <5> 내가 이병추다!

봉제공장 허드렛일, 동남아서 15년…이유있는 ‘금손’ 수선집 아저씨

  • 김가경 소설가
  •  |   입력 : 2021-08-12 19:12:54
  •  |   본지 1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제대 후 부산 봉제공장 근무
- 옷 짓는 기술 열정으로 배워
- 서울 올라가 공장 운영하기도

- 자체 브랜드 생산 도전했지만
- IMF때 내수시장 어려워 부도
- 미얀마 의류공장 기술자로 파견

- 한국 돌아와 1년 전 수선집 열어
- “옷 짓는 것은 종합예술이더라
- 고친 옷도 손님 마음 들게 노력”

양복 상의를 수선할 일이 생겨 수선 가게에 갔다. 아들이 군대에서 어깨를 키워 와 옷이 살짝 작아서였다. 양복을 받아 살피던 사장님이 시접이 얼마 없다고 난감해하시더니 일단 두고 가라고 했다. 본사는 물론 몇 군데 수선집에서도 포기한 터였다. 며칠 뒤 찾은 옷은 수선한 흔적 하나 없이 아들 몸에 딱 맞았다. 대만족이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들고 다시 사장님을 찾아갔다. 수선보다 사장님 이력이 궁금해서였다. 이병추(62·부산 남구 대연동) 사장님은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다.
수선인 이병추 씨가 작업 공간에서 고객이 맡긴 옷을 가꾸며 다듬고 있다. 그는 손님의 옷에 새 기운을 불어넣는 일에서 ‘예술’을 본다.
“미얀마에서 의류공장에 15년 있다가 작년 초에 들어왔어요. 어머니도 편찮으시고 이번에 안 나오면 불효겠다 싶어서요.”

부지런한 근성이 있어 주변 만류에도 수선집을 연지 1년. 그사이 멀리서도 찾아오는 손님이 생겼다고 한다. 한창 입소문을 타는 중인 것 같았다. 86년에 제대하고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어 들어간 곳이 부산 해운대구 반송에 있는 봉제공장이었다. “3개월쯤 허드렛일을 하는데 개발실 민 실장님이 저를 부르더라고요. 제 인생에 참 고마운 분인데,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같이 일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외주 물량을 받아 와서 첫 패턴을 만드는 곳이 개발실이었다. 대개 현장 경험을 5, 6년 한 사람이 가는 자리인데 그가 가게 된 것이다. “좀 지나니까 패턴은 제법 그리겠더라고요. 실장님이 워낙 꼼꼼하게 가르쳐주시고. 그런데 사람들 하는 말이 봉제를 알아야 패턴을 잘 뜰 수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이 귀에 들어와 그가 자원해서 간 곳은 샘플실이었다. 샘플실은 패턴을 참고하여 바이어가 원하는 대로 원단과 부자재를 써서 샘플 옷을 완성하는 부서였다. 월급이 개발실의 반도 안 되는 자리였다. “다들 미쳤다고 했어요. 가위질에 뒤치다꺼리하며 6개월을 하고 나니, 이 길로 간다! 확신이 서더라고요.”

■ 시접이 비법, 열정이 비결

그가 샘플실에서 터득한 비법은 바느질 밥, 즉 시접에 있었다. 패턴이 좋아야 샘플이 예쁘게 나오고 샘플이 예쁘게 나오려면 원단은 물론 옷 스타일에 따라 적절한 시접을 줘야 한다는 것. 그걸 알고 패턴을 그리니까 샘플 핏이 달라지더라고 했다. 그의 열정은 바느질을 직접 하는 봉제라인으로 이어졌다. 알았으니 확인을 해야 했던 것이다. 점심시간에 좋아하는 축구까지 접어가며 봉제실로 몰래 들어가 빈자리에 앉아 시접은 물론 소매, 깃, 지퍼, 단추 다는 바느질 방법을 두루 익혔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전체가 어우러져야 된다는 거였다. 이른바 종합예술이라고 했다.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다 보면 이야기는 나오는데 해보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이론은 다 아는데.”

재미도 있었지만 그를 믿어준 주변 사람들이 있어서 힘 드는 줄도 모르고 일을 찾아서 했다고 한다. 일을 얼추 다 배웠을 때 그를 이끌어주었던 민 실장님이 다른 봉제공장을 소개해 자리를 옮겼다. 어딜 가든 그분한테 일을 배웠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서울에서 조그맣게 봉제공장을 직접 하게 됐는데 자리 잡기 힘들었어요. 텃세도 심하고. 그때마다 속으로 내가 이병추다! 하고 헤쳐나갔지요.”

