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록우산 재단 303명 설문 결과
- 한방서 여럿 부대껴 사는 아이들
- 비만도 높고 자존감·유능감 낮아
- 곰팡이·벌레 탓 호흡기 질환 겪어
- 과밀기간 길수록 부모 방임 증가
- 친구관계·학교 적응에 영향 끼쳐
- 유년기 생활환경 인생 전반 좌우
주거빈곤은 아이들의 삶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건강상태는 물론이고 학업, 심리발달에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먹고살 수는 있다 하더라도 온종일 생활하는 집이 제 역할을 못하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사회가 주거빈곤 상태에 놓인 아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 |  |
| 지난달 15일 오후 서구 산복도로에 위치한 준서(가명)네 집 방에서 준서 누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평 남짓한 2층 주택인 준서네 집에는 준서 7남매와 부모님이 함께 산다. 김종진 기자 |
■신체·정신건강 모두 악영향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2017년 주거빈곤이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경기지역 아동 3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주거빈곤은 아동의 건강상태와 학업성취도, 문제행동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건강 분야에서 주거빈곤 아동은 일반가구 아동에 비해 비만도(BMI)가 높게 나왔다. 일반가구 아동(185명)의 평균 비만도는 19.8인 데 비해 빈곤가구 아동(118명)은 20.8로 조사됐다. 주관적인 건강상태를 물은 질문(5점 척도)에서는 일반가구 아동은 평균 3.68점, 빈곤가구는 3.42점이었다, 식습관 조사에서는 세 끼 모두 일반가구와 빈곤가구가 차이가 났는데, 그중에서도 아침식사 비율에서 차이가 두드러졌다. 아침을 먹느냐는 질문(3점 척도)에서 일반가구 평균 점수는 2.41점이었으나 빈곤가구는 2.08점에 그쳤다.
심리사회발달 변수로 꼽히는 문제행동 부문 중 우울·불안(5점 척도)은 빈곤가구 2.18점, 일반가구 1.98점이었다. 공격성 분야 역시 빈곤가구 2.13점, 일반가구 1.97점으로 우울·불안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자존감과 유능감은 이와 반대였다. 자존감 수준에 관한 질문에서 빈곤가구는 3.69점에 그친 반면 일반가구 3.95점이었으며, 유능감은 각각 3.44점, 3.75점으로 조사됐다.
설문조사 결과를 담은 보고서는 “주거의 하위 특성 중에서도 특히 방의 개수와 위치가 아동의 건강상태나 문제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거빈곤 아동은 ‘개인 공간’에 대한 열망이 크다. 주형(14)이 역시 그런 아이 중 한 명이다. 조부모와 누나, 아버지와 함께 사는 주형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아무리 작아도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지만 꿈만 같은 일이다. 주형이는 “내 방과 책상만 있으면 정말 인생이 달라질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2016년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 고주애 연구원이 낸 보고서 ‘아동 주거빈곤 정책 마련을 위한 탐색전 연구’에도 주거빈곤이 아동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자세히 담겼다. 보고서는 지속해서 곰팡이와 바퀴벌레에 노출되면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불러오고, 재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과밀한 주거 환경은 호흡기 질환뿐만 아니라 결핵·뇌수막염·위암과 같은 질환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학업·아동 권리 보장도 요원
경기지역 아동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재단의 설문에서는 주관적인 학업성취도도 조사했다. 그 결과를 보면 학업성적의 경우 일반가구 아동은 평균 6.49점(10점 척도·1점 ‘매우 못함’~10점 ‘매우 잘함’)이었으나 빈곤가구는 5.39점에 그쳤다. 학교급별로 보면 초등학교에서의 차이가 두드러졌다.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일반가구 아동의 평균점수는 7.32점이었지만 빈곤가구는 5.37점에 불과했다. 과목(국어 수학 영어 과학 사회) 중에서는 영어가 가장 격차가 컸다. 일반가구는 평균 5.90점, 빈곤가구는 4.70점이었다.
학업 성적이 낮은 이유는 사교육의 부족 등 다른 요인도 있으나 주거지 내에 공부할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은 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실제로 주거빈곤 가정 아동의 상당수는 집에서는 사실상 공부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준서(가명·11)네 집도 그렇다. 서구 산복도로에 있는 준서 집은 방 3칸, 작은 부엌, 화장실을 갖춘 20평 남짓한 2층 주택이다. 준서네 7남매와 부모가 여기서 산다. 지금은 셋째가 군 복무 중이고, 대학생인 둘째가 자취를 하고 있어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그래도 여전히 방 하나를 2, 3명이 함께 써야 한다. 막내인 준서가 큰형(26)과 함께 생활하는 2층 방은 옷장 등이 놓인 곳을 제외하고는 둘이서 ‘차렷’ 자세로 누우면 딱 들어차는 공간만 남는다. 누나 둘이 생활하는 옆방 역시 2인용 침대 하나로 꽉 들어찼다. 그나마 여섯째(여·14)는 아직도 아래층 방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생활한다. 책상이 부족해 세 남매가 동시에 온라인수업을 할 때면 한 명은 침대에서, 한 명은 안방 한구석에서 플라스틱 상을 펴고 해야 한다.
서울사이버대 임세희 교수가 2019년 내놓은 논문 ‘주거빈곤이 아동 권리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주거빈곤의 영향을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접근했다. 논문은 주거빈곤이 아동의 생존권, 발달권, 보호권, 참여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발달권의 경우 주거빈곤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모 교육참여, 학교생활 적응, 친구 애착 등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 보호권 분야에서는 과밀 기간이 길어질수록 아동의 방임이 유의미하게 늘었고, 특히 단독화장실 등 필수설비가 미달된 기간이 긴 아동의 경우엔 성추행 피해경험이 증가했다. 또 주거 과밀 기간이 길면 수련 견학 문화활동이 감소해 참여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여승수 부산지역본부장은 “열악한 주거 환경은 아이의 생활, 발달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은 여러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며 “아이들이 최소한의 주거 기준에 부합하는 곳에서 살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가 두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
※기획: 국제신문 ·초록우산어린이재단