■ 고마웠던 일본인 바이어

지금도 기억에 남는 바이어가 한 분 있다고 한다. “그때 중국으로 봉제공장이 많이 옮겨 가고 내수도 내리막이었어요. 아는 분이 일본 사람을 소개해주더라고요. 허름한 옷을 입은 60대 노인이었는데 통역사 한 명하고 같이 와서 시장에 뭐 살 게 있다고 안내 좀 해달라고해서 하루 종일 따라다녔지요. 가는 곳마다 옷을 사기에 조언도 해주고 했는데.”

시장에서 산 옷 견적을 내달라고 해서 내준 게 인연이 되어 일본 대형 백화점에 납품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분 덕에 자리를 잡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그 분이 늘 선물을 사서 한국에 오셨는데 2년째 안 오시더라고요. 이상하다 했는데 나중에 통역사가 찾아와 부도가 났다고 일본에 들어가 보라고 해서 갔어요.”

통역사가 그를 데리고 간 곳은 그분의 창고였다. 99㎡쯤 되는 창고에 이병추 사장이 보낸 옷과 팔다 남은 옷들이 박스째 쌓여 있었다. 그걸 한국으로 가져가서 수단껏 팔아 돈을 마련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밤새 잠을 설치며 생각해봤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다음날 그분을 만나서 이거 가지고 여기서 파세요. 여기서 움직일 수 있는 교통비라도 만들어 쓰시고, 일어서세요. 힘들 때 한국에 오시면 제가 광어회 사드리겠습니다.” 그때 그가 포기한 돈이 엔화로 50만 엔이었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내가 이 사람이랑 앞으로 못 보게 된다는 게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그분도 양심껏 나를 대해줬는데.”

한국에 오니 당장 공장 돌릴 물량도 없고 하청 업체와 부자재 업체에 대금을 지불하지 못해 부도가 나고 말았다. 이후 부산으로 다시 와 교복에 손을 댔지만, 기성품이 나와 접었고 자체 브랜드를 생산했지만 워낙 내수 시장이 좋지 않아 부도가 나고 말았다.

“1년을, 아침에 눈 뜨면 나도 모르게 소주 2병에 오징어 한 마리 들고 용호동 선착장으로 갔어요. 그때 집사람이랑 애들이 고생 많았어요. 형제들이랑 사이도 안 좋아지고. 안 됐던지 축구도 같이하고 했던 친한 형들이 돈을 얼마 마련해 주더라고요. 진 빚도 있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진짜 고맙기도 해 내뱉은 말이 다음과 같았다.

“헹님들! 내 이병추다! 내 안 죽는다.”

■ 옷을 가꾸는 그 자부심

그렇게 힘을 얻어 다시 공장을 시작했는데 IMF가 터져 또 주저앉고 말았다. 지금 코로나 시국보다 더 힘든 시기였고 열심히 하려고 해도 할 게 없었다. 그때 봉제 전체 공정을 아는 기술자가 필요하다 해서 간 곳이 미얀마였다. 파견된 기술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자꾸 그만뒀는데 처음에는 습하고 더운 기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도 못 견뎌 한국 돌아가겠다고 하니 갑자기 베트남에 있는 호찌민 공장에 비상이 걸렸다고 거기만 갔다 오라는 거예요. 그 당시 한국에 비해 동남아 봉제 기술이 많이 부족했어요.”

가보니 샘플 오더가 잘못돼 눈에 보이는 대로 수습했다. 그다음은 하노이 그다음은 다른 공장. 다녀보니 모두 비슷한 문제였다. 패턴이 잘못되면 제대로 고치고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걸 해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이 문제 해결을 못 해 지쳐 돌아간 거였다.

“여러 공장을 다니며 해결하다 보니 기후 문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일이 눈에 보이는데 그냥 두고 못 가겠더라고요.”

그 세월이 15년이었다. 이제 돌아와 재봉틀 앞에 다시 앉은 그는 수선이 수선이지, 무시하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더 최선을 다하려 한다고 했다. “이 근처에 수선집이 없어요. 예쁘게 해주세요, 편하게 해주세요, 하면 힘닿는 대로 그렇게 해주려고 노력합니다. 딱 마음에 들어요, 하면 기분 좋고 학생들 오면 좀 싸게 해주고.”

손님들 마음까지 익히고 있으니 이제 그를 진정한 종합예술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시민기자·소설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텐퍼센트’도 뽑혔다…부산 미래 이끌 서비스 강소기업 10곳
  2. 2“폐업할 돈 없어 적자에도 문 연다” 좀비가 된 자영업자들
  3. 3해운대구 좌동 그린시티 ‘노후계획도시 선도지구’ 될 수 있다
  4. 4대연터널 ‘꾀·끼·깡·꼴·끈’ 황당 문구…전국적 조롱거리(종합)
  5. 5연산교차로 명소화 120억 등 대형사업 돈 어디서 구하나
  6. 6‘친문’주류 부산 민주당 지역위원장직에 ‘친명’ 도전장
  7. 7포스코 부산대 지고 서울대 뜨고
  8. 8수산대 졸업한 사천 청년, 팔라우 국가 경제 초석 다지다
  9. 9HJ重, 친환경 컨선 2척 동시명명식…상선 기술력 입증
  10. 10오스만 말기 술탄과 열강 개입…고종 닮은꼴?
  1. 1‘친문’주류 부산 민주당 지역위원장직에 ‘친명’ 도전장
  2. 2노무현 서거 15주기…여야 인사 봉하 집결
  3. 3한·일·중 정상회의 4년 5개월 만에 개최…26, 27일 서울서(종합)
  4. 422대 국회,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국조할까
  5. 5조국혁신당 조직 재정비…‘당원 늘리기’ 초점
  6. 6[속보]한중일 정상회의 4년5개월 만에 26일 서울에서 개최
  7. 7尹, 채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정국 급랭
  8. 8親文, '노무현 추도식' 앞두고 회고록 논란에 뒤숭숭
  9. 9與 중진 긴급소집 “특검법 부결이 당론” 본회의 총동원령
  10. 10총선 당선인 1인당 평균재산 33억여 원
  1. 1‘텐퍼센트’도 뽑혔다…부산 미래 이끌 서비스 강소기업 10곳
  2. 2“폐업할 돈 없어 적자에도 문 연다” 좀비가 된 자영업자들
  3. 3포스코 부산대 지고 서울대 뜨고
  4. 4HJ重, 친환경 컨선 2척 동시명명식…상선 기술력 입증
  5. 5대한항공 부산 테크센터, 공군 공중급유기 첫 창정비
  6. 6고물가, 집값 하락…부산 가계소비 회복세 둔화될 듯
  7. 7빚더미 앉은 부산 소상공인들…신보 올해만 697억 대신 갚아
  8. 8때 이른 더위에…유통·호텔가 ‘쿨 마케팅’
  9. 9최금식 선보공업 회장, 금탑산업훈장 받아
  10. 10기준금리 3.5% 동결
  1. 1해운대구 좌동 그린시티 ‘노후계획도시 선도지구’ 될 수 있다
  2. 2대연터널 ‘꾀·끼·깡·꼴·끈’ 황당 문구…전국적 조롱거리(종합)
  3. 3연산교차로 명소화 120억 등 대형사업 돈 어디서 구하나
  4. 4부산 시내버스 음주 운전, 승객 신고에 덜미
  5. 5김호중,영장심사 연기 신청…법원 기각
  6. 6'출소 3년 만에 또'…내연녀 남편 살해한 50대 항소심서도 무기징역
  7. 7“이혼한 뒤에라도 혼인무효 가능” 대법 40년 만에 판례 뒤집었다
  8. 8경찰 정차 요구도 무시하고 13km 음주 운전한 부산국토청 공무원
  9. 9경영권 다툼 일동건설 사주 일가 불법 로비도 들통
  10. 10부산시, 유엔투어리즘과 협업…글로벌 허브도시 기반 다진다
  1. 1롯데 ‘안방마님’ 장타력이 살아난다
  2. 2통영동원로얄컨트리클럽- 순금 상패·현금 등 홀인원 이벤트…사계절 라운딩의 재미 배가
  3. 3낙동중 2년 만에 소년체전 부산대표로
  4. 4흙신 나달 롤랑가로스서 ‘유종의 미’
  5. 5레버쿠젠 불패행진 저지한 아탈란타
  6. 6실외 골프연습장 파디글스- 첨단장비와 엄격한 시설 관리…150야드 비거리에 벙커연습장도
  7. 7양산동원로얄컨트리클럽- 우람한 산세·부드러운 코스의 조화…그린 넓어 ‘백돌이’도 OK
  8. 8부산컨트리클럽- 울창한 수목으로 홀마다 색다른 분위기…회원 1060명 명문클럽
  9. 9기장동원로얄컨트리클럽- 개성 있는 9홀서 다이내믹 플레이…새벽부터 밤까지 나이스 샷
  10. 10목포 소년체전 25일 팡파르…부산 금 20개 안팎 목표
우리은행
우리의 노후 안녕할까요…누구나 올드 푸어
임대료·빚에 허덕여…‘환갑의 사장님’들 노후자금 깬다
난치병 환우에 새 생명을
좌측 편마비 고통…재활·작업치료비 절실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